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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석학 칼럼] 윤리를 가르칠 수 있을까

입력
2019.08.26 04:4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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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실천윤리수업을 들었던 학생 중 최소 몇몇은 삶이 근본적으로 바뀐 경우를 봤다. 어떤 학생은 채식주의자나 비건이 되었고, 어떤 학생은 저소득 국가에서 극빈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돕는 기부를 시작했으며, 또 어떤 학생은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려는 일을 더 많이 하는 방향으로 진로를 수정했다. ©게티이미지뱅크
내 실천윤리수업을 들었던 학생 중 최소 몇몇은 삶이 근본적으로 바뀐 경우를 봤다. 어떤 학생은 채식주의자나 비건이 되었고, 어떤 학생은 저소득 국가에서 극빈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돕는 기부를 시작했으며, 또 어떤 학생은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려는 일을 더 많이 하는 방향으로 진로를 수정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철학 수업, 특히 실천윤리 과목을 수강하면 학생들이 더 윤리적으로 행동할까. 실천윤리학 교수라면 분명 답변에 관심이 갈 것이다. 실천윤리를 수강하려는 학생에게도 필요한 질문이다. 그러나 이 질문은 철학적 의미에서 더 중요하다. 윤리적 판단을 하고 행동을 결정할 때 이성의 역할에 대한 매우 오래되고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파이드로스’에서 플라톤은 쌍두마차의 은유를 사용한다. 한 말은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충동을, 다른 말은 비이성적 열정이나 욕망을 나타낸다. 마차의 역할은 두 말이 하나가 되어 달리게 하는 것이다. 플라톤은 영혼이 열정과 이성의 복합체여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성이 우월한 아래에서 조화해야 한다고 했다.

18세기 데이비드 흄은 이런 이성 대 열정의 우열 다툼에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했다. 흄은 이성 자체로는 의지에 영향을 줄 수 없다고 생각했고, 거기서 유명한 ‘열정의 노예’라는 표현이 나왔다. 그가 말하는 열정은 현재 우리가 이해하는 것보다 의미가 훨씬 넓다. 그가 열정이라고 한 것에는 타인에 대한 동료의식이나 동정심, 오랜 관심사도 포함된다. 다른 철학자들이 이성과 감정 사이의 갈등으로 본 것을 그는 이런 ‘조용한 열정’과 더 격렬하고 종종 무례한 열정 사이의 갈등으로 이해했다.

이성에 대해 현대심리학은 흄과 유사한 관점의 영향을 받고 있다. ‘행복 가설’과 ‘바른 마음’의 저자 조너선 하이트는 플라톤을 연상시키지만 흄에 더 가까운 관점을 가지는 은유를 사용해 ‘윤리에 대한 사회직관주의적 견해’라는 개념을 설명한다. 그는 ‘바른 마음’ 첫 페이지에서 “마음은 코끼리의 기수처럼 나뉘어 있다. 기수가 하는 일은 코끼리의 시중을 드는 것이다”고 했다. 여기서 사용한 은유인 ‘기수’는 사람이 제어하는 정신 과정, 주로 의식적 추론이며 코끼리는 정신 과정의 다른 99%, 주로 감정과 직관이다.

그는 연구를 통해 도덕적 추론을 사람의 자동직관적 대응에 대한 사후합리화로 보았다. 그 결과 “나는 윤리적 행동, 특히 교실에서의 직접 교육을 통한 접근 방식에 회의적“이라며 “도덕에 관한 지식을 학생에게 주입시키고 학생이 교실 밖에서 그 지식을 그대로 실천할 거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썼다.

‘바른 마음’에서 그는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대의 철학자 에릭 슈비츠제벨과 스테트슨대 조슈아 러스트의 연구로 자신의 관점을 설명한다. 슈비츠제벨과 러스트는 윤리학 교수가 다른 철학교수들보다 품행이 낫지 못하고, 심지어 철학과 관련 없는 교수들보다 더 윤리적이지도 않다는 것을 보여 준다. 윤리학 교수들조차 다른 분야 교수들보다 더 윤리적이지 않다면 윤리적 추론을 해보는 것이 사람들을 더 윤리적으로 행동하도록 하지는 못한다는 생각을 증명하는 것 아닐까.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증거를 나는 완전히 납득하지 못하겠다. 입증은 안됐지만 내 실천윤리수업을 들었던 학생 중 최소 몇몇은 삶이 근본적으로 바뀐 경우를 보았기 때문이다. 어떤 학생은 채식주의자나 비건이 되었고, 어떤 학생은 저소득 국가에서 극빈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돕는 기부를 시작했으며, 또 어떤 학생은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려는 일을 더 많이 하는 방향으로 진로를 수정했다.

슈비츠제벨은 2년 전 육식에 대한 윤리수업이 학생들의 음식 취향을 바꿀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이전보다 훨씬 엄격한 방식의 연구를 제안했다. 캔자스대 철학교수 브래드 코클릿과 함께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대에서 1,143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학생 절반에게는 채식주의를 옹호하는 철학 기사를 읽고, 선택 사항으로 육식을 반대하는 영상을 보고, 소그룹 토론에 참여하도록 했다. 대조군인 나머지 절반에게는 유사 자료를 주고 빈곤한 사람을 돕는 기부에 대해 토론하도록 했다.

캠퍼스 식권의 정보를 바탕으로 수업 전후에 두 그룹의 학생들이 어떤 음식을 구매하는지 알아보았다. 476명의 학생에게서 약 6,000건의 음식구매 자료를 얻을 수 있었다. 구매는 육식 윤리에 대해 읽고 논의했거나 하지 않은 학생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지만, 자료는 익명으로 수집했으므로 이름을 알아도 구매 정보를 식별할 수는 없었다.

연구 결과 육류윤리그룹 학생들의 육류 구매가 52%에서 45%로 감소했으며, 수업 후 몇 주간 육류구매 비율이 낮게 유지되었다. 자선기부그룹의 육류 구매 수준에는 변화가 없었다(이들이 자선단체에 더 많이 기부했는지는 알 수 없다).

이 연구는 예비조사 단계이고 아직 동료의 검토를 거치지 않았다. 영상 시청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살피는 추가 데이터도 모으는 중이다. 이런 영상은 학생들의 이성보다 감성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이 연구는 대학 수준의 철학수업이 학생 행동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실험실 환경이 아닌 실제 환경에서 진행된 최초의 제대로 통제된 연구라고 할 수 있다. 육식의 감소는 크지 않았지만 통계적으로 유의미했고, 교실에서 윤리적 추론이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피터 싱어 미국 프린스턴대 생명윤리학 교수

ⓒProject Syndi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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