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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캐년 같은 웅장하고 기묘한 경치 이어져…힘든 산행 서로 격려하며 이겨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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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캐년 같은 웅장하고 기묘한 경치 이어져…힘든 산행 서로 격려하며 이겨내

입력
2019.08.22 04:34
수정
2019.08.22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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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킷리스트 이루려 사표 내고 온 대원도

숙소는 불편했지만 “경치 멋져 잘 왔다고 생각”

진미장씨가 현지 할아버지에게 포즈를 취해달라고 부탁하고 있다. 서로 의사소통이 됐다.
진미장씨가 현지 할아버지에게 포즈를 취해달라고 부탁하고 있다. 서로 의사소통이 됐다.

탐험대원 중 최 연장자는 진미장(61)씨다. 아프리카, 남미, 유럽 등의 유명한 산은 거의 다 가본 준 프로급 트레커인데 목소리가 한 옥타브쯤 높아 오해를 잘 산다. 한 번은 어린아이에게 사탕을 주며 “나마스테”하고 인사를 하자 그 애가 거의 울상이 돼서 엄마 품으로 도망갔다. 내가 “애한테 왜 야단 치듯이 인사를 하냐?”고 하자 “최대한 다정하게 말한 건데”라며 계면쩍어 했다.

하루는 절에 들러 사진을 찍다 “촬영하면 안 된다”고 현지 스님에게 제지를 받았다. 미장씨는 공손하게 사과했다고 한다. 하지만 내 생각에 스님은 미장씨가 사과하는 건지 화를 내는 건지 헷갈렸을 것이 분명하다. 미장씨의 목소리는 한 옥타브가 높다.

또 하루는 강물이 불어 말을 동원해 건너는데 먼저 건넌 미장씨가 동료를 기다리지 않고 그냥 산으로 올랐다. 나중에 숙소에 돌아와보니 미장씨가 복통으로 끙끙 앓고 있었다. 배탈이 난 걸 알면 동료들이 걱정하고 일정에 차질이 빚어질까 봐 숙소까지 쉬지 않고 내처 걸어 왔단다. 블로그를 운영한다고 사진을 찍느라 대열을 이탈하는 경우가 잦아 사진기자와 PD에게 눈총을 많이 받기도 한 미장씨는 현재 농사를 지으며 블랙야크 산악가이드로 활약 중이다.

대원들이 구름다리 위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협곡 지형이어서 구름다리가 참 많다.
대원들이 구름다리 위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협곡 지형이어서 구름다리가 참 많다.

김영애(52)씨는 더 대단하다. 철인3종 경기 킹코스를 10번이나 완주했다. 산악자전거도 하고 암벽도 탄다. 한 마디로 못하는 게 없는 운동선수다. 하루는 정상까지 갔다가 힘들어 하는 동료들을 보고 세 번이나 다시 내려와 배낭을 대신 날라주기도 했다.

쏘랑라패스를 오를 때는 리드하는 전문 산악인 최상규(59) 부대장이 머쓱해 할까 봐 추월하지 않느라고 답답해서 혼났다고 말했다. 그런 그도 일정 막바지에 남편이 보고 싶다며 눈시울을 붉혀 동료들의 시샘을 샀다.

나머지 대원들도 저마다 품고 있는 사연이 있지만 소개는 생략한다.

대원들이 타르초를 보고 있다. 불경이 적힌 오색깃발이다.
대원들이 타르초를 보고 있다. 불경이 적힌 오색깃발이다.

네팔에 가면 동네마다 고개마다 곰파(절) 초르텐(탑) 마니차(불경을 적은 통) 룽다(깃대)와 타르초(오색깃발)가 있다. 다 부처의 설법이 온 세상에 가득하기를 비는 상징이다. 동네마다 안쓰러울 만큼의 논밭이 있고, 논밭 다음에는 그냥 절벽이다. 풍요라고는 없는 동네다. 로만탕지역은 나무도 없어 티벳처럼 천장(새가 시신을 뜯어먹도록 하는 장례법)이 발달했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닐기리(7,061m)와 다울라기리(8,167m) 등 설산에다 푸른봉, 하얀봉이라고 거창함과는 거리가 먼 이름을 붙인 네팔인들의 현실감이 놀라웠다. 안나푸르나는 ‘풍요의 여신’이라기보다는 ‘곡식이 풍요롭게’라는 뜻이라고 가이드 밍마가 말했다. 신을 믿으면서도 그 안의 삶은 인간의 몫이라는 그들의 지혜를 봤다.

아침식사 풍경. 누가 밥을 차려준다는 것에 대해 행복해 하는 대원들이 많았다.
아침식사 풍경. 누가 밥을 차려준다는 것에 대해 행복해 하는 대원들이 많았다.

카그베니로 출발하기에 앞서 간호조무사 자격이 있는 송승연씨 등이 대원들의 혈압과 산소포화도를 측정했다. 평소 혈압이 높아야 120정도인데 144가 나왔다. 다들 혈압이 좀 높게 나오는 것 같았다. 김영애씨가 “이상 없다”고 강정국 대장에게 보고했다.

유윤숙 대원은 “무릎을 다쳐서 의사가 가지 말라고 했는데 놓칠 수 없어서 왔다”면서 소녀처럼 밝게 웃었다.

일부 대원들 중에는 소화불량, 두통 등 가벼운 고산증세를 호소하는 사람도 있었다. 안산시체육회 최경전 과장은 “몬순기후 탓도 있지만 고산증세 적응을 위해 2,671m(지도에는 2,720m로 나오는데 우리가 갖고 간 GPS를 기준으로 표기하겠다) 높이의 좀솜까지 차를 타고 온 것”이라면서 “처음 가벼운 고산증세를 느끼는 게 차라리 낫다. 나중에 증세가 나타나는 사람이 오히려 고생한다”고 말했다.

칼리간다키강. 이름 그대로 시커멓다.
칼리간다키강. 이름 그대로 시커멓다.

첫 구름다리를 건너고(구름다리를 참 많이도 건너게 된다) 검은 빛의 칼리간다키강(네팔어로 검은 강)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하류로 내려올수록 검게 변하는 걸 보면 탄화된 흙 성분 때문이 아닐까 추정된다. 하늘을 맑고 공기는 쾌청했다. 앞서 말한 중국과의 도로협정 때문에 공사구간이 많은 게 흠이었다. 가이드는 트레킹 길을 따라 도로를 낸 엔지니어들의 무감각함에 화를 냈다.

도중에 민가가 하나 나와 잠시 휴식을 취했다. 이곳에는 살구나무가 많았다. 살구나무 외에 포플러, 사과, 미루나무 등이 많았다. 사과나 살구, 복숭아는 우리나라 것의 절반에서 3분의1 크기였다. 살구를 조금 사서 나눠 먹는데 주인 할아버지가 동충하초를 한 상자 들고 오더니 사란다. 가이드가 카트만두에서 훨씬 싸게 판다고 만류했다.

줄곧 이런 풍경이 이어진다. 미국의 그랜드캐년이 연상된다.
줄곧 이런 풍경이 이어진다. 미국의 그랜드캐년이 연상된다.

다시 길을 나서는 데 전봇대에 약도날드(yac donalds) 호텔 안내판이 보였다. ‘야크+호텔’을 맥도날드에 빗대 작명한 걸로 보이는데 가이드가 유명한 호텔이란다. 건너편 산봉우리에서 독수리들이 기류비행을 하며 우리를 내려다봤다. 이 곳에는 독수리 말고 히말라야 까마귀들도 있는데 울음소리가 나한테는 병아리 소리처럼 들렸다. 평지로 내려오면 일반 까마귀가 산다.

푸른 하늘, 흰구름, 검은 강, 흑갈색의 절벽 산, 초록색의 계단밭 등을 감상하며 첫 날 기착지인 카크베니(2,853m) ‘닐기리 뷰’ 호텔(이름만 호텔이다)에 도착했다. 10.6㎞였지만 평지여서 시간은 3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잠시 쉬고 고소적응 차 3,000m가 훌쩍 넘어 보이는 건너편 산 봉우리를 오르려 했으나 바람이 심해 포기했다. 몬순 때는 오후가 되면 바람이 심해져 비행기도 운항하지 않는다.

우기인데도 하늘은 대체로 눈이 부시게 파랗다. 오후가 되면서 흐려져 별은 거의 못 봤다.
우기인데도 하늘은 대체로 눈이 부시게 파랗다. 오후가 되면서 흐려져 별은 거의 못 봤다.

이 곳 호텔은 ‘free WiFi, 24h hot water’라고 말로만 써놓은 경우가 많다. 뜨거운 물은 잠깐 나오던지 아니면 유료(2,000원 정도)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WiFi도 아주 약하거나 전기사정이 열악해 꺼놓는 경우가 많았다. 스마트폰을 손에서 떼지 못하는 젊은 친구들은 문명과의 단절이 꽤나 힘겨울 수도 있겠다고 생각됐다. 화장실도 냄새 나는 변기로 바뀌어 가고 그나마 개수도 부족해 배변을 참는 여성대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다음날 일어나니 염소 떼가 방울소리를 시끄럽게 울려대며 지나갔다. 순식간에 호텔 앞 도로가 똥 밭으로 변했다. 여기는 가축을 많이 키워 길가가 온통 소, 말, 염소, 개똥 천지다. 오르막길에서 숨이 차 심호흡을 하는 데 앞서간 말이 갓 쏟아낸 똥(순화된 용어로는 표현이 제대로 안 된다) 냄새가 같이 밀려들어올 때 느낌은 좋지만은 않다. 나중에는 싼지 어느 정도 된 똥인지 냄새로 구별하는 능력도 생긴다.

공사 중인 지루한 도로, 비슷한 풍경, 낮의 따가운 햇살, 오후의 시원한 바람을 경험하며 추일레로 향하는 데 고산병을 경고하는 안내판이 나왔다. 여러분은 3,800m를 지나고 있으므로 ‘물을 많이 마시고, 몸을 따뜻하게 하고, 공복상태를 피하고, 술∙담배를 자제하라’는 내용이었다. 멀리 추일레(3,071m) 마을이 보일 때쯤 짐을 실은 말들이 지나갔다. 원정대는 숙소 사정이 열악해 포터 대신 말 12마리를 동원했다. 이 말들이 절벽 길을 요리조리 오르는 걸 보고 나중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 말들의 헌신이 존경스러워 나중 ‘말(馬)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 馬’라는 농담을 주고받기도 했다.

대원들이 웅덩이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사진은 멋있지만 사실 가축분뇨 웅덩이였다.
대원들이 웅덩이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사진은 멋있지만 사실 가축분뇨 웅덩이였다.

제법 깎이고 패인 지형이 나타나기 시작해 눈요기가 돼줬다. 공기가 맑아 시야가 족히 100㎞는 넘게 나오는 것 같았다. 길이 사라지는 곳에 주름진 산과 그 뒤 설산, 그리고 끝으로 흰 구름으로 장식된 정말 파란 하늘이 피로를 잊게 해줬다.

‘4∙16 엄마의 노란손수건’에서 활동하는 정세경 씨는 “이번 트레킹을 시작으로 버킷 리스트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아파트 관리소장을 하다 사표를 내고 온 박영숙 씨도 “버킷 리스트에 없던 건데 오게 돼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 기록을 담당했던 남상금 씨는 “자녀들이 직접 가서 보면 다를 것이라고 했는데 정말 너무 멋지다”고 덧붙였다.

언제부터인지 검은 개가 대열을 이끌었다. 온통 까만 색인데 중형견쯤 되는 덩치다. 쉬면 같이 쉬고 걸으면 같이 걸었다. 우리는 칼리구굴(검은개)라고 이름 지었다. ‘영상앨범 산’의 지우철PD가 “이곳에서는 개한테 밥을 잘 안 줘 개들이 트레커들을 따라다닌다”고 알려줬다. 칼리구굴은 며칠 동안 우리를 따라다니다 방향을 바꿔 유럽 가족여행객을 따라갔다.

첼레에 도착해 여장을 풀었다. 이 곳 지명은 병행표기가 많다. 첼레만 하더라도 지도에는 Chele,호텔간판에는 Tsaile, 표지판에는 Chaile라고 각각 표기돼 있다. 우리는 요리사팀을 고용했는데 제법 맛을 잘 냈다. 주방장은 엄홍길의 까다로운 입맛을 만족시킨 요리사란다. 밥 먹을 때 항상 와서 인사를 했다.

전날 비가 좀 내렸는데 아침에 보니 숙소 뒤편 무스탕 히말 산군에도 눈이 쌓였다. 높이가 5,000~6,000m는 돼 보였는데 그냥 잡산이라고 불렀다.

대원들 중에 수면제, 이뇨제, 소화제를 찾은 사람들이 생겨났다. 이뇨제는 고산증세를 완화하기 위해 먹는다. 고산 경험이 풍부한 최상규 부대장도 수면제를 자주 찾았다. 페이스가 떨어지는 노윤영, 송승연, 정태연 씨를 선두에 세우고 출발했다.

고도가 높아짐에 따라 산에는 관목들만 자랐다. 가이드 팸바가 양밥(양이 먹는 풀)인 티데바디라고 알려줬다. 햇볕을 피할 데가 없어 살이 까맣게 탔다. 토시를 준비 안 해 김철수 부대장에게 토시를 빌렸다.

샹보체(샹모첸∙3,755m)까지 19㎞를 걸어 대원들이 많이 힘들어했다. 유윤숙 씨는 살짝 눈물을 비치기도 했다. 도중에 유서 깊은 충시(Chungsi∙3,603m) 동굴 절에 들렀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절이라는 데 티벳 출신 스님이 차를 내줘 달게 마셨다.

행군이 계속되면서 피곤이 쌓인 대원들이 점심식사 뒤 단잠을 자고 있다.
행군이 계속되면서 피곤이 쌓인 대원들이 점심식사 뒤 단잠을 자고 있다.

숙소가 모자라 호텔도 아닌 게스트하우스에서 잤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여기는 이름만 호텔이고 게스트하우스다. 화장실 옆방이어서 투덜댔더니 이병춘 부대장이 방을 바꿔줬다. 전날 씻지 못해 부엌에서 사람이 없는 틈을 타 찬물로 머리도 감고 대충 씻었는데 밤새 두통이 와 한숨도 못 잤다. 찬물로 씻지 말라는 이유가 있었다.

가이드 밍마가 “로만탕에 가면 숙소도 좋고 경치도 좋아진다”며 우리를 달랬다. 하지만 경치만 좋아졌다. 그 경치만으로 숙소의 불편함은 어느 정도 잊을 수 있었다.

네팔 무스탕지역 마을들은 대체로 이렇게 자리잡고 있다.
네팔 무스탕지역 마을들은 대체로 이렇게 자리잡고 있다.

달라이라마 저항군의 마지막 캠프가 있던 게미(가미∙3,584m)를 거쳐 차랑(3,583m)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초원과 꽃밭이 나와 대원들이 즐거워하며 사진을 찍었다.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신미옥 씨는 “원아들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어 경영이 힘들다”면서 “여러 가지 문제가 겹쳐 마음을 정리하러 왔는데 어느 정도 결심이 섰다”고 말했다.

암 투병을 이겨낸 이혜련 씨는 “정말 와보고 싶었다. 체력 정신력 등 한계를 경험해보고 싶었다. 잘 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정을 절반 정도 소화했다. 길이 멀고 험할수록 대원들은 먹을 것도 나누고, 물도 나누고 서로를 챙겨가며 동료애를 발휘했다.

네팔=이범구 기자 ebk@hankookilbo.com 사진 배우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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