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 수발에 비용 부담 크지만… “나를 믿는 눈빛 보면 포기 못해요”

김지운(가명ㆍ36)씨는 지난달 동물병원에 갔다가 어린아이처럼 서럽게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수의사로부터 뜻밖의 한마디를 들은 것이다. “빙고가 13살이나 먹었으니 반려견 가운데서도 많이 늙었어요. 마음의 준비를 하세요.” 김씨도 작년과 달리 혼자서는 걷기조차 힘들어하는 빙고를 보면서 서글픈 예감을 하고 있었지만 남의 입에서 들으니 충격이 컸다. 김씨는 거리 한복판에서 소리 내어 울었다고 했다. “선생님은 아무 것도 모르면서 헛소리야!”

요즘 김씨는 반려견을 키우고 십수년 만에 처음 겪는 일들로 정신이 없다. 당황스러운 일의 연속이다. 이달 초에는 빙고가 견생 처음으로 이불에 실수를 했다. 늙어서 근육이 약해진 탓에 방귀를 뀌다가 그만 실례를 한 것이다. 며칠 전에는 자동차 뒷좌석 개집(케이지)에서도 볼일을 봤다. 김씨는 “십여년 전에 빙고를 지인에게서 데려온 전후로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부쩍 늘어났다”면서 “나만 겪는 어려움이 아닐 것”이라며 웃었다.

김지운씨의 반려견 빙고. 빙고는 올해로 태어나 13번째 해를 맞았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동네 뒷산을 뛰어다녔지만 최근에는 하루의 대부분을 누워지낸다. 그럼에도 체중을 유지하는 이유는 하루 3시간씩 김지운씨가 손에 사료를 쥐고 밥을 먹여주기 때문이다. 김지운씨 제공

늙은 개들의 시대가 열렸다. 지난해 기준 국내의 반려견 양육 가구는 전체 가구의 18%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이 기르는 반려견은 최소 507만마리에서 최대 680만 마리에 달한다. 한국펫사료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이들 가구 가운데 39%는 처음으로 개를 기르기 시작한 연도가 2009년 이전이다. 첫 강아지를 그대로 기른다고 단순가정하면 반려견 10마리 가운데 4마리가 10살 이상 먹은 노견인 셈이다. 쇼핑몰과 길거리에 강아지를 태운 유모차인 ‘개모차’가 늘어나는 까닭에는 이런 배경이 있다. 노견의 증가와 함께 반려견 문화도 변하고 있는 것이다.

◇‘막내’ 위주로 바뀐 생활방식

견주에게 노견은 먼저 늙은 막내나 마찬가지다. 꼬물거리며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손바닥만하던 강아지가 어느새 가죽이 늘어지고 털이 빠졌다. 애견인 사이에는 개의 1년은 사람의 7년과 맞먹는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개 나이 10살이면 사람 나이 70살인 셈이다. ‘할아버지’라고 장난스레 부르지만 대개 8~12살부터는 ‘막내 수발’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견주의 생활방식도 반려견을 중심으로 재편된다. 노견 혼자서는 음식을 입에 대지 않는 경우가 많고, 특히 각종 질병 치료를 위한 약을 먹이려면 하루에 최소 한 번씩은 사람이 반려견 곁에 붙어있어야 한다.

프리랜서 일러스트 작가인 김씨 역시 빙고와의 기싸움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아침 일찍부터 빙고를 수십분씩 어르고 달래서 간신히 밥을 먹인다. 밥을 먹지 않는 강아지는 며칠을 못 가고 쓰러지기 때문에 김씨의 마음은 매번 살얼음판을 걷는다. ‘제발 오늘 밥은 씩씩하고 맛있게 먹어다오.’ 하지만 기대는 배신당하기 일쑤다. 밥그릇을 치웠다가 다시 내주는 식으로 길게는 1~2시간씩 눈치싸움에 진을 빼고 나서야 김씨의 일과가 시작된다. 그나마 밥을 손에 쥐어서 주면 먹는 척이라도 한다. 수의사 선생님은 “노견이라도 사람과 교감하는 마음은 여전해서 손으로 주면 어떻게든 먹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지운씨가 그린 빙고. 김씨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타그램 계정(@0minus3)에 그림을 그리면서 빙고를 기억하기 위한 작업으로 하루를 보낸다. 김씨는 “먼저 떠난 다른 강아지들을 그려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는 감정이입이 돼서 그림을 그리기가 어려울 때도 있었다”라며 웃었다. 인스타그램 캡처

충주의 문물결(43)씨는 11살 먹은 노견 ‘율마’의 식단을 짜는 데 도사가 됐다. 율마는 쿠싱증후군, 당뇨병 등 만성질환을 앓고 있어서 식성이 좋다. 덕분에 문씨는 율마의 체중이 늘지 않도록 까다롭게 식사를 준비하고 매일 사진을 찍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기록으로 남긴다. 15일 아침식사는 삶은 닭 안심살에 두부와 찐 단호박을 씨앗째 갈아 데친 브로콜리, 치아씨드, 아마씨드를 섞고 요거트를 얹었다. 14일은 삶은 황태채에 압력솥에서 익힌 현미와 녹미, 적미, 흑마를 섞고 삶은 양배추와 계란, 생당근, 아마씨드, 치아씨드, 아몬드로 준비했다. 재작년까지 동물 관련 연구를 했던 경력이 도움이 된다. 식이요법 관련 외국 전문가 사이트까지 뒤져서 밥을 먹인 다음에는 하루에 12시간 간격으로 율마의 혈당을 체크하고 여러 약물을 먹이고 인슐린 주사를 놓는다. 또 다른 두 반려견과 함께 매일 같이 산책한다. 문씨는 “직장을 안 다녀서 다행”이라면서 웃었지만 스트레가 전혀 없지는 않다. 휴가 때도 멀리 가지 못하고 집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여행은 개들을 맡길 만한 곳이 없으면 포기하는 편이다. 지난 설에는 시부모님과 불편한 사이가 되기도 했다. 시댁에 머물면서도 아침저녁으로 1시간 거리 친정에 가서 율마에게 인슐린 주사를 놔줘야 했기 때문이다.

문물결씨가 기르는 율마가 2018년 10월 백내장 수술을 마치고 맑아진 눈을 보이고 있다. 율마는 당뇨병과 쿠싱증후군을 앓고 있어 식욕이 왕성하다. 문씨는 율마의 체중을 적절하게 유지하기 위해 외국 식이조절 전문정보 웹사이트를 뒤져가며 식단을 짠다. 문물결씨 제공
문물결씨가 율마를 위해 준비한 15일 아침식사. 삶은 닭 안심살에 삶은 두부와 찐 단호밧을 씨앗째 갈아 내놨고 여기에 데친 브로콜리와 치아씨드, 아마씨드, 요거트를 곁들였다. 16일에는 삶은 황태채에 데친 콜리플라워, 압력솥에서 익힌 현미 적미와 생돌김을 준비했다. 율마는 당뇨병과 쿠싱증후군을 앓고 있어서 식단을 관리하지 않으면 건강이 위험하다. 인스타그램 캡처
◇비용 걱정보다 책임이 우선

반려견이 늙으면 양육비용이 급격히 늘어난다. 의료비가 대표적이지만 사료비도 고급 사료를 써야 해 더 들어간다. 예컨대 김씨의 빙고는 만성신부전증에 걸려서 수의사로부터 처방을 받아야만 구입할 수 있는 특별한 사료를 먹어야 한다. 흔히 ‘중고차 한대 값 정도는 썼다’라고들 이야기하는 까닭이다. 실제로 문씨는 지난해 당뇨합병증으로 백내장이 악화된 율마를 치료하는데 6개월 정도 사이에 800만~900만원을 썼다. 초진부터 백내장 수술, 이후 6개월 동안 경과를 살펴보는 동안 지출한 비용이다. 이후로도 율마의 약값으로 45일마다 70만원씩 쓰고 있다. 여기에는 매달 40만~45만원에 달하는 인슐린 구매, 혈당검사지 구매, 인슐린주사기 구매비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의정부의 직장인 이자인(29)씨 역시 지난해 13년 견생을 마치고 ‘무지개 다리를 건넌’ 아롱이를 돌보느라 한때 금전적으로 힘든 시기를 겪었다. 아롱이는 늘그막에 만성 피부병을 앓았는데 1년간 약을 먹었다. 이씨는 대학교 졸업반이었지만 아롱이 약값과 밥값을 대기 위해서 전화 판촉부터 미술학원 강사일까지 아르바이트 종류를 마다하지 않았다. 이씨는 “내가 키우는 강아지니까 내가 책임지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라고 털어놨다.

하지만 한번 거둔 생명을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이 부족한 사람들은 의료비 부담에 유기하는 경우마저 있다. 반려동물 의료비를 보장해 주는 보험상품이 나와 있긴 하지만 2017년 기준 반려가구의 보험 가입률은 0.2%로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아롱이는 지난해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아롱이를 마지막까지 보살핀 이자인씨는 “강아지를 맞이한다는 것은 가족으로 평생을 같이 할 존재를 만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털어놨다. 이자인씨 제공
◇무한신뢰의 눈빛, 포기 못하죠

김씨는 요사이 거리에서 욕을 먹거나 따가운 눈총을 받는 경험을 종종 한다. 빙고가 더 이상 걷지를 못하니 유모차에 태우고 산책을 나가는데 조용히 인도 한편에 붙어서 통행하는 데도 불쾌한 소리를 듣는 경우가 있다. 혀를 차거나 개 똑바로 키우라고 소리 지르는 남성을 만나는 날이 드물지 않다. 술에 취한 사람도 많지만 그저 시비를 걸고 싶어서 웅얼거리는 경우가 많다. 남동생이나 아버지와 함께 다니면 겪지 않는 일이지만 매번 도와달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문씨 역시 “산책시킬 때도 여자가 견주라고 만만히 보고 욕을 하거나 쫓아오며 시비를 거는 경우가 많다”라고 하소연했다.

그럼에도 매일 산책을 포기하지 않고, 아침마다 온 정성을 기울여 밥을 준비하고, 많게는 1,000만원씩 의료비를 지출하면서도 반려견을 정성으로 돌보는 이유가 뭘까. 인터뷰에 응한 이들은 “개만큼 타인에게 온전한 신뢰를 보내는 동물은 없다”라고 입을 모았다. 김씨는 “개는 개라서 자식 같다고 표현하지는 못하겠다”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요새 가끔 빙고를 보고 내 새끼, 내 새끼 하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온다”라고 말했다. “개는 내가 집에 늦게 오든, 일찍 오든, 언제나 똑같은 마음으로 나를 기다려주고 반겨줘요. 그게 복종이라면 복종인데, 어쨌든 그만큼의 신뢰관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사람끼리는 그런 일관되고 무한한 신뢰가 생기기 힘들잖아요”라고 설명했다. 문씨도 “동물병원에 들어서면서부터 벌벌 떨던 율마가 제가 안아주니까 주사도 잘 맞고 머리를 기대어 왔을 때 아, 정말 나를 믿고 따르는구나 하고 느꼈어요”라고 말했다.

아롱이가 건강했던 시절, 딸 누룽지와 함께 공원을 달리고 있다. 이자인씨 제공

반려견과 유기견이 함께 늘어나고 있다는 뉴스에 이들은 강아지를 입양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그 강아지가 늙었을 때까지 함께 할 자신이 있는지 스스로 물어보라고 조언했다. 이씨는 “그저 제 마음을 달래려는 목적으로 새로운 개를 키울 생각은 없다”면서 “가족으로 평생 같이할 존재를 만난다는 건강한 확신이 섰을 때 반려견 입양을 다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문씨 역시 그저 유행하는 견종을 ‘귀여우니까’ ‘재미있을 것 같으니까’ 등의 이유로 사는 세태는 멈춰야 한다고 단언했다. “유행하는 견종을 가게에서 사는 것은 인터넷에서 예쁜 물건을 사는 거나 진배 없다고 생각해요. 막상 샀더니 자신과 안 어울릴 수도 있고, 똥오줌 치워야 되고, 매끼니 밥 먹여야 하는 번거로움을 뒤늦게 절감하게 되죠. 그러다 보면 귀찮아지고 결국 반려견을 유기하게 될 수도 있어요. 반려견은 사람에게 무한한 신뢰를 주는 존재인만큼 돌봄에도 정성이 필요하다는 것, 모든 행동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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