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몰아치던 비바람이 더위를 몰아냈나. 아침부터 선선한 바람이 분다. 순도 높은 우유 크림을 휘휘 저어놓은 듯한 구름이 하늘의 반을 차지하고 있다. 매미 울음소리가 요란하다. 일하지 않으면 죄책감을 느낄 것 같던 사람들이 놀지 않으면 죄책감을 느낄 것처럼 산과 바다로 휴가를 떠났다가 돌아오고, 태극기 휘날리던 광복절이 지나고 나면, 어김없이 이런 바람, 이런 하늘, 이런 햇빛의 시공간이 펼쳐진다. 이즈음 혼자 중얼거리곤 한다. 여름방학이 끝나 가고 있구나.
대부분 그렇듯 어린 시절에는 더위를 몰랐다. 뜨겁게 달궈진 날씨가 좋았고, 방학이 있어 더 좋았다. 그러나 벼르기만 하다가 몇 번 가보지도 못한 수영장이 어느 날 문을 닫아 버리고, 여전히 달콤하기만 한 늦잠은 뿌리치기가 힘든데, 쏜살같이 흘러가는 아까운 하루 끝에, 저녁놀이 짙은 선홍으로 물들어 가는 날들이 오고야 만다. 폭염이 지속되어 여름이 끝나지 않기를, 임시휴교령이라도 내려져 개학이 지연되기를 기대하지만, 그런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친구들에게 방학 숙제를 수소문하고, 밀린 일기를 써야 하는 시점이 된 것이다.
써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밀린 일기는 기억이 아니라 상상으로 쓰는 것임을. 모아둔 신문 뭉치를 찾아 몇 월 며칠에 비가 왔는지 확인하던 순진함을 포기한 뒤에는, 그저 적당한 주기로 맑음, 흐림, 비를 기록하는 꼼수를 썼다. 어머니를 조르고 졸라 수영장에 갔던 날이 두어 번 있었을 뿐, 방학 내내 아침 먹고 만화책 보고 점심 먹고 낮잠 자고 저녁 먹고 티브이 보다가 잤던 하루들의 연속이었는데, 일기란 도대체 왜, 뭘 써야 하는 건가.
일상이 단조로워 일기 쓰기가 고역인 것만은 아니었다. 선생님에게 검사를 받아야 하는 일기에 언니들과 온종일 고스톱을 쳤다든가, 화장실이 너무 더러워서 수영장 물속에 몰래 오줌을 눠버렸다든가, 수영장에서 표도 받고 핫도그도 파는 사람은 겨울에는 우리 동네 버스 정류장에서 군고구마를 파는데, 우리끼리 그 사람을 ‘바보 형’이라고 부른다든가, 그런 이야기는 쓸 수 없었다. 언니들과 대청소를 하며 유리창을 닦았고, 광복절에는 아침 일찍 일어나 태극기를 달았으며, 하나밖에 없는 아이스크림을 동생에게 양보했다는, 믿기 힘든 거짓말이나 일부러 저지른 선행을 기록했다. 누군가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일기에 쓰면 안 되는 것과 써야 하는 것을 나름 구분할 줄 알았다. 그러면서 단조로운 일상은 딱히 거짓이라기보다는 진짜가 아닌 무엇처럼 느껴졌다.
일기 쓸 거리조차 없이 흘려보낸 나날이 무에 그리 아까워, 여름방학이 끝나는 게 아쉽고 분했을까. 언젠가는 4차원의 문이 열려 진짜 같은 세상으로 날아갈 수 있을 것이라 믿었나. 그건 꼭 빈둥거릴 수 있는 방학에만 가능한 일이었나.
여름방학이 끝나 가고 있다. 마침내 지구가 망가져 버려, 폭염이 끝없이 지속될까 걱정했으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일기를 검사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음에도, 밀린 일기 쓰듯 꾸역꾸역 삶을 전시하는 것도 여전하다. 언젠가는 정말로 방학이 끝나버려, 그건 내가 아니라고 부인하던 것들이 오갈 데 없는 나임을 인정할 시간이 올 것인가.
P.S. 수영장에서 핫도그 팔던 동네 ‘바보 형’을 20대의 어느 날 용산역 승강장에서 마주친 적이 있다. 그는 당연히 나를 몰랐으나 나는 그를 알아보았다. 그는 커다란 트렁크를 낑낑 떠메고 장항선 열차에 올랐다. 활기차게 껌을 딱딱 씹고 있던, 황갈색 긴 퍼머 머리 여자의 트렁크였다. 여자가 좌석을 찾아 앉자, 그는 고향에 가서 잘 살라고 민망할 정도로 큰 목소리로 어눌하게 말했다. 그리고 느릿느릿 열차에서 내렸다. 거짓말 같은 기억의 한 장면이다.
부희령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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