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립공원들이 ‘‘Let It Burn Policy’라 부르는 현행 자연화재관리 원칙을 수립한 게 1972년이다. 자연적 원인으로 시작된 화재는 인위적으로 끄지 않고 자연 진화될 때까지 방치한다는 원칙이다. 공전ㆍ자전의 순환에 따라 계절이 바뀌고 풍향이 바뀌고 우기와 건기가 교차하는 사이사이, 어쩌다 마른 벼락이 죽은 나무나 수십 년 쌓인 낙엽 더미에 불을 냈다가 비나 눈에 꺼지기도 하는, 모든 자연의 과정이 오늘의 미국의 자연을, 국립공원을 만들었다는 발상에 근거한 것이다. 거기에는 자연의 현 상태뿐 아니라 역사 과정 자체의 자연을 존중하자는 철학이 스며 있다.
물론 그 원칙은 덩치가 미국쯤 되니까 엄두라도 낼 수 있는 일이다. 가장 오래되고 또 대표적인 국립공원인 옐로스톤 국립공원만 면적(8,983㎢)이 서울(605㎢)의 약 15배다. 화재가 잦지만 인명 피해를 내는 예도 극히 드물다. 1972년~1987년의 15년 동안 옐로스톤은 모두 235건의 화재를 겪었고, 그 가운데 40ha 이상 면적을 태운 대형 화재는 모두 15건이었다고 한다. 주 정부 및 공원 당국은 당연히 그 사태에 전혀 개입하지 않았고, 불은 눈과 비에 꺼지거나, 스스로 탈만큼 탄 뒤 소진했다.
1988년 옐로스톤 화재는 기존의 불들과 사뭇 다른 양상으로 전개됐다. 우선 6월부터 가뭄이 예사롭지 않았다. 여름 뇌우에 7월 초 불이 번지기 시작했고, 바람까지 거칠어 중순 무렵 이미 3,400여ha가 초토화됐다. 기상 당국은 당분간 비가 올 가망도 없다고 예보했다. 당국은 7월 말 부득이 진화에 나섰다. 연 인원 2만5,000여명이 소방 방제작업에 동원됐다. 하지만 옐로스톤 화재는 기세를 꺾지 않았다. 지금도 공원 당국이 ‘검은 토요일’이라 부른다는 8월 20일에는 최악의 불폭풍이 불어 닥쳐 하루 사이에 약 6만여ha의 숲을 숯가마로 바꿔놓기도 했다.
불은 저절로, 9월 11일 시작된 첫눈과 함께 기세를 꺾었다. 연기와 소규모 발화는 11월까지 관측됐다. 88년 화재로 옐로스톤 국립공원 총 면적의 약 30%가 탔고, 최소 80만마리의 동물이 숨졌다. 희생된 회색곰도 확인된 것만 362마리였다고 한다. 옐로스톤의 어떤 구간은 지금도 대화재의 흔적을, 풍요로운 자연의 일부로 품고 있다고 한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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