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아파트 관리비 16개월 미납에도 복지부ㆍ통일부ㆍ서울시 전혀 파악 못해
13일 오후 서울 관악구 한 임대아파트 대문에 '청소완료 소독 중'이 적힌 종이 한 장이 덩그러니 붙어 있다. 이 집 안에서는 지난달 31일 북한이탈주민 한씨와 한씨 아들이 숨진 채 발견됐다. 조소진 기자

탈북민 한모(41)씨와 아들 김모(5)군이 굶어 죽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복지부, 통일부, 하나재단 등 관련 기관들의 대처가 더 정교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단돈 3,000원으로 한달여를 연명했을 탈북민 모자의 존재를 아무도 모른 셈이어서다.

13일 찾아간 한씨의 집,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한 임대아파트에는 ‘청소 완료 소독 중’이라 적힌 A4용지 한 장만 대문에 덩그러니 붙어 있었다. 한씨 모자가 숨진 채 발견된 것은 지난달 31일. 요금미납으로 단수조치를 했음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자 수도검침원이 직접 한씨 집을 찾았다. 수도검침원은 “집 안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관리사무소에 알렸고, 곧 경찰이 출동했다.

경찰은 시신 부패 상태, 가스 사용량 등으로 미뤄 한씨 모자가 약 두 달 전 사망한 것으로 추정했다. 한씨 통장에 남아있던 마지막 잔액 3,858원은 지난 5월 인출된 뒤 0원이었다. 자살 혹은 타살 흔적이 없고, 집에 먹을 거리가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경찰은 한씨 모자가 굶어 죽은 것이라 보고 있다. 정확한 사인을 가리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한 상태다.

한씨는 2009년 북한을 탈출, 관악구에 살았다. 중국동포 남편과 만나 경남 통영시로 이사했고, 2017년엔 남편을 따라 중국에 들어갔다. 그러다 지난해 10월 다시 관악구로 돌아왔다. 지난 1월 남편과 이혼한 뒤 아이와 단 둘이 살았다. 수입은 아들 앞으로 나오는 양육수당 10만원이 전부였다.

한씨 모자는 외부와 단절된 삶을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한씨와 제대로 얘기를 나눠봤다는 주민은 없었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서모(59)씨는 “한씨가 사시사철 챙이 큰 모자를 쓰고 땅만 보며 다녔고, 말을 걸어도 대답이 없었다”고 했다. 김모(57)씨도 “재활용쓰레기 분리수거나 음식물쓰레기를 버리는 것도 본 적이 없다”고 전했다. 아들 김군도 마찬가지였다. 아파트단지에 어린이집과 지역아동센터가 있지만 아들이 등록했다는 기록은 없었다. 구청에 기초생활수급자나 한부모가정 지원을 신청한 기록도 없다.

이 때문에 2014년 세상을 떠들썩 하게 했던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정부가 쏟아낸 대책이 무용지물이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돈이 없었을 한씨 모자는 월세와 가스비 등 공과금이 포함된 관리비를 서울주택도시공사(SH)에 16개월째 납부하지 않은 상태였다. 보건복지부는 ‘복지 사각지대 발굴시스템’을 통해 공공임대주택 등 취약계층 거주지역의 월세 체납 사례를 확인하고, 서울시도 이 시스템을 이용해 현장 점검을 하겠다 했다. 하지만 한씨 모자의 딱한 사정을 알지 못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일부 가구만 임대여서 발굴시스템에 포함되지 않았거나, 보증금에서 미납 부분을 감액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추정한다”며 “정확한 이유를 파악 중”이라고 밝혔다. 관할 주민센터 관계자도 “세 모녀 사건 이후 마련한 대책인 ‘찾아가는 동주민센터’는 스스로 요청하거나 이웃의 제보가 있어야 하는데 한씨의 경우 이웃들과 왕래도 없었다”고만 말했다.

구청 또한 꼼꼼하지 못했다. 한씨는 지난해 10월 전입신고 때 아동수당을 신청했다. 지난 4월까지 아동수당은 소득수준 상위 10% 이하 가구에만 지급됐다. 이 때문에 한씨는 자신의 소득 없음을 신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아동수당은 부적격자를 걸러내는 과정이라 한씨의 소득 없음이 도드라져 보이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구청 측 설명이다. 한씨가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직접 하지 않는 이상 한씨 사정을 알 방법이 없었다는 얘기다.

탈북민 관리 책임이 있는 통일부도 마찬가지다. 현행법상 정부가 탈북민의 상황을 살피고 지원하는 건 ‘초기 5년’이다. 너무 장기간 관리, 지원할 경우 탈북민 쪽에서 부담을 느끼는 경우가 많아서다. 한씨의 경우 탈북 이후 10년이 넘었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이상 지원 대상이 아니다.

법적 지원기간 5년이 지난 탈북민의 경우 통일부의 위탁을 받은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남북하나재단)이 돕기도 한다. 하지만 하나재단 지역센터도 몇 번의 이사를 거쳐 다시 관악구로 돌아온 한씨의 존재를 몰랐다. 한씨는 관악구로 다시 이사오면서 하나재단 상담사와는 접촉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부 관계자는 “기존 지원체계에서 받을 수 있는 혜택을 받지 못한 안타까운 상황”이라며 “재발 방지를 위해 탈북민 지원제도 전반을 재점검하겠다”고 말했다.

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빈곤층 지원제도가 상당히 엄격한 요건과 신청절차를 요구해 도움을 청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고, 스스로 지원대상이 아니라고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여전히 아사가 발생한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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