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촛불시위 이끈 일본 변호사 3인 “강제징용 화해 가능했는데 아베 내각이 나서 제동” 
야스쿠니 반대 촛불행진이 열린 10일 오후 7시20분 도쿄 야스쿠니대로 사거리에서 일장기와 욱일기를 든 일본 우익들이 행진 참여자들을 위협하고 있다. 도쿄=정반석 기자

“아베 야메로(물러나라)!” “야스쿠니 노(No)!”

10일 저녁 도쿄 야스쿠니신사 인근 거리에서 식민지배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규탄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평화의 촛불을, 야스쿠니의 어둠에’라는 현수막을 앞세운 도쿄 시민 400여명은 ‘아베 퇴진’ ‘야스쿠니 반대’ ‘개헌 반대’ 등의 구호를 외치며 행진했다. 그러나 촛불 시위대가 야스쿠니대로 사거리에 접어들자 반대편에서 욱일기와 일장기를 든 일본 우익 시위대 40여명이 나타났다. ‘일본제1당 vs 친북좌파(한국인)’이라고 적힌 팻말을 든 우익 시위대가 욕설과 고함을 질러댔지만 숫적으로 우세한 촛불 시위대의 행진을 막을 수는 없었다.

이날 촛불 행진을 주도한 일본의 양심세력은 다름 아닌 각종 일제 피해 소송을 맡고 있는 변호사들이었다. 일제 식민지배에 피해를 입은 한국인이나 중국인의 입장을 대변하거나 야스쿠니 신사 합사 반대 소송을 제기한 고소ㆍ고발인 측을 대리하고 있다는 변호사들이 주축이었다. 촛불행진 직전 도쿄 재일본 YMCA건물에서 만난 우치다 마사토시, 오오구치 아키히코, 사카다 요시토 등 3명의 일본 변호사는 “아베 정부가 한일관계를 악화시키는 방향으로 가고 있어 일본에도 한국의 촛불운동이 필요하다”고 행사 취지를 설명했다.

한일 관계를 충돌 직전으로 몰고 간 모든 책임은 아베 정부에게 있다는 게 세 변호사의 공통된 인식이었다. 오오구치 변호사는 “식민지 지배가 정당했다는 아베 총리의 생각이 근본적인 문제”라며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식민지배 피해 배상이 모두 마무리됐다는 일본 정부의 주장을 비판했다. 그는 “정부의 일방적 결정으로 개인의 청구권을 없애버린다는 것이 가능하다는 주장은 일본 헌법 29조(재산권) 위반에 해당한다”며 일제 강제징용 배상 책임을 거부한 일본 최고재판소의 판단도 틀렸다고 주장했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개인 청구권이 소멸되지 않고 여전히 살아 있다는 설명이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개인 청구권이 소멸되지 않는 만큼 일본제철이나 미쓰비시 등 일본 전범기업에 대한 한국 법원의 자산 압류 절차는 정당하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일본 외무성이 한국 법원이 보낸 압류결정문을 이유 없이 반송한 사실에 대해 사카다 변호사는 “아베 내각의 방해 행위”라고 규정했고 오오구치 변호사는 “그 동안 변호인단이 몇 번이나 찾아갔지만 만나 주지도 않은 일본기업의 잘못이 크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특히 일본제철과 강제징용 피해자들과의 화해가 이뤄졌던 사실을 거론하며 “아베 총리가 일을 복잡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일본제철 가마이시 제철소 징용 피해자 유족 11명이 일본 법원에 낸 소송에서 1인당 200만엔의 위로금을 지급하는 등 앞서 일본기업들이 피해자 보상에 나섰는데, 아베 정부의 방해 공작으로 일이 커졌다는 게 이들의 판단이다. 오오구치 변호사는 “결코 큰 금액이 아니었기 때문에 회사가 해결할 수 있었는데 아베 내각이 ‘일본 기업의 책임이 없다’면서 화해 흐름에 제동을 걸면서 일본기업들이 도리어 곤경에 처했다”고 주장했다.

세 명의 변호사들은 그러면서 일본의 양심세력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아베 총리의 반한(反韓) 드라이브에 공감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우치다 변호사는 “일본 사회가 식민지배 당시 벌어진 일들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를 정면으로 바라보지 않는 이상 한일이 우호관계로 나갈 수 없다”고 주장했다. 사카다 변호사는 “아베 총리가 원하는 것은 전쟁이 가능한 개헌이겠지만 국제질서를 위해 평화적인 정치가를 뽑는 것이 일본 시민의 역할”이라고 했다.

상황이 이런 만큼 한일관계 정상화를 위해선 양국의 시민사회 등 민간 분야의 협력이 선행돼야 한다는 게 세 변호사의 공통된 판단이다. 오오구치 변호사는 “징용 문제도 일본 정부가 나설 게 아니라 일본 기업과 시민사회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들이 발표한 ‘한국이 적인가’라는 성명에도 동참한 세 변호사는 “지식인 성명에 서명한 시민들이 7,000명을 넘어설 정도로 일본의 분위기가 변곡점을 맞고 있다”고 강조했다.

도쿄=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오오구치 아키히코(왼쪽부터), 사카다 요시토, 우치다 마사토시 변호사가 야스쿠니 반대 촛불행진을 앞둔 10일 오후 4시 일본 도쿄 한국YMCA 건물 앞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도쿄=정반석 기자
오오구치 아키히코 변호사(맨앞 가운데) 야스쿠니 반대 촛불행진이 열린 10일 오후 7시 도쿄 재일본 한국YMCA 건물 앞에서 현수막을 들고 행진을 이끌고 있다. 도쿄=정반석 기자
야스쿠니 반대 촛불행진이 열린 10일 오후 7시20분 도쿄 야스쿠니대로 사거리에서 일본 우익 40여명이 일장기와 욱일기를 흔들며 촛불행진 맞불시위를 준비하고 있다. 도쿄=정반석 기자
야스쿠니 반대 촛불행진이 열린 10일 오후 7시40분 도쿄 야스쿠니대로 인근 골목에 설치된 경찰 저지선 너머로 일본 우익의 확성기 차가 소음시위를 펼치고 있다. 도쿄=정반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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