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을 옥죄려는 미국의 구상이 흔들린다. 확고한 동맹이라고 믿어 왔던 아랍에미리트(UAE)가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대(對)이란 제재 구도에서 이탈하는 모양새다. 미국의 입장을 대변하며 이슬람국가(IS) 공격에 공군 기지를 제공해 왔고 소말리아와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펼쳐진 군사 활동에서 한몫했던 UAE가 동맹에서 빠져나간다면 중동 지역에서 미국의 중동 패권에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11일(현지시간)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그 전조는 예전부터 보였다. 이란의 해상 위협을 차단하기 위해 미국이 페르시아만에 해군을 증강하자 UAE 정부는 이란에 대표단을 파견, 해상 안보에 대해 의논했다. 미국이 원했던 이란 고립 정책과는 결이 다른 행동이다. 지난 6월 UAE 해안 인근 호르무즈해협에서 발생한 일본 유조선 ‘고구카 코레이저스’호와 노르웨이 소유 선박 ‘프런트 알타이르’호 피격 사건에서도 UAE는 한 발 물러서 있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이 즉각 이란을 비난했지만 UAE는 별다른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대이란 압박 전선에서 UAE가 가장 ‘약한 고리’가 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시어도어 캐러식 걸프스테이트애널리틱스 연구원은 “UAE가 미국의 목표에서 엇나가는 모습이 증가하고 있다”고 상황을 분석했다.
익명을 요구한 UAE 관계자는 “UAE는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면서 “안보와 안정, 그리고 (중동) 지역의 평화가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WP는 전했다. 미국이 대이란 압박을 계속할수록 전쟁 위험성이 고조되는 게 UAE의 동맹 이탈 움직임의 원인이라는 해석이 가능해지는 지점이다. 실제로 UAE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중동 지역에서 외국 자본의 이탈에 가장 취약한 국가이기도 하다. 분석가들에 따르면 UAE 인구의 90%는 외국인이다. UAE를 움직이는 동력 자체가 외국인인 셈이다. 엘리자베스 디킨슨 국제위기그룹 연구원은 “외국인들이 (전쟁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고 떠나는 경우 국가 전체가 멈출 수도 있다”고 WP에 말했다.
예멘 내전 과정에서도 UAE의 독자 노선은 두드러진다. UAE는 사우디가 지원하는 친정부군과 행보를 같이 해 왔던 남부과도위원회(STC)를 지원해 왔다. 양국은 이란이 뒤를 봐 주고 있는 후티 반군을 공동 목표로 삼아 왔지만 7일을 기점으로 친정부 진영 내부의 충돌이 발생하고 있다고 로이터 통신은 전했다. UAE와 사우디 간 미묘한 갈등이 표면으로 떠오른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1일 STC 신병훈련소를 반군이 탄도미사일로 공격한 사건을 두고 STC 측은 정부군과 연계된 무장조직과 반군이 공모했다고 의심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UAE는 지난달 예멘 주둔 병력을 상당수 철수하고 나섰다. 4년 반째 이어지는 예멘 내전의 수렁에서 빠져나가겠다는 의도다. 페르시아만을 사이에 두고 당면한 적인 이란에 맞서 자국 방위를 강화한다는 의미지만, 예멘 내전에 대한 시각이 사우디와 동일하지 않다는 점도 철군 이유로 꼽힌다. UAE는 철군을 추진하면서 STC에 힘을 실어주는 행동을 취하기도 했다. 알자지라 방송은 “UAE가 철수하면서 (임시 수도) 아덴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해야 한다고 STC를 부추겼다는 소문이 돈다”고 전했다.
친정부 진영 내부의 충돌을 둘러싸고 사우디와 UAE 모두 우려를 표명하며 대화를 주문하는 상황이다. 사우디 외무부는 10일 트위터에 글을 올려 “예멘 임시 수도의 상황 전개를 크게 우려하며 주시하고 있다”며 “예멘 정부를 비롯해 아덴의 모든 분쟁 당사자들을 사우디에서 개최할 긴급 회의에 초대한다”고 밝혔다. 셰이크 압둘라 빈 자예드 알나흐얀 UAE 외무장관도 “아덴의 무력 충돌을 심각하게 우려한다”면서 “민감한 현재 상황에서 단합해야 하며 이견을 해결하기 위해 진지하게 대화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김진욱 기자 kimjinu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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