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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생존자 지진희“멜로 아닌 역할에 갈증… 위기 헤쳐 나가는 대통령 성장통에 집중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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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생존자 지진희“멜로 아닌 역할에 갈증… 위기 헤쳐 나가는 대통령 성장통에 집중했죠”

입력
2019.08.22 17:02
수정
2019.08.22 19:47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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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속 지적이고 세련된 배우는 없었다. tvN 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 종방 후 22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지진희는 ‘수다쟁이’였다. 인터뷰 시작 10분 전부터 기자들과 만나 격의 없이 얘기를 나눴다. 박형기 인턴기자
드라마 속 지적이고 세련된 배우는 없었다. tvN 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 종방 후 22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지진희는 ‘수다쟁이’였다. 인터뷰 시작 10분 전부터 기자들과 만나 격의 없이 얘기를 나눴다. 박형기 인턴기자

‘국회의사당이 폭탄 테러로 무너져 대통령과 주요 행정부 각료들까지 사망’했다. 죽은 대통령 을 대신해 무너진 정부를 수습해야 할, 살아남은 국무위원은 해임을 앞둔 박무진 환경부 장관 한 명. 도발적 상상으로 국가 재난의 상황을 펼친 tvN 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에서 박 대통령 권한 대행을 연기한 지진희(48)는 ‘식물 대통령’의 좌충우돌을 실감 나게 연기했다.

박 대행은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뛰쳐나와 화장실에서 변기를 부여잡고 구토를 한다. 청와대에 입성해 새로 신은 구두는 자꾸 그의 발꿈치를 할퀸다. 지진희는 회가 거듭될수록 몸은 야위고, 얼굴색은 까맣게 변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취임 전과 후의 180도 다른 모습에서 영감을 받아 백척간두에 선 인물의 위기감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려 준비한 설정이었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취임 전엔 너무 밝고 건강했는데 취임 후엔 얼굴 살이 완전히 쪽 빠지고 머리가 하얗게 셌더라고요. 나라를 책임지는 일이 얼마나 큰 스트레스였으면 그랬겠어요. 드라마를 찍는 내내 체중을 줄였어요. 마지막 회 찍을 땐 바지 허리춤에 주먹 하나가 들어갈 정도였죠.” 드라마 종방 후인 22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지진희는 “얼굴색도 분장해 점점 까맣게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고 말했다.

배우 지진희는 지난해 tvN 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 일부 대본을 읽고 바로 출연을 결정했다. 그는 “극중 배역 박무진이 ‘적이다 아니다’를 판단의 기준으로 삼지 않는 합리적인 모습과 다양성에 끌렸다”고 말했다. tvN 제공
배우 지진희는 지난해 tvN 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 일부 대본을 읽고 바로 출연을 결정했다. 그는 “극중 배역 박무진이 ‘적이다 아니다’를 판단의 기준으로 삼지 않는 합리적인 모습과 다양성에 끌렸다”고 말했다. tvN 제공

박 대행은 지난 20일 마지막 회에 이런 말을 한다. “시행착오는 겪게 되겠죠. 그 모든 과정을 우린 역사라고 부르지 않나요?” 드라마는 광장에 ‘100만 촛불’이 켜질 정도의 혼란을 딛고 새로운 출발선에 섰던 우리의 현실과 절묘하게 맞닿으며 공감대를 형성했다. 2016년 미국 ABC에서 첫 방송된 원작 ‘지정생존자’가 테러의 배후를 쫓는데 이야기의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테러 후 정권을 이끄는 대통령의 주체성을 강조했다면, ‘60일, 지정생존자’는 한국적 해석으로 새 길을 갔다. 지도자의 성장통에 집중했고, 포용의 화두를 던졌다. 드라마 관계자들에 따르면 지진희는 지난해 ‘60일, 지정생존자’ 일부 대본을 읽은 뒤 바로 출연을 결정했다고 한다. 배우로서 “장르물에 대한 배고픔”이 커 욕심을 냈다. 드라마 ‘대장금’(2003)과 ‘애인 있어요’(2015), ‘미스티’(2018) 등에서 주로 멜로 연기를 선보여 새로운 모습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규칙을 강조하는 박 대행은 지진희와 닮았다. 지진희는 “야구와 농구 등 스포츠를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규칙 안에서의 승부이기 때문”이라며 웃었다. 지진희는 장동건과 함께 연예인 야구단 플레이보이즈에서 활동했던 ‘야구광’이다. 그렇다고 꽉 막힌 사람은 아니다. ‘60일, 지정생존자’에서 같이 연기했던 이준혁은 “꼰대가 아닌 것”을 선배 지진희의 장점으로 꼽았다. 중학생 큰아들을 둔 지진희는 ‘키덜트족’이다. 중년 배우는 여전히 장난감 조립(레고)을 즐긴다.

미술학도였던 지진희는 광고회사에서 사진을 찍는 보조 작가로 일하다 서른이 다 돼 연기에 뛰어들었다. 드라마 ‘여비서’(2000)가 그의 첫 작품이었다. 20년 가까이 큰 흔들림 없이 배우 활동을 이어온 것은 “연기의 결핍”을 인정한 덕분이었다.

“문제는 늘 생기고, 슬럼프는 찾아오죠. 때론 (작품을) 거절당하기도 하고요. 스트레스를 다스리며 다시 준비하는 게 제 일이죠.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좋은 작품을 만날 거라는 희망을 놓지 않기, 그래서 전 멜로 연기는 나이 들어서도 계속 하고 싶어요. 제 나이에 맞는 사랑이 있고, 그걸 보여주는 일도 필요하니까요.”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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