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직후 차관급 외교회담, 언론에 추진 사실 공개되자 취소 
 내주 한중일 외교장관 회담 계기 강경화ㆍ고노 양자회담도 조율중 
한일 양국이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 조치로 시작된 갈등 해결을 위한 외교적 해법을 모색하고 있으나 경제산업성 등 수출규제 담당부처는 여전히 강경한 입장이다. 사진은 조세영(오른쪽) 외교부 제1차관이 이달 초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초치해 면담하는 모습. 연합뉴스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 배제 조치에 맞서 맞대응 카드를 잇달아 내놓았던 정부가 광복절을 계기로 경색된 한일관계를 풀기 위한 외교적 해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차관급 회담이 계획됐다 언론에 내용이 공개돼 막판에 취소된 것으로 알려지는 등 물밑에선 대화를 시도하는 정황이 여러 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광복절 직후 제3국에서 열릴 것으로 알려졌던 조세영 외교부 제1차관과 아키바 다케오(秋葉剛男)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의 비공개 회담이 막판에 취소된 것으로 14일 전해졌다. 이번 차관급 회담은 한국이나 일본이 아닌 제3국에서 만나 강제동원 배상 및 수출규제 문제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해보자는 차원에서 추진됐다. 그러나 양국 외교당국은 언론을 통해 회담 추진 사실이 공개되자 물밑 논의에 부담을 느끼고 회담을 취소한 것으로 파악됐다.

한일 외교당국은 갈등이 심화하던 지난달 말에도 해법 마련을 위한 대화를 이어가자는 데 의견을 같이 한 바 있어, 두 차관이 조만간 비공개 회담을 추진할 가능성은 열려 있다. 또 양국은 다음 주 중 중국 베이징에서 열릴 가능성이 큰 한중일 외교장관회담을 계기로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무장관 간 회담 개최도 물밑에서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양국 기업의 자발적 재원 조성을 통한 ‘한일 기업 공동 기금 조성안’(1+1안)을 토대로 대화를 시작하자는 입장이다. 강제동원 피해 당사자 간 화해를 통한 근본적 문제 해결을 위해서다. 현재 당사자인 일본 기업들이 이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건 일본 정부의 영향 때문이라는 관측도 있는 만큼 양국 정부 간 대화가 필수적이다. 일본이 강제 징용에 대해 사과하면 한국 정부가 보상을 요구하지 않는 방안도 물밑에서 논의됐으나 일본 측이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외교 채널을 열어두는 동시에 일본이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판결에 대한 보복으로 수출 통제를 강화한 조치가 부당하다는 것을 알리는 국제 여론전에 나설 방침이다. 윤순구 외교부 차관보는 이탈리아와 독일, 윤강현 외교부 경제외교조정관은 프랑스와 영국을 각각 방문하기 위해 13일 출국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24~26일 프랑스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한일 문제를 거론할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다. 일본은 G7 회원국이지만 한국은 아니기 때문에 미리 국제 여론을 환기하는 차원이다.

윤 차관보는 벨기에 브뤼셀에 본부가 있는 유럽연합(EU) 방문 일정도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태호 외교부 제2차관이 다음 주 중 미국을 방문하는 방안과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제2차장이 조만간 캐나다를 방문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도 외무성을 통한 대화 채널을 열어두고 있지만, 대외적으로는 강경한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수출규제 담당부처인 경제산업성을 통한 대화에는 응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정했다고 마이니치(每日) 신문이 이날 보도했다. 지난달 12일 경제산업성과 산업통상자원부 당국자 간 대화 직후, 양측이 진실공방을 벌이면서 불신만 커졌다는 판단에서다.

지지(時事)통신도 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한 압력을 유지하면서 양보를 촉구하는 강경한 대응을 고수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외무성 관계자는 “누군가 수건을 던지지 않는다면 한일 대립은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경색된 한일 관계를 풀 핵심 열쇠는 외교 채널을 통해 강제 징용 배상 문제에 대한 입장 차를 얼마나 좁히는지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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