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숨진 채 발견
철저히 고립됐던 남한살이
“주민들끼리 복도에 돗자리 깔고 앉아 채소도 다듬고 했던 엘리베이터 바로 옆집인데, 그 집 사람이 주민과 어울리는 건 한 번도 못 봤어요.”
13일 오전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만난 주민은 한 집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지난달 31일 북한이탈주민 한모(41)씨와 한씨의 아들 김모(5)군이 숨진 채 발견된 집이다. 대문에는 ‘청소완료 소독 중’이라고 적힌 A4용지 한 장이 덩그러니 붙어 있었다.
경찰에 따르면 한씨와 김군 시신은 아파트 안에서 상당히 부패가 진행된 상태로 발견됐다. 수도검침원이 계량기를 확인하러 갔다가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관리사무소에 이야기하면서 한씨 모자의 죽음이 세상에 알려졌다.
시신 부패 상태와 가스 사용량 등으로 미뤄 사망한 지 약 2개월이 지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씨 모자 집에는 식료품이 거의 없어 현재로서는 아사 가능성에 무게가 쏠린다. 경찰은 한씨 모자의 정확한 사인을 가리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해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한씨는 2009년 북한에서 넘어와 관악구에서 살았다. 이후 중국동포 남편을 만나 경남 통영시로 터전을 옮겼고, 한때는 중국으로 이사를 가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다 한씨는 지난해 말 이혼한 상태로 아들을 데리고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관악구에 정착했다.
한씨 모자는 사망하기 전까지 외부와는 철저히 단절된 삶을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한씨를 몇 차례 봤다는 같은 아파트 주민들도 그와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다고 입을 모았다. 아파트단지 안에 어린이집과 지역아동센터가 있지만 아들 김군은 한번도 등록한 적이 없었다. 관악구청에도 기초생활수급자나 한부모가정 지원 신청이 되어 있지 않았다.
이웃 주민 서모(59)씨는 한씨에 대해 “여름 겨울 할 것 없이 챙이 큰 모자를 쓰고 땅만 보고 다녔고, 주민이 말을 걸어도 대답이 없었다”며 “외출할 때 항상 아이를 데리고 다녔던 게 기억난다”고 설명했다. 주민 김모(57)씨 역시 “한씨가 재활용쓰레기 분리수거를 하는 것도, 심지어 음식물쓰레기를 버리는 것도 본 적이 없다”며 “아이가 시끄럽게 놀아 아래층 주민과 다투는 걸 들은 적이 있는데, 말투를 듣고 중국교포인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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