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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기술패권과 부메랑 효과

입력
2019.08.20 18:00
수정
2019.08.20 18:02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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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노원구 유니클로 월계점에 영업 종료 안내문이 세워져있다. 한국에 대한 일본의 수출규제로 촉발된 불매운동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유니클로는 다음 달 15일 서울 월계점의 문을 닫는다. 연합뉴스
서울 노원구 유니클로 월계점에 영업 종료 안내문이 세워져있다. 한국에 대한 일본의 수출규제로 촉발된 불매운동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유니클로는 다음 달 15일 서울 월계점의 문을 닫는다. 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한국을 상대로 경제전쟁을 선포한 것과는 별개로 때 아닌 식민지 근대화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식민지 근대화론’은 일제 침략의 결과로 근대화가 시작됐고 그 이전에 한반도에는 근대화의 맹아가 없었다는 극소수 학자들의 몰(沒)역사적인 학문적 소신이다. 식민지는 수탈 대상이었을 뿐, 어떤 제국주의도 식민지 근대화를 목표로 식민정책을 펴지 않았다는 ‘식민지 수탈론’이 합당하다. 설사 낙수효과로 근대화가 다소 진행됐다 하더라도 나라를 잃고 징집ㆍ징용 등의 막대한 피해를 당한 것에 비할 바는 아니다.

□ 일제가 조선에 철도 건설을 하고 행정체계를 근대화한 것도 전쟁과 통치 편의를 위한 목적이었다. 특히 일제는 과학기술 지식에 대한 이전을 심히 꺼렸다는 것이 각종 기록으로 나타난다. 과학자 이종호의 저서 ‘조선시대 과학의 순교자’에 따르면 일제는 조선을 합병한 후 1924년 경성제국대학을 세웠지만 식민통치에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법문학부, 의학부만 설치했다. 조선인의 독립의식과 실력을 키울 수 있는 정치 경제 이공학부는 설치하지 않았다. 이공학부가 설치된 것은 그로부터 17년이 지난 1941년이다.

□ 1945년 광복 이전에 일본에 유학하여 4년제 정규대학을 졸업한 이공계 출신은 200여명이다. 일제 강점기 36년간 배출된 숫자로 한 해 6명꼴이다. 당시 일본인 과학분야 졸업자가 수만 명에 달한 것을 감안하면 조선에 대한 과학 차별정책이 심각한 수준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최초의 과학잡지인 ‘과학조선’을 만들고 찰스 다윈의 사망일을 ‘과학의 날’로 정하는데 앞장섰던 당대의 과학자 김용관은 심한 탄압을 받았다. 그는 결국 1938년 제5회 과학의 날 행사 도중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른 이후 만주 등지를 떠돌았다.

□ 현격한 기술격차 때문에 제3세계는 기술패권을 쥐고 있는 선진국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기술종속’ 이론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반도체 등 적지 않은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술력을 확보했다. 기술종속을 뛰어넘은 극히 드문 사례다. 일본은 우리 기술력이 급상승하던 1980년대 중반부 본격적인 견제를 시작했다. 특히 한국이 기술격차를 좁혀오자 한국기업에 기술을 제공하던 일본기업은 기술 이전을 기피했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의 ‘부메랑 효과’를 두려워한 것이다. 일본의 이번 도발도 이 같은 기술패권주의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조재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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