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 중국 전문가 진단] 장옌성 중국국제경제교류센터 수석연구원 
장옌성 중국국제경제교류센터 수석연구원이 12일 베이징의 연구실에서 한일 경제전쟁을 주제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그는 "한국은 비이성적으로 충돌하려는 미국과는 다르게 일본의 압박에 대처해야 한다"면서 "중국은 한일 갈등의 어부지리를 챙기는 것이 아니라 중재자로서 역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미중 무역전쟁에 비하면 한일 간 무역갈등은 훨씬 해결하기 쉽다. 둘 중 누구도 아시아에서 우두머리가 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장옌성(張燕生ㆍ66) 중국국제경제교류센터 수석연구원은 “한국은 일본에, 중국은 한국에 대한 산업과 기술 의존성이 매우 높다”면서 “중국이 거대한 시장을 갖추고 있으니 한국과 일본은 좀더 개방적인 자세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국이 바라는 건 양국이 대립해 어부지리로 얻는 작은 이익이 아니라 중간에서 조정자를 맡는 대국의 역할”이라며 “비이성적으로 충돌하려는 미국은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1년여 간의 무역전쟁에 이어 최근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며 뒤통수를 친 탓인지 한일 관계를 진단하면서도 그의 시선은 줄곧 미국을 겨냥하고 있었다. 이에 “강경 일변도인 서양의 해결방식과 달리 동양은 장기적인 영향을 고려해 원만한 해결을 선호한다”고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식의 윽박지르기가 아니라 긴 호흡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장 수석연구원은 한국을 향해 “갈등이 커지면 한국이 더 불리하기 때문에 일본에 맞서 대항하기 보다는 문재인 대통령도 여러 번 말했듯 외교적 방식으로 조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중국이 아무리 양보해도 항상 전쟁을 일으키려는 미국과 달리, 한국은 현 상황을 멈출 방법이 있고 또 즉시 중단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고 조언했다. 인터뷰는 12일 베이징(北京) 도심 시청(西城)구에 있는 그의 연구실에서 한 시간 가량 진행됐다.

 ◇장옌성은 누구 

중국 정부 대외경제 정책의 이론적 기반과 청사진을 제시해온 최고의 브레인으로 꼽힌다. 중국 경제를 총괄하는 조타수 역할을 맡으며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굴기(崛起ㆍ우뚝 섬) 정책을 뒷받침하고 있는 국가발전개혁위원회(발개위) 산하 대외경제연구소장을 지냈다. 발개위 학술위원회 사무총장이기도 하다. 중국 최고 권위의 경제학상인 ‘쑨예팡(孫冶方) 경제과학상’을 수상했다.

 _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한일 관계가 악화하면 동북아 지역이 글로벌 분쟁에 휩쓸리기 쉽다. 중국과 미국 같은 무역전쟁의 방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어느 쪽도 이길 수 없다. 하지만 한일 간에는 미중과 달리 문화적 차이가 적다. 당장 서두르기 보다는 길게 봐야 한다. 감정적으로 치열하게 다투면 화해하기 더 어려워진다. 매사에 역사적인 관점에서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문제를 처리해야 한다.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를 통해 한국과 일본이 매우 특수한 관계라는 점을 재확인했다. 한국과 일본, 또 중국까지 경제적으로 서로 밀접하게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마찰을 조장하는 건 모두에게 나쁜 영향만 미칠 뿐이다.”

 _한일 양국이 추가로 보복조치를 꺼낼까. 

“한쪽이 압박하고 다른 쪽이 보복하는 건 사태를 더 꼬이게 만들 뿐이다. 지금 중국과 미국의 상황이 그렇다. 한국은 생산에 필요한 많은 주요 원자재를 일본에서 공급받아야 한다. 모든 원재료, 중간재, 생산 기술 등을 혼자서 완성하는 건 불가능하고 합리적이지도 않다.”

 _한국과 일본이 싸우면 어부지리로 중국이 이익을 얻는 것 아닌가. 

“중국 입장에서는 한국과 일본이 무역전쟁을 중지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 다른 나라들이 충돌할 때 이득을 얻는 건 대국의 자세가 아니다. 중국이 한국과 일본의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을 맡길 바란다. 먼저 한국에 대한 반도체 소재 공급을 회복하고, 서서히 양국관계를 개선해 한중일 3국이 단결하기만 하면, 그 힘은 매우 클 것이다. 그래야 모든 국가에 유리하다. 현 상황에서 중국이 이득을 얻는다는 건 옹졸한 생각이다.”

 _하지만 한국의 삼성, SK 등 반도체 기업들이 이미 중국 업체로 수입선을 돌리려 한다는 언론 보도가 많다. 당연히 중국 기업에 이익 아닌가. 

“삼성은 종잣돈을 중국에서 마련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중국 시장이 아니었다면 삼성, SK, LG가 오늘 같은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을까. 예전에 삼성전자 사장이 찾아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는 ‘중국 시장은 삼성의 명맥’이라며 ‘중국 시장이 불경기이면 삼성은 끝장’이라고 말했다. 또 ‘중국 경제가 가장 좋았을 때는 바로 삼성과 협력했을 때’라고도 했다. 중국과 한국 반도체 업체들은 양측이 모두 이익을 얻는 호혜공영 관계다. 중국의 어부지리가 아니다. 이익이 있더라도 그건 중요하지 않다. 중국이 바라는 건 한국과 일본의 개방적인 태도다. 중국의 최대 관심사는 중화민족 부흥이다.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국가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한국과 중국은 밀접한 협력관계다. 미국과는 무역전쟁 때문에 어쩔 수 없지만 한국, 일본과는 협력관계를 유지해 동북아와 전세계 번영에 기여해야 한다.”

 
 _한일 갈등이 언제까지 갈까. 

“무역분쟁이 오래 가지는 않을 것이다. 양국 모두 상황을 더 이상 악화시키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미국이 도움을 제공할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양국이 서로 한걸음씩 양보하고 제3자가 나와 조정하면 빨리 끝낼 수 있다. 바로 중국의 역할이다.”

 _다음주 베이징에서 한중일 외교장관이 만나는데. 

“한중일 자유무역지대,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등 3국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사업이 많다. 이번 회의가 한일 무역분쟁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한국이 이번 기회를 통해 일본과 평화적인 대화의 방식으로 교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_무역전쟁에 환율전쟁까지 겹쳐 세계 경제가 요동치는데. 

“한일 간 갈등뿐만이 아니다. 미국의 환율조작국 지정, 그리고 유럽연합(EU)을 탈퇴하려는 영국 등 우리가 보고 싶지 않은 상황이 도처에 벌어지고 있다. 정상적이고 안정적인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급선무다. 과거 1ㆍ2차 세계대전, 미국의 대공황 등 세계 경제가 쇠퇴하면서 위험이 높아지는 시기가 있었다. 이 위험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중요하다. 중국은 미국을 발끝에 올려놓겠다는 것이 아니다. 미국이 이성적 대화와 협력으로 돌아가도록 하는 게 중국의 목적이다. 중국이 환율을 조작하지 않았다는 건 전세계가 다 안다. 중국이 먼저 아프겠지만, 미국은 역사상 최강의 상대를 만난 사실을 깨달을 것이다. 결국 이기는 것은 중국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일본과의 문제를 처리할 때 충돌하며 맞서는 방식을 가급적 택하지 않아야 한다. 불만을 모으면 쉽게 싸울 수 있지만, 국가가 이성적으로 국민들의 정서를 잘 관리하면 갈등을 더 쉽게 해결할 수 있다.”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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