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의 날(8월 18일)’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정부가 2015년 쌀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정했다고 한다. 쌀을 뜻하는 한자 ‘미(米)’가 8(八) 10(十) 8(八)로 이뤄졌고, 쌀 한 톨을 얻으려면 농부 손길이 여든여덟 번(八十八) 필요하다는 말에서 착안했단다. 한국의 쌀 자급률은 100%를 넘지만, 최근 3년간 곡물 자급률은 23%에 불과했다. OECD 회원국 중 꼴찌다. 쌀을 제외하면 5%도 안 된다. 연간 쌀 소비량과 맞먹는 밀 자급률은 1.8%, 옥수수는 3.7%. 위기 상황에서 식량안보의 취약성을 보여주는 세계식량안보지수도 OECD 최하위권이다.
□ 쌀이 한국인의 주식(主食)이지만 벼 품종의 약 10%는 아키바레, 고시히카리 같은 일본산이다. 팽이버섯은 약 80%, 배추는 85%가 일본 품종이다. 귤 새송이버섯 양파 등도 일본 종자가 70~90%에 달한다. 국내 곡물시장의 약 75%는 카길 등 국제 곡물메이저와 마루베니, 미쓰비시 같은 일본 무역상사에 장악돼 있다. 지난 40년간 우리 농업 인구는 85% 줄었고 농경지 면적은 30% 감소했다. 같은 기간 곡물 수입량은 7.4배 치솟았고 식량 자급률은 계속 떨어지는 추세다.
□ 식량은 무기화가 쉽지 않다는 주장이 있다. 쌀을 비롯한 국제 농산물시장은 경쟁적이어서 특정 국가가 독과점 위치를 점하기 어렵고, 잉여 농산물 생산국이 대부분 서방 국가여서 도덕적 비난을 무릅쓰고 식량 무기화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논리다. 하지만 로버트 지글로 국제쌀연구소 소장은 “돈으로 언제든 식량을 살 수 있다는 생각은 위험하다”고 했다. 소련 붕괴에는 1980년대 초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의 밀 수출 동결이 결정타로 작용했다. 식량(Food)이 무기(Fire) 연료(Fuel)와 함께 국가 안보에 필수적인 ‘3F’로 불리는 이유다.
□ 식량이 무기로 변하면 곡물의 77%를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에는 치명적이다. 일본의 수출규제,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등이 자칫 식량 전쟁으로 번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강력한 경제 제재에도 그나마 버티는 건 75%를 웃도는 식량자급률 덕분이라는 분석도 있다. 곡물은 공산품과 달리 단기간에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재화가 아니다. 기후 변화, 외교 분쟁 등 돌발 변수도 많다. 식량 안보를 위한 국가 차원의 적극적인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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