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박장부 공개 요구 불응 등 석연찮은 행동했는데
수사관 5시간 만에 다시 갔지만 이미 신변 정리하고 자취 감춰
경찰, 잔혹성 고려해 신상 공개 결정
‘한강 몸통 시신 사건’을 수사한 경찰이 피의자 장대호(39)씨를 모텔에서 대면하고도 그냥 돌아온 것으로 확인됐다. 피해자의 마지막 흔적이 남은 곳에서 일한 장씨를 용의선상에 올려 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수하러 찾아간 장씨를 인근 경찰서로 안내한 서울경찰청에 이어 또 부실 대응이 논란이다.
20일 경찰에 따르면 경기 고양경찰서 형사 2명은 지난 16일 오후 6시쯤 장씨가 살인과 사체훼손을 벌인 서울 구로동의 한 모텔을 찾아갔다. 지난 12일 몸통에 이어 16일 피해자의 신원을 추정할 수 있는 시신의 팔 부분이 발견된 직후였다.
경찰은 피해자의 마지막 통화내역 등을 근거로 남성 2명을 용의선상에 올렸지만 여기에 장씨는 없었다. 경찰은 당시 모텔 카운터를 지키던 종업원에게 피해자 사진과 함께 피해자 친구 2명의 사진을 보여주며 “이 사람들이 묵지 않았느냐”고 탐문했다. 이때 1층에서 잠을 자던 장씨가 나와 서 경찰이 내민 사진을 보고 “누군지 모르겠다”고 태연하게 시치미를 뗐다.
장씨는 형사들에게 모텔 카운터와 주차장을 비춘 폐쇄회로(CC)TV 화면도 보여줬다. CCTV는 최근 15일치가 저장돼 있어야 했지만 15일과 16일 부분만 지워진 상태였다. 장씨는 “모텔이 낡아 기계가 잘 꺼지고 고장이 잘 난다”고 석연치 않은 해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숙박 장부를 보여달라는 경찰의 요구에 장씨가 불응하고 모텔 사장 연락처를 감추는 등 의심스러운 대목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경찰은 장씨를 그대로 두고 10여 분만에 모텔을 떠났다. 이어 5시간이 지난 오후 11시쯤 다시 모텔을 찾아갔지만 장씨는 이미 신변을 정리하고 자취를 감춘 뒤였다. 이에 고양경찰서 관계자는 “장씨를 수사 초반에 용의선상에 올리지 못한 것은 맞다”고 인정하면서도 “수상히 여겼기 때문에 같은 모텔을 두 번이나 찾아간 것”이라고 해명했다.
모텔에서 나온 장씨는 두 시간이 지난 17일 새벽 1시 1분쯤 서울 종로구 서울경찰청 정문 안내실을 찾아가 “자수하러 왔다”고 했다. 안내실 당직 근무자는 인근 종로경찰서로 장씨를 보냈고 장씨는 그제서야 체포됐다. 피의자가 도중에 마음을 바꿔 먹고 도주했다면 사건이 미궁에 빠질 수도 있었다. 장씨는 모텔 투숙객의 머리를 둔기로 내리쳐 살해한 뒤 시신을 토막 내 한강에 유기한 혐의(살인 및 사체손괴ㆍ사체유기)로 지난 18일 구속됐다.
한편 경기북부경찰청은 이날 신상정보공개위원회를 열어 범죄 잔혹성과 중대성 등을 고려해 장씨의 신상을 일반에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위원회에는 경기북부경찰청과 고양경찰서 수사책임자, 외부 전문가 등이 참여했다. 위원들은 장씨의 정신감정 결과와 범행 동기, 사체 손괴 과정 등을 검토한 뒤 사체를 토막 내 유기하는 등 범행수법이 잔혹하고, 시신을 훼손한 도구가 확보되는 등 증거가 명확한 점을 감안해 공개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최은서 기자 silv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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