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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다시 본 ‘중경삼림’

입력
2019.08.18 18:00
수정
2019.08.19 10:35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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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트푸드점 직원 페이(오른쪽)가 단골인 경찰 663을 바라보고 있다.
패스트푸드점 직원 페이(오른쪽)가 단골인 경찰 663을 바라보고 있다.

‘경찰 223’은 만우절 농담처럼 이별을 통보한 여자 친구를 자신의 생일인 5월 1일까지 딱 한 달만 기다리기로 한다. 그리고 유통기한이 5월 1일로 표기된 파인애플 통조림을 하루에 하나씩 산다. 생일을 하루 앞둔 4월 30일 밤, 어렵게 마지막 통조림을 구한 그는 편의점 앞에 앉아 명대사를 쏟아낸다. “난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세상에 유효기간이 없는 것은 없는 걸까? 내 사랑에 유통기한을 적어야 한다면 만 년 후로 적고 싶다.”

□ 국내에서 1995년 개봉한 ‘중경삼림’은 당시 참신한 사랑 영화로 인기가 높았다. 하지만 1997년 ‘홍콩 반환’을 앞둔 홍콩인들의 심정을 은유적으로 보여 준 영화라는 시각에서 보면 안보이던 게 보인다. 경찰 223이 내뱉듯 당시 홍콩인들은 150년 이상 유지되던 영국식 질서가 갑자기 떠나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불안했을 것이다. 하지만 막 개혁개방을 시작한 당시 중국 입장에 홍콩은 외국자본을 유치하는 데 꼭 필요한 보물이었다. ‘일국양제‘로 요약되는 중국과 홍콩의 미묘한 동거가 그 후 22년간 유지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 1997년 당시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18.4%를 차지하던 홍콩의 경제적 비중은 이제 3%까지 줄어들었다. 중국 정부가 ‘범죄인 송환법’을 앞세워 홍콩에 대한 통제권을 강화하려는 것도 이런 자신감에서 나왔을 것이다. 이에 대해 경제주간 이코노미스트는 “중국 정부가 본토에서 국가통제경제를 강화할수록, 홍콩에 대한 의존이 더 높아지는 역설적 상황”을 지적한다. 중국 금융 시스템에 대한 국제적 신뢰가 높지 않은 상황에서 중국 기업의 해외채권 발행이나 기업공개 등 자금 공급의 핵심으로서 홍콩의 존재감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 홍콩에 아시아 본사를 두고 있는 다국적 금융사들이 최근 소요사태로 이전을 적극 고려하고 있다. 톈안먼 사태 30년 후, 수백만의 홍콩인들이 굴하지 않고 광장에 모이는 용기에는 홍콩의 지위에 대한 자부심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왕자웨이 감독은 중경삼림에 홍콩인의 불안과 함께 중국 정부에 대한 희망도 담았다. 짝사랑하는 ‘경찰 663’ 집에 숨어들어 그를 떠난 여인의 흔적을 지우고 자신의 마음을 몰래 담는 ‘페이’의 조심스러운 사랑이다. 중국은 영국과 반환 협상에서 홍콩의 자율성과 법치를 50년간 유지하기로 약속했다. 중국이 홍콩을 지키려면 남은 28년간 홍콩인을 위협할 것이 아니라 마음을 얻어야 한다.

정영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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