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각계 설문조사 등 한달 반 동안 연설문 준비 후문
文 “경제 관련 희망 메시지 담자” 지시하며 김기림 시인 작품 인용
문재인 대통령은 15일 제74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화두로 던졌다. 7번에 걸쳐 같은 문구를 반복했다. 아직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가 되지는 못했지만, 만들어나가겠다고, 그러기 위해선 충분히 강해져야 하고 분단을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5일 문 대통령 경축사에선 ‘아무도 흔들 수 없는’이란 말이 7차례 등장했다. 처음엔 해방 직후 발표된 김기림 시인의 ‘새나라 송(頌)’ 일부를 읊는 과정에서 나왔다. “시멘트와 철과 희망 위에/ 아무도 흔들 수 없는 새나라 세워가자”란 구절이다. 문 대통령은 그러나 ‘우리가 충분히 강하지 않고, 여전히 분단되어 있어서’ 아직 그런 나라를 이루지는 못했다고 했다. 이어 “어떤 위기에도 의연하게 대처해온 국민들을 떠올리며 우리가 만들고 싶은 나라,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다시 다짐한다”고 덧붙였다.
김기림 시인의 작품이 핵심 메시지로 부각된 데는 ‘경제와 관련한 희망의 메시지가 필요하다’는 대통령 판단이 작용했다. 연설문 준비 과정에서 청와대 참모진은 각계 인사들에게 경축사에 어떤 메시지를 담으면 좋겠냐는 설문조사를 거쳐, 경제를 키워드로 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러한 보고를 받은 문 대통령이 “광복 직후 문학 작품, 위인 어록에서 경제 건설을 얘기한 것을 찾아보자”고 주문했다는 전언이다. 청와대는 연설문을 약 한 달 반 동안 준비했고, 이 기간 동안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과 강기정 정무수석이 주재하는 태스크포스(TF) 회의가 각각 세 차례씩 열렸다고 한다.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에 대한 다짐은 일본의 수출규제가 한국의 경제성장을 저해하려는 의도에서 이뤄졌으며, 그렇기에 자립을 통한 자강이 더욱 긴요하다는 정부 판단과도 맥이 닿아 있다. 문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경제’라는 단어를 39번 말했고, 6번에 걸쳐 한국을 ‘강국’이라 칭했으며, ‘일본’이란 단어는 12차례 말했다.
심훈의 ‘그날이 오면’도 경축사에 인용됐다.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을 갈망하던 선열들의 정신이 국민들의 가슴에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고 문 대통령은 말했다. ‘우리 힘으로’ 분단을 극복하고, 경제 강국을 만들자는 메시지엔, 남강 이승훈 선생의 말이 인용됐다. “나는 씨앗이 땅속에 들어가 무거운 흙을 들치고 올라올 때 제힘으로 들치지 남의 힘으로 올라오는 것을 본 일이 없다”는 문장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5,700여자(공백제외)로 쓰인 경축사를 약 27분간 단호한 어조로 읽었다. 지난해 경축사(4,500여자)에 비해 늘어났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라는 마지막 대목에선 주먹을 불끈 쥐고 흔들기도 했다. 20차례 걸쳐 박수가 터져 나왔다. 경축식엔 독립유공자와 유족을 비롯, 1,800여명의 참석자가 자리했다.
이날 경축식은 ‘우리가 되찾은 빛, 함께 밝혀갈 길’이라는 주제로 충남 천안시 독립기념관에서 열렸다. 이곳에서 경축식을 연 건 2004년 이후 15년 만이다. 문 대통령은 푸른 빛이 도는 두루마기 한복 차림으로, 김정숙 여사는 흰색 한복 차림으로 참석했다. 앞선 두 차례 경축식에서 문 대통령은 정장을 착용했다. 김원웅 광복회장은 이날 기념사에서 일본 경제보복 조치에 문 대통령이 의연하게 대처하고 있다며 박수를 유도했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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