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조현병학회ㆍ한국일보 공동 기획] ‘조현병 바로 알기’⑭ 김승준 건양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조현병 환자뿐만 아니라 환자 가족들도 당혹감, 걱정, 무력감, 탈진, 죄책감, 수치심 등과 같은 정서적 어려움을 많이 겪는다. 게티이미지뱅크

“처음 입원시킬 땐 정말 힘들었죠. 아들이 조현병이라니 믿을 수 없었고, 아들도 왜 강제로 입원시키냐고 화를 내서 정말 당황했죠. 이제 아들과 우리 모두 조현병 인정해요. 약 잘 먹은 후로는 혼잣말이나 엉뚱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없어요. 하지만 퇴원한 지 5년이 넘었는데 아직 취직도 안하고 사람도 만나지 않으면서 집에서만 지내네요. 처음 1~2년은 제가 걱정이 되어서 사회생활을 말렸는데, 지금은 이런 아들을 보면 솔직히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조현병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부터 다양한 증상이 시작되어 악화 및 호전의 과정을 거치면서 대인 관계와 사회 기능을 떨어뜨릴 수 있는 만성 질환이다. 환청과 망상을 포함한 급성기 양성증상이 심해 병원에 입원하면 대부분 성공적으로 치료되어 퇴원이 가능하다. 하지만 감정과 의욕이 둔해진 음성증상이 지속되면 독립적인 생활을 하기 어려워질 수 있어 이런 환자를 위한 가족, 지역사회, 국가 차원의 사회적 지지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전통적으로 가족 의무가 중시되어 온 반면에 지역사회 기반의 정신재활서비스 및 국가 사회보장제도가 아직 확실히 자리를 잡은 상태가 아니다. 대부분의 조현병 환자들에 대한 돌봄의 부담은 온전히 가족의 몫으로 남아 있다.

가족들은 조현병 환자를 돌보는 상황에서 다양한 경제·사회·심리적 어려움에 따른 객관·주관적 부담을 갖게 된다. 다른 만성질환 환자의 가족들과 마찬가지로 조현병 환자의 가족들도 환자를 돌보려면 겪을 수밖에 없는 금전 지출, 시간 소비 및 사회생활 제약 등의 측정 가능한 객관적 부담이 상당하다.

그러나 돌봄 과정에서 느끼는 심리적 고통의 정도를 의미하는 주관적 부담은 다른 만성질환 환자 가족보다 상대적으로 크다. 즉, 조현병 환자 가족들은 당혹감, 걱정, 무력감, 탈진, 죄책감, 수치심 등과 같은 정서적 어려움을 훨씬 더 많이 겪는다.

앞에 소개한 환자의 가족들이 그랬듯이 치료 권유에 화를 내는 환자를 보며 심한 당혹감에 휩싸일 때가 많다. 사회적으로 고립된 채 집 밖으로 나가려 하지 않는 환자와 함께 생활하면서 걱정과 무력감에 더해 심리적 탈진을 겪기도 한다. 게다가 가족들의 주관적 부담은 우리 사회의 조현병에 대한 오해와 편견으로 인해 더욱 증폭될 수 있다. ‘유전된다’ ‘부모의 잘못된 양육으로 발생한다’ ‘범죄율이 높아 위험하다’ ‘약을 먹어도 낫지는 않고 부작용만 많다’ 등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모두 잘못된 말이지만 이를 접할 때 가족들은 불필요한 죄책감과 수치심까지 감수해야 한다. 결국 가족들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고민을 안고 살게 된다. “텔레비전에서 조현병 환자 이야기 나오면 마음이 울적해져요. 대부분 범죄와 관련된 내용이잖아요. 사람들 시선이 의식되어 아들이 조현병을 앓고 있다고 친한 친구에게도 말할 수가 없어요.”

환자 가족들의 주관적 부담은 가족 구성원의 삶의 질과 정신 건강에 대한 악영향으로 끝나지 않는다. 죄책감과 수치심 같은 주관적 부담을 크게 느낄수록 가족들이 환자를 지나치게 비판하거나 과도하게 간섭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는 오히려 환자의 반발심을 키워 증상 재발의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므로 환자 가족들은 자신의 정신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환자의 재발 예방을 위해서도 환자를 대하는 적절한 태도가 무엇인지 알 필요가 있다.

첫째, 환자의 병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해야 한다. 병을 받아들인 후에야 회복을 위한 방법들을 적극적으로 모색할 수 있다. 둘째, 환자의 본 모습과 병의 증상을 구분해야 한다. 급성기에 환자가 공격적일 수 있는데, 이는 본래 성격도 아니고 과거에 쌓인 분노가 폭발한 것도 아닌 병의 증상임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 지나친 걱정으로 본의 아니게 환자를 소외시키지 말아야 한다. 환자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가족 내에서 아무런 역할도 맡기지 않거나 사회활동을 만류하는 것은 오히려 회복에 방해가 될 수 있다. 넷째, 환자의 현재 상태에 맞는 기대를 가져야 한다. 병이 진행되면서 기능 수준이 떨어진 환자라면 과도한 기대에 따른 행동 압박이 오히려 갈등과 증상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다섯째, 환자를 돌보는 과정에서 가족 내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 가족 중 한 명의 일방적 희생보다는 가족 구성원 전체의 적절한 역할 분담이 필요하며, 환자를 돌봄과 동시에 각자의 생활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자신들의 정신건강을 지켜나갈 수 있어야 한다.

경제·심리적 자립 능력이 부족한 만성 조현병 환자들이 나이가 들어서도 독립하지 못하고 나이 든 부모와 함께 사는 경우가 많다. 이런 환자를 데리고 진료를 위해 내원한 노부모가 가끔 질문을 던진다. “이제까지는 어떻게든 데리고 살았는데, 저희들이 죽으면 얘는 어떻게 되나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라면 비교적 흔히 듣는 질문이지만 적절히 답하기가 매우 어려운 문제다. 진료 차원을 넘어서 사회보장적 제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가족이 책임질 수 없는 상황이라면 국가가 책임을 이어받아야 한다. 아쉽게도 우리나라에는 아직 이러한 제도가 자리잡지 못하고 있다.

조현병 환자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져 있는 지금, 그들을 돌보는 가족들의 객관·주관적 부담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조현병 환자들에 대한 돌봄의 부담을 온전히 가족의 몫으로만 남겨 두는 선진국은 없다. 가족들의 부담을 경감시킬 수 있는 실질적인 법과 사회적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 조현병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애정 어린 관심이 절실하다.

김승준 건양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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