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시 소초 119지역대 가보니…
“근조(謹弔)”
지난 9일 찾은 강원 원주시 소초면 119지역대. 주간근무를 위해 출근한 윤보희(50) 소방위와 김승우(30) 소방교의 왼쪽 가슴에는 검은색 리본이 달려 있었다. 근조 리본은 지난 6일 경기 안성시 종이상자 제조공장에 출동했다가 순직한 고 석원호 소방위를 기리는 의미다.
고인의 소식은 윤 소방위 등의 가슴을 묵직하게 짓눌렀다. 단순히 동료의 사망소식이라서가 아니다. 고인의 소속은 안성소방서의 양성119지역대, 그러니까 윤 소방위처럼 단 2명만 근무하는 119지역대였기 때문이다.
119지역대는, 말하자면 인구가 적은 곳에 설치되는 지역 출장소다. 화재나 응급환자 발생 등이 벌어지면 가장 가까운 소방서 인원들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면서 초기 대응을 맡게 된다. ‘골든타임’을 책임지는 이들이다. 지역대는 소방서가 없는 곳 중 관할면적이 30㎢ 이상, 혹은 인구 3,000명 이상이면 설치된다. 소방서가 있어도 10㎞ 이상 멀리 떨어진 지역에는 설치할 수 있다
고인은 이런 119지역대 근무자였다. 미처 피하지 못한 공장 직원이 있는가 살펴보기 위해 지하로 들어갔다 폭발사고로 변을 당했다. 근무자들이 조금이라도 더 있는 곳이었다면 당시 상황이 달라질 수 있지 않았을까. 윤 소방위는 “고인의 일이 남의 일 같지가 않아 ‘근조’ 리본을 달고 있게 된다”고 말했다.
윤 소방위의 근심은 괜한 게 아니다. 골든타임을 책임진다지만, 일선 119지역대 사정은 열악하다. 소방청에 따르면 전국 119지역대 419곳 가운데 고작 23곳(약 5.5%)만이 법정기준인력을 유지하고 있다. 119지역대 가운데 24곳엔 아예 소방관이 단 한 명도 없다. 이런 곳은 지역 의용소방대에 의지해야 한다.
윤 소방위가 근무하는 소초119지역대만 해도 103.89㎢ 면적에 9,668명 주민을 관할한다. 법정기준인력은 15명이다. 하지만 실제 인원은 그 절반에도 못 미치는 6명이다. 그 인원으로 근무조를 짜서 돌리니, 결국 현장에 출동하는 건 늘 2명이다. 법정기준인력으로 따지자면 화재 발생시 펌프차에 2명, 구급차에 3명이 타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1명이 운전하고 1명이 장비를 꺼내 불을 꺼야 한다. 고인이 순직한 양성119지역대도 마찬가지였다. 그곳 법정기준인력은 12명이었지만 실제 인원은 고작 4명이었다.
소방청도 이런 문제점을 충분히 알고 있다. ‘2022년까지 소방공무원 2만명을 늘리겠다’는 계획도 세워뒀다. 지난 1월부터 119지역대 근무자 389명을 충원했다. 앞으로 1,758명을 더 늘릴 계획이다. 하지만 예산상 제약이 언제 발목을 잡을 지 모를 일이다. 소방청 관계자는 “화재 발생시 주변 안전을 확보하면서 진화작업을 하려면 최소한 4명은 필요하다”며 안타까워했다.
오전 9시30분, 윤 소방위와 김 소방교가 근무하던 소초119지역대에 첫 출동지령이 떨어졌다. 어느 집에 벌집이 너무 많으니 제거해달라는 요청이었다. 벌집제거는 간단하게 들리지만, 간단치 않은 작업이다. 빨리빨리 움직여보지만 장비 챙겨서 출동하는 데만도 1시간은 걸린다. 윤 소방위는 “출동 나가 있는 동안 심정지 구급출동이라도 떨어지면 어쩌나 늘 조마조마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빨간색 5톤 펌프차가 사이렌 소리를 요란하게 울리며 떠나간 소초119지역대는 곧 텅 비었다. 단 한 명의 근무자도 없는 상태로.
원주=박진만 기자 bpb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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