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보아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해남 남도수묵기행
대흥사 부속 암자인 일지암의 ‘숲속도서관’ 창틀로 두륜산의 능선과 다도해가 아련하게 보인다. 해남=최흥수기자

“질책 겸 가벼운 부탁 하나 할까요. 감탄사가 나오는 데에 10초도 안 걸리고, 오자마자 사진을 찍어 대고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곳에 오는 사람들에게 저는 최소한 한 시간은 머물고 가라, 세속에서 말을 많이 하고 사니까 여기서는 조용하게 충분히 느낀 다음 사진을 찍어도 늦지 않다, 그런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보인다’라고 말합니다.” 해남 두륜산 일지암 주지 법인 스님의 충고다. 암자에 도착하자마자 너나없이 감탄사를 연발하며 경쟁적으로 휴대전화 셔터를 눌러대는 꼴이 못내 거슬렸던 모양이다. 스님의 말대로 잠시 숨을 고르자 두륜산의 우람한 산줄기와 거기서 흘러내려 바다와 맞닿은 다도해 풍경이 아련하게 암자 앞 ‘숲속도서관’ 창틀을 가득 채웠다. 각자의 시선으로, 각자의 감성으로 자연과 교감하는 시간이다.

초의선사가 지은 일지암. 초가에 방 한 칸이 전부여서 소박하기 그지없다.
대흥사에서 일지암으로 오르는 길. 작은 개울을 따라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일지암은 다성(茶聖)으로 추앙받는 초의선사(1786~1866)가 머문 암자다. 그의 차는 맛이 좋기로 소문나 강진에 유배 중이었던 다산 정약용, 진도 운림산방에 기거하던 남종화의 대가 소치 허련과도 나눴다. 다산은 초의보다 스물넷 위고, 소치는 스물셋 아래다. 초의는 동갑내기 추사 김정희와는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였다. 제주에 유배된 추사는 그에게 보낸 서신에서 한결같이 차를 보내 달라고 졸랐다. ‘나는 스님을 보고 싶지도 않고 편지도 기다리지 않소. 그런데 스님의 차 맛은 도대체 잊을 수가 없으니 두어 해 묵은 차까지 보내주기 바라오. 만약 보내지 않으면 몽둥이질을 당하거나 고함소리를 들을 거요’라고 협박(?)할 정도였다. 엄격한 완벽주의자인 추사도 그에게만은 장난기 넘치는 친구였다. 초의는 그때마다 추사에게 차를 보냈고, 추사는 멋진 글로 보답했다고 한다. 초의선사에게 차는 단순한 기호식품이 아니라 깊은 사유와 통찰로 이어지는 참선의 수단이자 여러 사람과 인문적 교류의 폭을 넓히는 매개였다.

대흥사 뒤로 바위 봉우리가 우람한 두륜산 능선이 감싸고 있다.
대웅전 추녀 끝에도 두륜산 정상부가 걸린다. 전각 양편에 선 종려나무가 이색적이다.
대흥사 ‘대웅보전(大雄寶殿)’은 원교 이광사의 작품이다.
대웅보전 옆 ‘무량수각(無量壽閣)’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다.

둘이 허물없이 교류한 흔적은 일지암의 본 절인 대흥사에도 남아 있다. 유배 길에 대흥사에 수개월간 머물렀던 추사는 제주로 떠나기 전 원교 이광사(1705~1777)가 쓴 ‘대웅보전’ 현판이 맘에 들지 않는다며 당장 떼어내고 그 자리에 자신이 쓴 현판을 걸게 했다. 그러나 9년 후 유배에서 풀려 돌아오는 길에는 자신의 무례를 깨닫고 원래 현판으로 되돌려 놓았다고 한다. 대신 ‘무량수각’ 현판만은 추사의 필체 그대로 남아 있다.

신라 말기에 창건한 대흥사는 현재 대한 불교 조계종 제22교구 본사다. 두륜산(700m) 여덟 개 봉우리로 둘러싸인 분지에 터를 잡아 넓고도 아늑하다. 대흥사에서 일지암까지는 약 1km로 길이 제법 가파르다. 대신 작은 계곡을 끼고 숲이 하늘을 뒤덮어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오래된 사찰일수록 입구에서 절간에 이르는 산책로가 일품이다. 매표소에서 본당에 이르는 약 2km 대흥사 숲길 역시 어디에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다. 쭉쭉 뻗은 침엽수와 활엽수가 하늘을 가리고, 도로와 나란히 이어지는 계곡에는 물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한여름에는 인근 주민들이 피서를 즐기는 곳이기도 하다.

뿌리가 붙은 대흥사의 연리근 느티나무.
대흥사 천불전 풍경.

대흥사에서 약 10km 떨어진 해남 윤씨 고택 녹우당은 남도를 대표하는 종가의 품격이 묻어나는 곳이다. 고산 윤선도의 4대조 윤효정이 처음 지은 녹우당에는 현재도 고산의 14대 종손이 살고 있다. 고산은 82세 되던 1669년 수원의 집을 이곳으로 옮겨 와 본래 있던 종가에 덧대어 지었다. 이때부터 녹우당은 남도 문예부흥의 상징적 장소가 된다. 고산의 증손자 공재 윤두서는 극심한 당파 속에서 가문을 지키고자 벼슬에 나서지 않았지만, 그의 학문과 예술적 재능은 모두가 인정하는 터였다. 특히 사실적인 그의 자화상은 한국 회화사의 흐름을 바꾼 것으로 평가된다. 녹우당은 다산의 외가이기도 하다. 강진에 유배되었을 때 다산은 녹우당에서 여덟 수레의 장서를 빌려 갔다고 한다. 일지암의 초의선사 역시 녹우당의 장서와 화첩을 빌려 소치에게 가르쳤다고 하니, 녹우당은 명실공히 남도 문예부흥의 중심이었다.

해남 덕음산 자락의 녹우당. 입구에 커다란 은행나무 한 그루가 지키고 있다.
녹우당 앞 고산윤선도유물전시관.
주변 경관을 헤치지 않도록 실제 전시실은 지하에 만들었다. 전시실 입구에 공재 ‘미인도’가 조각으로 표현돼 있다. 미인도는 윤두서의 손자 윤용의 그림으로 추정되는 작품이다.

녹우당 초입의 ‘고산윤선도유물전시관’은 가문을 대표하는 다산과 공재 두 인물의 생애와 유물을 전시하고, 600년 해남 윤씨의 가풍을 엿볼 수 있게 꾸몄다. 덕음산 자락에 아늑하게 자리 잡은 녹우당 주변에는 오래된 은행나무, 회화나무, 소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돼 고택의 기품을 더하고 있다. 본채와 사당 사이 조붓한 담장을 지나면 넉넉하게 그늘을 드리운 숲이 나타난다. 그 뒷길로 고택을 한 바퀴 돌면 숲과 계곡이 어우러진 원림이다.

유물전시관에서는 윤두서 자화상 본뜨기 체험을 할 수 있다.
녹우당 본채에서 뒤뜰로 이어지는 길.
녹우당 주변은 숲과 계곡이 어우러진 원림이다.
남도수묵기행에 참가하면 해남 진일관 식당의 푸짐한 한정식을 맛볼 수 있다. 1인 2만5,000원 식사비는 참가비와 별도다.

녹우당과 대흥사, 일지암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지원하고 행촌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전통문화 체험관광 ‘남도 수묵기행’ 코스에 포함돼 있다. 1박 2일로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참가하면 울돌목, 백련사, 다산초당, 미황사, 달마고도와 해남 땅끝까지 방문한다. 9월에는 3차례 기행이 예정돼 있다. 20명 이상 운영하고 교통, 숙박, 3회 식사, 일지암 차 시음과 판소리 공연까지 포함한 참가비는 1인 5만원이다. 행촌문화재단 061-533-3663으로 문의하면 된다.

해남=글ㆍ사진 최흥수 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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