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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도찐개찐이라는 틀린 말

입력
2019.08.22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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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주년 광복절인 15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8.15 74주년, 역사왜곡, 경제침략, 평화위협 아베 규탄 정의평화실현을 위한 범국민 촛불 문화제'에서 주최측이 일본 대사관 건물에 ‘NO ABE’ 네온사인을 비추고 있다. 뉴스1
제74주년 광복절인 15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8.15 74주년, 역사왜곡, 경제침략, 평화위협 아베 규탄 정의평화실현을 위한 범국민 촛불 문화제'에서 주최측이 일본 대사관 건물에 ‘NO ABE’ 네온사인을 비추고 있다. 뉴스1

‘이쪽이나 저쪽이나 하나같이 잘한 게 없다.’ ‘둘 다 잘못이고, 못났다.’ 하는 뜻으로 ‘도찐개찐’이라는 말을 사자성어처럼 쓰고는 한다. 틀린 말이다. 국립국어원에서는 위의 단어가 윷놀이의 ‘도긴개긴’이라는 말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측한다. 도나 개나 한 끗이고 두 끗이어서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2019년 한국프로야구에서 9위와 10위를 번갈아 맡고 있는 롯데 자이언츠와 한화 이글스에서 쓰면 적절한 말이 된다. 여기에 필자가 응원하는 KIA 타이거즈도 도긴개긴인 건 마찬가지다.

일본의 경제 보복 뉴스가 매일같이 속보로 쏟아질 때, 어느 지인은 우리 정부에서 나오는 다소 투쟁적인 언어를 지적하며 도찐개찐이라고 평했다. 직업이 편집자인지라 도찐개찐이 아니고 도긴개긴이 맞는 말이라 고쳐 주었으면 좋았겠지만 실생활에서 그런 지적을 일삼는 사람이 어떻게 보이는지 대강은 알기에 속으로 꿀꺽 침이나 삼키고 말았다. 그런데 정말 그러한가. 이쪽이나 저쪽이나 못난 것은 매한가지이니, 윷놀이를 구경하듯 깔린 판 옆에서 끌끌 혀만 차면 그만인 걸까. 집에 가서 후회한 것은 틀린 단어를 바로잡지 못한 게 아니라 다른 생각을 나누지 못한 주저함이었다. 나는 일본의 경제 보복과 우리의 대응이 같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완전히 다르다.

여러 매체와 전문가들이 지적한 것처럼 아베의 속셈은 일본 군국주의의 재건에 있다. 정치적인 이유로 경제적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일본이 주창해 온 자유무역 기조에도 맞지 않을뿐더러 일본 자국의 이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더한 문제는 강제징용과 일본군 위안부와 같은 전쟁 피해자 개개인에 대한 사죄와 보상은커녕 역사적 사실도 외면하려는 반인권적 작태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국가 간의 이익의 충돌과 분쟁을 예방하기 위한 약속에 불과한 국제법을 운운하며 한 나라의 대법원 판결에 토를 다는 것도 법체계가 제대로 서 있는 나라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시원한 대책이나 당장의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정부를 비판할 수는 있다. 강경책이든 유화책이든 자신이 생각하는 방향성 또한 각자 몫으로 존재할 것이다. 대통령을 위시한 정부 고위 인사들의 다소 감정적인 언사가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경제 위기론이 심상치 않게 번지는 가운데, 불안감을 해소시키지 못해 주는 정부에 악감정을 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최소한 작금의 한일 갈등의 책임과 잘못은 일본에 있음은 분명하다. 자유로운 무역, 인권의 수호, 평화의 유지 등 대규모 전쟁 후 인류가 그나마 쌓아 온 긍정적 가치들을 하나 같이 배반하고 있는 것은 결국 일본이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똑같다 하는 인식은 정확하게 정치 혐오로 연결된다. 그리고 정치 혐오는 시시때때로 중도라는 이름으로 쉽사리 둔갑한다. 그들은 어떤 결과가 나오든 팔짱을 끼고 혀를 끌끌 찰 준비가 되어 있다. 마치 윷놀이 구경꾼처럼. 우리의 정치사에 완벽하고 전인적인 정치인이나 정당은 없었지만 조금 더 낫거나 조금 덜 나쁜 치들은 있어 왔다. 그것을 잘 알리는 것도 정치인의 능력이다.

지금 우리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첫째로 효율적인 경제 대책이고 멀게는 이런 것이다. 우리가 그들과는 다름을 보여 주는 것. 인류 보편적 가치를 지켜내는 사회임을 증명하는 것. 우리가 덜 나쁘고 더 나은 사회라는 사실을 증명할 기회는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다. 그것이 정부만의 몫은 아닐 것이다. 혐오하지 않을 것. 폭력적이지 않을 것. 더 개방적이고 더 자유로울 것. 더 관용적이고 민주적일 것. 그런데 우리가 지금 과연 그런가? 자문하니 한 끗 두 끗 차이인 것 같아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그래도 도찐개찐은 아니다. 도긴개긴도… 아니어야 할 것이다.

서효인 시인ㆍ문학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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