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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이 연극으로… 황은후 “배우의 삶 그리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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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이 연극으로… 황은후 “배우의 삶 그리고 싶었어요”

입력
2019.08.22 04:40
수정
2019.09.10 14:5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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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겸 연출가 황은후 논문 바탕 ‘좁은 몸’ 23일부터 공연

황현산 평론가 딸… “논문 작성 좋아하셨는데… 공연화 감사할 따름”

[저작권 한국일보] 퍼포먼스극 '좁은 몸'의 연출가이자 배우인 황은후(왼쪽)와 배우 김정이 14일 서울 중구 삼일로창고극장에서 극의 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지하철 플래폼에 들어선 여성 둘이 긴장된 표정으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매무새를 다듬는 모습이다. 이한호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퍼포먼스극 '좁은 몸'의 연출가이자 배우인 황은후(왼쪽)와 배우 김정이 14일 서울 중구 삼일로창고극장에서 극의 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지하철 플래폼에 들어선 여성 둘이 긴장된 표정으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매무새를 다듬는 모습이다. 이한호 기자

너른 들판 위에서 자유를 실컷 만끽하려는 듯 느리게 무대 위를 구르던 배우 셋. 한참 만에 발바닥이 무대에 닿자 얼굴이 긴장감으로 굳어진다. 숨을 가다듬고 발가락을 한껏 꺾어 무대 위를 까치발로 걷더니, 손과 팔을 움직여 매무새를 끊임없이 다듬는다. 무릎 위로 올라온 치마를 돌려 입고, 어깨 밑으로 흐른 핸드백 끈을 고쳐 매고… 몸매를, 머리카락을, 화장 상태를 끊임 없이 점검한다. 23일부터 서울 중구 삼일로창고극장에서 공연되는 퍼포먼스극 ‘좁은 몸’의 한 장면이다.

‘좁은 몸’은 서울문화재단이 연극ㆍ퍼포먼스와 관련된 논문을 선정해 무대화하는 ‘퍼포논문’ 프로젝트의 올해 작품이다. 실험적인 이 작품의 바탕이 되는 논문을 쓴 저자이자 연출가는 황은후. 대학로를 종횡무진 누비는 배우로 고 황현산(1945~2018) 문학평론가의 딸이다. 14일 삼일로창고극장에서 만난 황은후는 “아버지가 선생님(고려대 명예교수)이셨다 보니 제가 논문 쓰는 모습을 워낙 좋아하셨다”며 “그 논문을 다시 공연화 할 수 있어 감사할 따름”이라고 웃었다. 이 논문은 얼마 전 황현산 별세 1주기를 맞아 문학계 선ㆍ후배들이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마련한 ‘황현산 추모의 방’ 한 켠에도 놓였다.

[저작권 한국일보] 배우 황은후(왼쪽)와 김정이 타인의 평가와 시선에 따라 스스로를 끊임없이 점검해야 하는 세태를 표현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배우 황은후(왼쪽)와 김정이 타인의 평가와 시선에 따라 스스로를 끊임없이 점검해야 하는 세태를 표현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좁은 몸’은 전에 없던 형식으로 구성된다. 황은후가 올해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예술전문사 과정을 마치며 쓴 논문 ‘성별화된 몸이 여자 배우의 연기를 위한 창조적 준비상태에 미치는 영향’이 근간이 된다. 황은후는 “김정과 2014년 배우창작연극팀 ‘사막별의 오로라’를 결성한 뒤 최근 대학로에 아름다움에 대한 강박과 여성의 몸을 주제로 한 ‘메이크업 투 웨이크업 1ㆍ2’ 등의 작품을 올렸다”며 “이를 준비하면서 구체화됐던 문제의식이 논문의 바탕이 됐고, 논문 텍스트를 다시 몸으로 읽은 게 이번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극은 세 배우가 직접 겪은 일화를 중심으로 흘러간다. 외형적 아름다움을 강요 받는 배우로서 매 순간 타인의 시선에 따라 자신을 정형화 해왔던 경험담을 쏟아낸다. 배우들은 중간중간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몸짓, 일화와 관련된 무용 등을 곁들이며 관객의 집중력을 잡아 끈다. 라이브 카메라를 활용한 무대 구성과 초반에 삽입되는 인형극 등도 극의 맛을 돋운다. “배우는 선택 받는 직업이기 때문에 참 많은 권한들을 남에게 넘기게 돼요. 남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신경 쓰고 그 기준에 맞추게 되죠. 연기 연습실엔 항상 거울이 있거든요. 맘에 드는 모습을 발견할 때까지 거울을 들여다 보다가 결국 실패한 채 작품에 임한 게 여러 번이었죠. 어느 순간 이렇게 나를 잃어선 안 된다 싶더라고요.” 김정이 황은후와 작품을 함께하게 된 계기다.

배우 황은후(왼쪽)와 김정이 자신들이 꾸린 퍼포먼스극 '좁은 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배우 황은후(왼쪽)와 김정이 자신들이 꾸린 퍼포먼스극 '좁은 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극 내용은 배우들의 성찰을 중심으로 하지만 일반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에게 가 닿는 메시지도 적지 않다. 황은후는 “사람들은 각기 감정과 경험에 따라 평형, 온도, 압력과 같은 일반감각을 고유화 한다”며 “어릴 적부터 관습적으로 받아 온 훈육이나 꾸밈 노동 등이 이러한 개인의 고유 감각을 어떻게 바꾸는지, 외부 세계를 향한 감각을 얼만큼 차단하는지를 작품을 통해 함께 논의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학이든 사람이든 사물이든, 항상 내면을 들여다 보려 한다”는 그는 “비단 여성 관객뿐만 아니라 이 주제에 궁금증을 갖는 남성 관객도 많이 찾아왔으면 한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좁은 몸’은 23일부터 3일 간 삼일로창고극장에서 공연된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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