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치스비치 결성한 치즈ㆍ스텔라장ㆍ러비ㆍ박문치
서울 홍익대 인근 공연장은 오랜 기간 인디 가수의 놀이터였다. 이들 손에서 실험적인 곡이 여럿 탄생했고, 일부는 입소문을 타며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이곳에 유독 나타나지 않는 한 분야가 있다. 아이돌 K팝이다. 곡 하나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투입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체계적 교육을 받는 대형 가요기획사 연습생을 인디 가수가 따라 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간혹 ‘홍대 아이돌’이라는 별명이 붙은 이들이 등장했지만, 실상 비유적인 표현일 뿐이었다.
진짜 ‘홍대 아이돌’ 그룹이 등장했다. 8년 차 싱어송라이터 치즈를 비롯해 스텔라장, 러비, 그리고 프로듀서 박문치로 구성된 치스비치가 그 주인공이다. 지난 6일 발표한 첫 싱글 ‘섬머 러브…’가 음원 차트 100위권에 오르고 관련 굿즈(상품)가 품절되는 등 깜짝 성과를 거두고 있다.
치스비치는 1990년대 아이돌 그룹을 오마주하고 있다. 멤버 모두가 작사와 작곡에 참여한 ‘섬머 러브…’는 90년대를 풍미했던 핑클과 S.E.S.의 여름 시즌 노래를 떠오르게 한다. 모두 그 시절 음악을 좋아했기에 가능한 프로젝트였다. 13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치스비치 멤버들은 한목소리로 “한 번쯤 시도하고 싶었던 장르”라고 말했다. 러비는 “1990년대 아이돌 노래가 가수로 성장하는 데 많은 영향을 줬다”며 “억지로 가사를 외운 것도 아닌데, 자연스레 랩 소절까지 흥얼거리고 있었다. 멤버 모두 가장 좋아하는 음악”이라고 설명했다.
그룹 결성부터 데뷔까지 일사천리였다. 멤버들이 처음 만난 지 2개월 만에 첫 앨범이 발매됐다. 그사이 곡 작업을 위해 모인 횟수는 세 번뿐이었다. 편곡은 박문치가 하루 만에 마무리했다. 그만큼 멤버 간 믿음이 굳건했다. 치즈는 “러비가 처음에 아이돌 그룹 제안을 했을 때, 재미있을 거 같아 바로 승낙했다”며 “새로운 시도에 걱정도 됐지만, 곡이 만족스러웠다. 내심 좋은 결과를 기대했다”고 밝혔다. 박문치는 “처음에는 편곡 의뢰로만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노래도 하고 프로필 사진까지 찍고 있었다”며 “눈 떠 보니 아이돌이 된 것”이라고 웃었다.
도전은 큰 호응으로 이어졌다. 유튜브에는 1990년대를 추억하거나 패러디하는 팬들의 댓글이 300개 가까이 달렸다. 그만큼 팬들에게 치스비치 음악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발매 예고를 게재했을 때도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다. 러비는 “방울머리 끈과 팔 토시를 추천했던 메이크업 아티스트조차 우리가 데뷔용 프로필 사진을 찍는다고 생각하진 못했다”며 “따라 부를 수 있는 딸 노래가 생겼다며 부모님이 가장 좋아했다”고 말했다. 치즈는 “기리보이와 헤이즈 등 또래 가수들이 많이 응원해 줬다”고 덧붙였다.
아이돌 그룹답게 안무도 준비했다. 사방으로 찌르는 손가락 춤과 댑(Dab)이 포인트다. 조만간 얼굴 클로즈업 등 1990년대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뮤직비디오도 촬영할 예정이다. 스텔라장은 “아직 음악프로그램 스케줄이 없지만, 연말 가요대제전 무대에는 한 번 서보고 싶다”면서도 “러비가 농담처럼 던진 말을 실현시키는 사람이라 조심해야 한다”고 웃었다. 러비는 “현 리더가 치즈인데 매 시즌마다 바뀐다”며 “모든 멤버가 한 번씩 리더를 맡을 때까지 활동하는 것이 목표고, 우선 올 겨울 신곡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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