장갑차를 실은 터키군 군용 트레일러가 1월 14일 시리아 국경과 인접한 터키 남서부 하타이주의 한 도로를 행군하고 있다. 하타이=AP 연합뉴스

“도발적이고 염려스러운 조치다”

미국과 터키가 지난 7일(현지시간) 시리아 북동부 지역에 ‘안전지대(safe zone)’를 두기로 합의하자, 압바스 무사비 이란 외교부 대변인이 18일 내놓은 반응이다.

대체로 분쟁 지역에서 당사국 간 합의로 설정되는 ‘안전지대’는 인도주의적 구호 물자 수송이나 민간인 보호를 목적으로 한다. 물론 2009년 스리랑카 타밀 대학살이 다름 아닌 정부가 선포한 안전지대에서 일어나는 등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전례가 없진 않다. 그러나 분쟁 지역 내 안전지대 설치는 당사국 간 분쟁 소지를 줄여 민간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성이 분명해야 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반면 시리아 북동부를 대상으로 이뤄지고 있는 안전지대 설치 논의는 이 같은 명분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미 안정을 찾아가고 있는 지역에 ‘안전지대’를 두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도주의적 명분보다는 전쟁에 관여하는 당사국들의 이해가 얽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시리아의 1차 안전지대 역시 당사국 간 이해관계의 산물이었다. 2017년 이들립, 하마, 알레포, 라타키아 등 북서지역을 ‘공격감소구역(de-escalation zone)’으로 두기 위한 논의가 이뤄졌고 같은 해 5월 3, 4일 이란과 터키, 러시아 세 나라는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에서 합의문에 서명했다. 서명식이 이뤄진 아스타나 회의장은 반군진영의 거센 반발로 이내 소란스러워졌다. 시리아 정부와 반군진영을 뺀 주변국 간 합의였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도 합의 당사국인 이란의 역할을 두고 우려를 표명했다. 그리고 2년 뒤인 지금, 미국과 터키 간 두 번째 안전지대 합의에 대해 이번에는 거꾸로 이란이 반대하고 있는 모습이다.

정작 북동부 지역을 장악 중인 쿠르드와 쿠르드 민병대인 ‘인민수비대(YPG)’ 진영은 미국과 터키 간 안전지대 합의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쿠르드 민병대(YPG)가 주도하는 군사동맹체인 시리아 민주군(SDF)의 마즐룸 코바니 사령관은 14일 친 쿠르드 언론인 ‘하와르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안전지대를 먼저 제안한 건 바로 쿠르드 쪽이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말 미군이 시리아 철수를 선포하는 한편 터키는 쿠르드 지역 침범을 대놓고 공언하는 상황에서 ‘완충지대’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왼쪽) 터키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월 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계기 두 나라 간 정상회담을 열고 악수를 하고 있다. 오사카=AP 연합뉴스

하지만 미국-터키 간 합의에는 ‘안전지대에 합의하자’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을 뿐 구역 설정과, 누가 어떻게 관할할 것인가에 대한 합의는 전혀 없다.

안전지대에 대한 터키, 미국 그리고 SDF의 요구와 이해도 제각각이다. 예컨대 SDF가 미국을 통해 터키에 제안한 안전지대는 시리아-터키 국경에서 시리아 영토 쪽으로 약 5㎞ 지점까지만 포함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훌루시 아카르 터키 국방부 장관에 따르면, 터키 측 요구는 30~40㎞를 포괄한다. 이 안전지대에서 YPG는 철수해야 하며 터키가 단독으로 통제하겠다는 게 터키의 구상이다. 메블룻 카불숭글루 터키 외교부 장관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마일(약 32㎞)을 약속했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양측에 상당히 다른 중재안을 제시하며 중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미국 워싱턴에 있는 외교안보 싱크탱크 ‘중동연구소(MEI)’의 고놀 툴 교수는 16일 MEI 팟 캐스트를 통해 “만일 (터키 구상대로) 안전지대가 설정되면 이 지역 쿠르드 인구 90%가 이주를 감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북동부 지역에서 쿠르드 진영이 철수할 경우 이는 이슬람국가(IS) 재결집을 야기할 가능성도 있다.

이런 가운데 터키는 미국과의 ‘안전지대 설정’ 합의에도 불구하고 이달 내 시리아 북동부로 침범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합의 발표가 이뤄진 지 불과 사흘 뒤인 10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터키 역사에 다시 한번 ‘8월의 승리’를 보게 될 것”이라고 했다. 8월의 승리란 2016년 8월 터키가 시리아 북부를 침범하여 처음 군사작전을 펼쳤던 것을 말한다. 그해 터키는 ‘유프라테스 방패작전’이라는 이름으로 IS 격퇴를 명분 삼아 실질적으로는 쿠르드를 겨냥했다. 이후 지난해 1월 터키는 ‘올리브 가지 작전’으로 자신들이 지원하는 자유시리아군(FSA)과 함께 재차 쿠르드 통치 구역이었던 아프린을 침공했다. 터키는 자국의 쿠르드 분리주의를 자극하는 YPG를 안보 위협으로 여겨왔다. 쿠르드에 대한 터키의 이 같은 공격 의지가 사라지지 않는 한 이번 터키와 미국 간 ‘안전지대’ 합의는 터키의 3차 침공을 잠시 늦춘 데 지나지 않는다는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다.

미군과 터키군 장갑차가 시리아 북부 만비즈 지역에서 공동 정찰 작전을 펴고 있다. 양국은 지난해 6월 시리아 북부 만비즈 지역에서 쿠르드 민병대 인민수비대(YPG)를 철수하는 한편 미국과 터키가 이 지역을 공동 관리하는 것을 골자로한 '만비즈 로드맵'에 합의했다. 만비즈=EPA 연합뉴스

이와 관련, 시리아 북부 도시인 코바니에서 민생행정본부장을 맡고 있는 샤힌 나지브 알 알리는 메신저로 이뤄진 인터뷰에서 “터키와 미국의 안전지대 협상은 계속되고 있지만 구체적 합의는 불분명하다”고 우려했다. 그는 “시리아 북동부의 민주시리아평의회(DSC), 군사평의회(MC), 그리고 민생행정본부(CA) 모두 2013년 우리가 아사드 정권을 몰아냈을 때 이미 안전하다고 선포한 바 있다”며 “우리 지역은 우리의 군대가 지켜주고 있다”고 했다. 이어 그는 “물론 다른 군대가 와서 터키가 그토록 강조하는 ‘국경 안전’에 기여한다면 환영한다. 하지만 터키군은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시리아 북동부 ‘안전지대’ 설치에서 쿠르드를 배제하겠다는 터키의 집요함은 ‘만비즈 로드맵’과 닮았다는 지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만비즈는 2016년 8월 13일 SDF의 대(對)IS 전투로 해방된 곳이다. 지난해 6월 4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메브룻 카부소글루 터키 외교부 장관이 합의한 ‘만비즈 로드맵’은 SDF의 중추 세력인 YPG를 만비즈에서 추방시키는 것을 골자로 했다. 실제로 2016년 8월 IS가 패배한 만비즈의 치안은 YPG에서 만비즈군사평의회(MMCㆍManbij Military Council)로 넘어갔다. 쿠르드족은 물론 아랍계와 투르크계 등 다양한 커뮤니티가 공존하는 만비즈답게 MMC 역시 다양한 커뮤니티를 대표하는 그룹들이 모인 협의체로 운영되고 있고, 물론 쿠르드계가 중심이 되고 있다. 터키가 ‘YPG는 만비즈를 떠나야 한다’고 고집하는 이유다.

제이납 아프린 YPG 산하 여성수비대 사령관은 이 같은 터키의 입장은 어불성설이라고 성토했다. 그는 “터키가 우리를 위협적 존재로 보고 테러리스트라고 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시군사평의회(Municipality Military Council)를 건설하고 YPG와 YPG를 대체할 수 있는 세력이 치안을 담당할 수 있는 체제를 다져놓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이납에 따르면 각 도시의 군사평의회 회원들은 해당 지역에서 나고 자란 지역민들이다. 제이납은 “터키는 안전지대를 원한다고 하지만 되레 터키가 개입하는 곳마다 치안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유경 국제분쟁전문 저널리스트

이유경 국제분쟁전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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