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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험대원들 13일간 168㎞ 걸어…“히말라야는 고통 잊게 하는 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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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험대원들 13일간 168㎞ 걸어…“히말라야는 고통 잊게 하는 환희”

입력
2019.08.19 04:32
수정
2019.09.03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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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산 처음보고 이구동성으로 환호성

저마다 간직한 사연 “걷다 보면 풀리겠죠”

강정국(가운데) 대장 등 2019 안산시 ‘줌마탐험대원’들이 19일 인천공항에서 출발에 앞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강정국(가운데) 대장 등 2019 안산시 ‘줌마탐험대원’들이 19일 인천공항에서 출발에 앞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7월 19일 오전 인천공항 출국장. 경기 안산시가 갈수록 늘어나는 여성 산악인 지도자 양성을 위해 구성한 ‘줌마탐험대’ 1기생 16명이 네팔 히말라야 로만탕 지역으로 출발하기 위해 모였다. 밝은 표정이었지만 전날 밤 ‘만년설이 쌓인 히말라야를 본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를 틀림없이 고민했을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40~60대 여성대원들 중에는 암 투병 중이거나 폐업을 고민하거나, 세월호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서거나 버킷리스트를 이루려는 등 다양한 이유들이 있었다. 이미 6,000m 이상 고봉을 경험한 대원도 2명이나 있었다.

에베레스트 첫 등정 여부로 논란을 빚고 있는 조지 맬러리가 등반 이유에 대해 “산이 거기 있어서 오른다”고 말했다고 해서 처음 무성의하다고 생각했다는 데, 이제 보니 참 현명한 대답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이유나 의미 찾기는 개인적인 것, 내 이유가 남들에게 뭐가 중요하겠는가. ‘산은 거기 있으니 당신들이 올라가면서 의미를 찾으라’는 뜻으로 말한 것으로 나는 짐작한다.(여태껏 에드먼드 힐러리의 에피소드로 알고 있었는데 강정국 대장이 바로잡아 줬다.)

포카라에서 좀솜으로 가는 도중 다랑논 풍경. 이 정도면 곡창지대다.
포카라에서 좀솜으로 가는 도중 다랑논 풍경. 이 정도면 곡창지대다.

네팔인의 인사 ‘나마스테’는 ‘당신 안의 신께 경배드린다’는 뜻이란다. 그랜드캐년을 방불케 하는 메마른 협곡, 끝없는 산, 개울이 있는 한쪽 구석에 말 그대로 한 뙈기 밭에 의지해 사는 그들에게 나마스테는 적절한 인사로 보인다.

행복지수가 항상 높다는 네팔이지만 그들의 표정은 밝다기 보다는 그저 인생을 견딘다는 인상이었다. 특히 젊은이들의 표정이 어두웠다. 가이드 말로는 일자리가 없어서 경찰, 군인 등 공무원들이 박봉인데도 인기가 높단다. 그들에게 TV 등 미디어가 보급돼-전기사정이 나빠 거의 TV를 보지 못했다-비교의 대상이 생긴다면 지금처럼 높은 행복지수를 보일지는 미지수다.

아니, 내가 틀리기를 바란다. 그들은 ‘당신과 나의 신께 경배 드리면서’ 조용히 행복을 느끼는지도 모를 일이다. 힐러리의 말처럼 산은 늘 거기에 있는 것이고, 행복과 삶의 의미는 남이 판단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판단해야 할 몫이므로.

대원들이 좀솜에서 닐기리봉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대원들이 좀솜에서 닐기리봉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한국일보와 KBS ‘영상앨범 산’팀은 안산시 ‘(아)줌마탐험대원’ 16명과 함께 7월 19일부터 8월 5일까지 네팔 북부 로만탕 지역 168㎞(트레킹 13일)를 걸었다. 안산시체육회가 갈수록 늘어나는 여성 산악인들을 지도할 여성 산악지도자를 키우기 위한 체험교육이다. 2,000~4,000m 고도에 최고 높이는 쏘랑라패스의 5,416m였다. 2014년 이 일대에서 39명의 관광객이 눈사태와 돌풍으로 숨졌다고 기록은 전한다. 줌마탐험대원들은 8월 2일 3,700m에서 시작해 1,700m 고도를 치고 올라가 5시간 20분 만에 쏘랑라패스에 올랐다. 강정국 대장은 이곳을 오르는 사람 중 99.9%가 우리가 오른 묵티나쓰에서가 아니라 반대쪽 마낭에서 출발해 온다고 했다. 이번 줌마탐험대원들은 쉽게 설명해 일본 후지산에서 설악산만큼을 반나절 만에 더 올라간 것이다. 전문 산악인도 그 정도는 안 걷는다고 동행한 최상규 부대장이 말했다. 한국일보는 줌마탐험대와의 여정을 네 편으로 정리했다.

카트만두 시내의 전봇대. 전선과 통신선 무게로 휘어진 곳도 있었다.
카트만두 시내의 전봇대. 전선과 통신선 무게로 휘어진 곳도 있었다.

19일 오전 10시30분 윤화섭 안산시장이 와서 출발을 앞둔 대원들을 격려했고 곧 수속을 마치고 비행기에 올랐다. 네팔 카트만두와의 시차는 3시간 15분, 비행시간은 6시간40분이었다.

저녁에 도착했는데 도심 교통체증으로 버스로 20분 거리를 1시간30분이 지나서야 숙소인 삼사라호텔에 다달았다. 저녁식사 때 맥주를 쐈는데 13병에 110달러(13만원)가 나와 불평을 했더니 가이드 밍마가 나중에 20달러를 환불해 줬다. 사기 전에 밍마가 분명 한 병에 4,000~5,000원 할거라고 했다. 동행했던 김철수 부대장이 “여기는 스테이크 값이나 맥주값이나 비슷하니 참고하세요”라고 조언해 줬다.

다음날 오전 5시40분에 웨이크업 콜을 부탁했더니 5시 14분에 전화가 왔다. 내 발음이 나쁜 탓이려니 했다. 카트만두에서 포카라까지 국내선을 타고 갔다.

탐험대원들은 KBS 스케치 촬영을 위해 배낭을 메고 거리를 걷고 쇼핑을 했다. 소들이 한가롭게 거리를 걸었다. 노윤영 대원이 과일을 사는데 소 한 마리가 다가와 머리로 툭툭 치며 달란다.

포카라 길거리에 있는 소. 네팔은 힌두교와 불교가 공존한다.
포카라 길거리에 있는 소. 네팔은 힌두교와 불교가 공존한다.

점심을 먹고 포카라 페와 호수 전망대에서 경치를 감상하는데 한 남자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오토바이 관광이 있는데 싸게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거절했더니 이번에는 “좋은 해시시(마약)가 있는데 해볼 생각이 없냐”고 물어봤다. 손사래를 쳤다.

강정국 대장이 저녁 때 바뀐 일정을 통보했다. 강 대장은 안나푸르나, 초호유 등 8,000m급 고봉 3개를 오르고 2번의 죽을 고비를 넘긴 전문 산악인이다. 뼈대가 굵고 잘 생겼다.

때는 몬순(우기)이어서 포카라에서 트레킹 출발지인 좀솜까지 국내선이 뜨기 어렵다는 것이다. 하루 기다렸다가 국내선이 안 뜨면 낭패니까 차라리 지프차를 타고 가자는 것이었다. 156㎞ 거리로 비행기로 25분 거리였지만 차로는 10시간 거리였다.

좀솜으로 가는 도중 잠깐 휴식을 취했다. 이 정도 도로는 훌륭한 수준이다.
좀솜으로 가는 도중 잠깐 휴식을 취했다. 이 정도 도로는 훌륭한 수준이다.

악몽의 차량 이동시간이 왔다. 도로는 엉망이었다. 비탈진 산은 어김없이 무너진 흙더미로 반쯤 막혀 있었고 단 한 번도 평탄한 길이 없었다. 물이 고여 있지 않으면 낭떠러지 길이었다. 차가 교행할 때마다 손에 땀이 찼다. 백미러가 스치는 간격은 몇㎝에 불과했다. 드라이버는 웃으면서 라디오를 들었고 가이드랑 줄기차게 대화를 나눴다. 30~40m 낭떠러지 길은 그들에게는 일상인 것 같았다. 오른쪽에 앉은 나는 단 한번도 손잡이를 놓지 않았다. 네팔은 인도, 영국의 영향을 받아서 운전석이 오른쪽이다. 기사는 절벽에 바퀴가 스치는데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나마스테, 신에게 경배할 일이다.

아이들이 통학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이 곳에서 운전하려면 한국의 운전실력으로는 어림도 없다.
아이들이 통학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이 곳에서 운전하려면 한국의 운전실력으로는 어림도 없다.

가는 길에 현지식 비빔밥으로 점심을 먹었다. 식당 근처에 공사안내 표지판이 있어 살펴보니 베니~좀솜~코랄라 도로계획에 대한 정부고시인데 2074년 계약해 2076년 완공한다는 내용이었다. 네팔이 이 정도로 장기계획을 세우는 나라인줄 몰랐다. 속으로 좀 무시한 거 같아 미안했다.(기사를 보고 한 독자가 ‘2019년 4월 14일이 네팔력(양력)으로 2076년 1월(BAISHAKH 2076) 1일이라고 알려왔다. 확인도 안 하는 무식한 기자라는 토를 달아서)

네팔 정부의 도로계획. 완공일이 2076년 8월15일로 돼 있다.
네팔 정부의 도로계획. 완공일이 2076년 8월15일로 돼 있다.

좀솜에 가까워질수록 풍경이 점점 삭막하게 변했다. 이번에 가는 북부 로만탕 지역은 사막지역이다. 남쪽의 안나푸르나, 다울라기리 산군(山群)에 막혀 비구름이 넘어오지 못해서다. 그래서 우기에는 이곳이 트레킹 선호지역이 된다. 하지만 다시 좀솜으로 와서야 한국 트레킹팀을 한 번 만났을 뿐이다. 이유는 불편한 숙소 때문일 것 같다.

절벽 모양이 점점 그랜드캐년을 닮아간다. 차이가 있다면 그랜드캐년을 콜로라도강이 만들었다면 이곳은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이다. 바다가 융기해서 만들어진 석회암지대여서 바람과 지진에 쉽게 부서지면서 전변만화의 풍경을 만들어 냈다.

길이가 어마어마한 룹세폭포에서 건너편 트럭이 오길 기다리고 있다. 이 곳에서 교행하는데만 30분 넘게 걸렸다.
길이가 어마어마한 룹세폭포에서 건너편 트럭이 오길 기다리고 있다. 이 곳에서 교행하는데만 30분 넘게 걸렸다.

도중에 트럭들과 교행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서 룹세폭포를 감상하는 행운을 누렸다. 네팔 교과서에도 나오는 유명한 폭포란다. 수원은 다울라기리 봉이란다. 물이 흩뿌려져서 시원했다. 30분 정도 걸려서 교행이 끝났다. 우리 같았으면 운전사들끼리 난리가 났을 텐데 서로 도와가며 잘 마무리했다.

가이드가 네팔과 중국이 일대일로 협정을 맺어 이 일대에 최대 6차로 도로를 건설한단다. 중국자본이 들어오면 훨씬 좋아질 거라고 말했다. 또 중국 자원조사 전문가들이 네팔 산악지대에서 유전을 탐사한단다.

네팔에 들어올 때 입국장 한 켠이 중국인 전용이어서 의아했는데 납득이 됐다. 이미 네팔은 중국 자본의 영향 아래 있었다. 참고로 네팔은 입국한 뒤 비자피를 내고 나서 이미그레이션으로 가야한다.

지프차 운전사들 8명은 우리 일행을 좀솜에 내려준 뒤 하루 자고 다시 포카라로 돌아간단다. 하지만 이들은 가는 도중 산사태로 길이 끊겨 5일 동안 그 곳에 발이 묶이게 된다.

좀솜에서 아침에 일어났더니 닐기리(7,016m)와 다울라기리(8,167m)봉이 선명하게 보였다. 설산이었다. 말로만 듣고 상상만 했던 설산이었다. 한 대원이 “너무 멋지다. 버킷리스트를 이뤘다”고 감탄했다. 이제 이곳부터 트레킹이 시작된다.

네팔(카트만두)=이범구 기자 ebk@hankookilbo.com 사진 배우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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