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문학상 수상 작가 윤이형 소설집 ‘작은마음동호회’ 내
[저작권 한국일보]윤이형 작가는 지난해 발표한 중편소설 ‘그들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고양이’로 2019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이 아직도 문학상을 중요하게 생각하는구나, 싶었지 별 생각이 없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류효진 기자

윤이형(43) 작가의 소설에는 명확히 구분 짓거나, 함부로 요약하기 어려운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것은 인물의 정체성 때문일 수도 있고, 인물이 몸 담고 있는 세계의 낯섦 때문일 수도 있다. 페미니스트 엄마, 아이를 원하는 레즈비언, 트랜스젠더와 그의 가족, 혼외관계를 맺고 있는 성폭력 피해자, 여성 로봇. 누군가에게는 ‘별종’으로 보일 수도 있겠으나 작가에게는 자연스러운 세계다. “어떤 사상이나 주의가 한 인간의 서사를 완벽히 설명해 줄 수 없는 것처럼, 전형과 틀로 한 사람을 가둘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019 이상문학상 수상작가인 윤이형의 신작 소설집 ‘작은마음동호회’가 나왔다. 2015년 겨울부터 올해 6월까지 발표된 11개의 단편을 묶은 것이다. 책에 실린 글이 쓰인 시기는 한국 사회가 정치사회적 격변을 통과하던 때와 맞물린다. 자연스럽게 소설에도 바깥세상의 이야기가 적극 반영됐다. ‘엄마’이자 ‘촛불집회 나가는 여성’이 주인공인 표제작 ‘작은마음동호회’ 역시, 한창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을 당시 아이 때문에 광장에 나갈 수 없었던 작가 본인의 괴로움에서부터 시작됐다. 14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만난 윤 작가는 “단지 집회에 참여를 못 해서가 아니라, 아이를 키우는 엄마는 정치적인 존재로 살 수 없다는 현실 때문에 괴로웠다”고 말했다.

“기혼 유자녀 여성의 현실은 정말 아주 작은 것부터 투쟁의 연속이에요. 육아라는 직업이 사회와 여성을 단절시켜버리거든요. 자신의 말과 행동을 광장에 드러낼 수도 없고,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투쟁을 하고 표현할 수 있나 생각해보니 결국엔 같이 모여 방법을 찾고 의사를 관철시키고 싸워야 가능하더라고요.”

[저작권 한국일보] 강남역 살인사건과 문단 내 성폭력 등, 최근 몇 년 동안의 여성이슈는 윤 작가를 흔들어놨다. 이후 작가는 새로운 ‘여성’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게 됐다. 류효진 기자

‘정치하는 엄마’처럼, 윤 작가의 인물들은 전형을 거부한다. 이는 퀴어에도 마찬가지다. 아이를 갖는 일에 대한 생각이 다른 레즈비언 커플의 이야기 ‘승혜와 미오’는 ‘퀴어다움’에 대한 고민을 다룬다. “‘승혜와 미오’는 퀴어 퍼레이드가 열리던 당일에 쓴 소설이에요. 퍼레이드에 가고 싶은데 아이 때문에 못 갔거든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퀴어 퍼레이드에 가고 싶은 아이 엄마가 있는 것처럼, 아이를 낳아 기르고 싶은 퀴어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레즈비언이면 레즈비언, 아이 엄마면 아이 엄마, 전형이 있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그런 틀로 인간을 완전히 설명할 순 없어요. 저 역시 그렇고요.”

촛불집회와 퀴어 퍼레이드보다 작가를 더 강하게 강타한 현실은 2015년 강남역 살인사건을 기점으로 시작된 페미니즘 리부트 흐름과 문단 내 성폭력 문제 등 여성 이슈였다. 처음으로 ‘여성’이라는 정체성에 자의식이 생겼고, 새로운 자각은 글쓰기 방식까지 바꿔 놨다. “분명 내가 여성이고, 여성의 얘기를 쓰는데도 쓰고 난 다음에 보면 혐오가 남아 있는 것 같았어요. 계속 찾고 지워 내도 끝이 없어서, 아예 언어를 새로 만들어야 했어요. 어린 아이가 처음 말을 배우는 것처럼, 외부에서 주어진 언어가 아닌 내 자신의 말로 쓴 내 서사를 다시 발견해야 했죠.”

[저작권 한국일보] ‘여성 작가’로서의 고민은 지금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또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앞으로 쓰이게 될 소설들 역시 작가의 이런 고민과 무관할 수 없다. 당장 가을에 발표될 중편소설 역시 여성들의 서로에 대한 복잡다단한 마음을 다룬 것이다. 류효진 기자

‘여성으로서의 자각’이 가장 많이 녹아 든 소설은 ‘피클’이다. 성폭력 피해자와의 연대를 다뤘다. “성폭력 이슈를 정말로 계속 들여다 봤어요. 피해자의 편에 선다는 것이 어떤 뜻인지 오래 생각했어요. 명확하게 하고 싶은 말은 하나였어요. 피해자의 불안정성을 피해사실을 부정하는 근거로 써서는 안 된다는 것. 피해자가 되는 순간 ‘피해자다움’이 작동하면서 모든 사람이 검열의 눈으로 들여다보게 되는데, 사회에 팽배한 그런 피해자 혐오에 대해 쓰고 싶었어요.”

이전에는 SF, 판타지 등 장르적인 성격이 강한 작품을 많이 써왔다. 이번 소설집에도 ‘의심하는 용-하줄라프’같은 장르소설이 포함돼 있긴 하지만, 이전과 비교하자면 현실과 훨씬 밀착된 리얼리즘 성향이 강화됐다. 이 역시 현실 때문이다. “장르문학을 못 읽고 많이 못 쓰게 된지 좀 됐어요. 문단 내 성폭력 이후부터예요. 현실이 너무 압도적이어서, 환상과 현실을 동시에 보기가 힘들더라고요.” 괴롭고 힘든 현실이기에, 작가는 무엇보다 ‘연대’의 힘을 강조했다. “어쨌든 우리는 처음에는 작고 약한 존재였지만, 자신감과 힘을 갖고, 전보다 강력해져서 앞으로 나아가는 게 중요해요. 혼자서는 안 돼요. 대화를 나누고 서로 배우고 도와주면서 나아가야죠. 작은마음이 모여 만든 동호회처럼요.”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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