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쩐지 펼쳐 보기 두려운 고전을 다시 조근조근 얘기해 봅니다. 작가들이 인정하는 산문가, 박연준 시인이 격주 금요일 <한국일보>에 글을 씁니다.
<14>헤르만 헤세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헤르만 헤세.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 소설은 두 남자의 사랑과 우정 이야기다. 이들의 우정은 좀 특별하다. 인간과 인간이 서로 지극히 사랑하면, 우정에도 관능이 깃들 수 있다. 열망, 기대, 한숨, 경애, 두려움을 포함한 사랑의 감정이 깃들 수 있다. 성별에 상관없이 그럴 수 있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사이를 동성애적 코드로 보기엔 무리가 있지만, 둘의 오묘한 우정 탓일까? 소설 전반에 ‘관능적 긴장’이 흐른다.

젊은 수련수사 나르치스와 수도원에 입학한 소년 골드문트는 처음부터 서로에게 끌린다. 북극과 남극처럼, N극과 S극처럼, 오른편과 왼편처럼 그들은 다른 한편, 닮았다. 나르치스가 세상을 정신, 이성, 논리, 철학을 통해 인식한다면 골드문트는 감각, 경험, 예술을 통해 세상을 이해한다. 나르치스는 골드문트의 본성을 꿰뚫어보고, 대화로 그를 이끌어준다.

“너는 예술가이고 나는 철학자야. 너는 어머니의 가슴에 파묻혀 잠들고, 나는 사막에서 깨어나는 거지. 내게는 태양이 비치고, 네게는 달빛과 별빛이 쏟아져. 너는 소녀를 꿈꾸고, 나는 소년을…….”(66쪽)

골드문트는 수도원 밖에서 만난 소녀를 통해 사랑과 쾌락을 알게 되고, 수도원을 떠난다. 오랜 방랑을 통해 추위와 배고픔, 자연의 섭리, 사랑과 이별, 질병과 죽음, 예술의 고통과 기쁨, 살생을 저지르게 되는 상황까지 체득한다. 그러는 중에도 그의 마음속엔 반대편에서 수련하고 있을 나르치스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들숨이면서 동시에 날숨인 것, 남자이면서 동시에 여자인 것, 자유이면서 질서인 것, 충동이면서 영성인 것은 어디에도 없”는 건지, 골드문트는 세상을 지배하는 이원적 구도에 대해 의구심을 가진다. 소설 끝자락에서 수도원장이 된 나르치스와 속세를 관통한 늙은 예술가 골드문트는 재회한다. 수도원의 삶이 수련인 것처럼, 속세의 삶 역시 수련이다. 치열히 살아온 골드문트는 혜안을 가진 노인이 된다. 좋은 노인이 되는 것, 그것은 가장 좋은 성장이다.

헤르만 헤세에게 평생 화두는 ‘성(聖)’과 ‘속(俗)’, 그 사이에서의 성장이다. ‘데미안’ ‘수레바퀴 아래서’ ‘싯다르타’ 등의 작품에서 볼 수 있듯 그는 이 화두를 변주하며, 여러 작품으로 고쳐 써왔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에는 고통, 방랑, 성장, 사랑, 철학, 예술, 우정, 죽음 등 발음해 보는 것만으로도 무거운 2음절의 ‘관념어’들이 고루 담겨있다. 헤세는 관념의 형상화에 능한 작가다. 우리가 어렴풋이 알고 있는 사상이나 관념도 그의 소설 속 인물을 통과하면, 색과 몸을 입고 명료해진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헤르만 헤세 지음ㆍ배수아 옮김
그책 발행ㆍ456쪽ㆍ1만 5,000원

어릴 때 우리 집 책장엔 ‘지(知)와 사랑’으로 제목을 의역한, 동일 작품이 있었다. 지와 사랑이라니! 왜 그렇게 번역한 걸까. 나는 ‘지식욕을 가진 노학자의 지루한 이야기’일 거라 오해하여, 책을 들춰보지 않았다. 소설가 배수아의 번역으로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원제)가 나왔을 때 깜짝 놀랐다. 매력적인 ‘원제’에 놀랐고, 눈을 떼기 어려울 정도로 소설이 재미있어 또 놀랐다. 배수아는 이 소설이 소년을 위한 성장 소설이자 에로틱한 본성을 찾아가는 “관념적인 성애 소설”로 읽힌다고 했는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 소설은 지성과 관능을 고루 욕망하는 인간의 성장통을 담고 있다.

한 자리에서 정신으로 세계를 관통하는 나르치스, 온갖 곳을 떠돌며 경험해보고 인식하는 골드문트. 당신은 나르치스와 가까운가, 골드문트와 가까운가. 나는 골드문트에게 주로 감정이입 해, 그를 따라 온 세상을 휘뚜루마뚜루 휘젓고 다니느라 진이 다 빠졌다! 어쩌면 나르치스 안에 깃든 골드문트, 골드문트 안에 깃든 나르치스를 발견하는 일이 독자의 ‘숨은 임무’일지도 모르겠다.

박연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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