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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 장기화에 해외자금 ‘홍콩 엑시트’ 우려… 금융허브 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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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 장기화에 해외자금 ‘홍콩 엑시트’ 우려… 금융허브 흔들

입력
2019.08.20 04:4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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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 유출 금액, 유입의 2.64배… 홍콩달러 하락ㆍ증시 급락

H지수 ELS 등 한국에도 악재… 中, 선전 키워 ‘홍콩 옥죄기’

18일 홍콩 빅토리아공원에서 '범죄인인도법(송환법)'에 반대하고 민주적 정치 개혁을 요구하는 집회가 열리고 있다. 홍콩=로이터 연합뉴스
18일 홍콩 빅토리아공원에서 '범죄인인도법(송환법)'에 반대하고 민주적 정치 개혁을 요구하는 집회가 열리고 있다. 홍콩=로이터 연합뉴스

범죄인인도법(일명 송환법) 개정을 반대하며 지난 6월 홍콩에서 촉발된 반정부 시위가 장기화되면서 ‘국제 금융도시’ 홍콩의 위상을 둘러싼 불안감도 고조되고 있다. 글로벌 금융계에서 이른바 ‘홍콩 리스크(위험)’로 불리고 있는 현 상황이 막대한 글로벌 투자자금의 본격적인 ‘홍콩 엑시트(홍콩의 영문 약자 HK+Exit)’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18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인용한 영국 소재 국제 송금 전문기업 트랜스퍼와이즈의 자료에 따르면, 홍콩에서 해외로 유출되는 투자금액의 비중은 홍콩 시위 장기화 과정에서 계속 높아지고 있다.

8월 들어 이 업체에서 집계한 홍콩 외부로의 유출 금액은 유입 금액보다 2.64배나 많았다. 홍콩 시장에 100달러가 들어가는 동안 264달러가 빠져나갔다는 의미다. 정확한 규모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자금은 미국, 영국, 싱가포르, 유로존 등의 은행 계좌로 이동한 것으로 파악됐다.

홍콩 유입자금 대비 유출자금 배율. 김문중 기자
홍콩 유입자금 대비 유출자금 배율. 김문중 기자

그간은 홍콩에서 자본이 대거 이탈할 가능성은 낮다는 시각이 일반적이었다. 홍콩은 미국 1달러당 7.75~7.85홍콩달러 사이에서 거래되는 고정환율제(페그제)를 채택하고 있어 과거 세계적인 금융위기 국면에서도 급격한 자금 이탈을 방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미즈호은행의 아시아 외환 담당 켄 청 수석전략가는 “홍콩달러 환율이 7.84달러 수준까지 오른데다(가치 하락), 증시가 급락한 것은 투자자금이 해외로 이동하는 조짐”이라고 분석했다.

기존에는 중국의 통제로 재산권이 침해 당할 걸 우려한 일부 부유층이 개인 자산을 옮기는 움직임이 포착되는 정도였지만, 최근에는 ‘홍콩 리스크’ 자체가 부각되면서 아예 홍콩을 대체할 투자처를 찾는 글로벌 자금의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금융불안의 원인은 결국 경제불안이다. 현재 홍콩 경제는 미ㆍ중 무역분쟁 여파로 인한 대외교역 부진에, 정치 불안으로 내수까지 위축되며 암울한 상황이다. 올해 2분기 홍콩의 전분기 대비 경제성장률은 -0.4%를 기록했다. 1년 전과 비교한 성장률도 0.5%에 그쳐 10년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투자 역시 전년 동기 대비 11.6% 감소했고, 수출은 5.6%, 수입은 7% 줄었다. 폴 찬 홍콩 재무장관은 지난 15일 기자회견에서 홍콩의 올해 성장률 전망을 당초 2~3%에서 0~1% 사이로 하향 조정했다고 밝혔다.

홍콩 사태 장기화는 한국에도 악재다. 금융권에서는 홍콩 증시의 ‘H지수’와 연결된 국내 발행 주가연계증권(ELS)이 H지수의 급락으로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실물 부문에서도 홍콩은 한국의 중국시장 진출에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어, 홍콩 사태 장기화시 수출에 악영향이 불가피하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은 홍콩에 460억달러(약 56조원) 어치를 수출했다. 이는 중국ㆍ미국ㆍ베트남에 이어 4번째 규모다.

전문가들은 중국 정부가 홍콩 시위대를 강제 진압하는 등 극단적 선택은 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대립이 격화한다면 여파가 클 것이라고 우려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다룬 영화 ‘빅 쇼트’의 실제 모델인 헤지펀드 매니저 스티브 아이스먼은 지난 6일 미국 CNBC방송에 출연해 “홍콩 시위가 더 심각해지면 미ㆍ중 무역협상까지 흔들고 국제 경제를 훼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8일 홍콩 시위를 거론하며 “중국이 만약 폭력을 행사한다면 무역협상도 어렵게 될 것”이라고 발언했다.

홍콩 사태가 큰 사고 없이 진정되더라도 금융 허브로서 홍콩의 위상은 타격이 불가피하다. 이미 홍콩을 빠져 나왔거나 위험에 대비하고 있는 해외 자본을 돌려세우기 어려운 데다, 중국 정부도 홍콩 견제 차원에서 상하이와 선전 등 본국 내 금융허브 육성 조치를 잇달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전종규 삼성증권 연구원은 “홍콩의 주기적인 정치 불확실성 재발은 싱가포르 등과의 금융 허브 경쟁에서도 계속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중국 정부는 ‘홍콩 소외 전략’을 구사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18일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와 국무원은 선전을 ‘중국 특색사회주의 선행시범구’로 건설하겠다는 내용의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가이드라인에는 글로벌 기업이 선전에 본사나 지사를 설립하는 것을 적극 장려하는 등 선전을 홍콩 같은 글로벌 비즈니스 중심지로 키우겠다는 의도가 엿보이는 조치가 포함됐다.

홍콩 신문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 정부가 ‘웨강아오 대만구(大灣區ㆍGreat Bay Area)’ 개발에서 홍콩을 소외시키려 한다는 또 하나의 증거라고 이날 풀이하기도 했다. 중국 정부는 지난 2월 홍콩ㆍ마카오ㆍ선전ㆍ광저우를 거점으로 총 11개 도시를 통합 경제권으로 묶는 대만구 계획을 공개한 바 있다. 홍콩 문제 전문가인 톈페이룽 베이항대 교수도 “홍콩 시위 속에 나온 이번 발표는 중앙정부가 선전이 대만구 전략의 핵심 동력이 돼야 한다고 결정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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