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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重讀古典] 베트남에 관한 어떤 기록들

입력
2019.08.12 18:00
수정
2019.08.12 18:44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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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 전쟁기념관을 찾은 베트남 젊은이들이 호치민동상을 바라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하노이 전쟁기념관을 찾은 베트남 젊은이들이 호치민동상을 바라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눈부시게 발전하는 첨단 과학기술은 전쟁의 양상을 완전 바꾸어놓았다. 이런 상황에서 칼, 창, 활 등의 무기로 싸우던,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전쟁사와 케케묵은 병법이 쓸모가 있을까. 21세기의 전쟁터는 병사들의 함성이 사라진, 컴퓨터 시뮬레이션이 승부를 계산해 내는 장소로 느껴지기도 한다.

원자폭탄, 압도적 군수지원 능력, 거대한 경제력으로 2차 대전에서 승리한 미국은 핵폭탄을 탑재한 미사일까지 개발하였다. 핵무기가 있으면 모든 전쟁에 이길 수 있을 듯 생각했다. 아니 굳이 핵무기를 쓸 필요도 없이, 첨단 과학이 선도하는 막강한 화력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미국이 늘 이겼는가.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을 거치면서, 미국은 자신들의 생각과 현실이 다를 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원래 근세 서양의 제국주의는 동양의 오랜 역사와 지혜를 우습게 알았다. 열강이 보기에 베트남도 그저 병탄의 대상이었다. 베트남 역사책을 들춰볼 생각도 없었다.

쩐(陳)씨 왕조가 베트남을 다스리던 시절, 몽골과 세 번에 걸친 지독한 전쟁이 있었다. 애초에 몽골은 베트남을 무소를 치는 목동 정도로 여겼다. 그런데 막상 싸워보니 베트남은 백성 전체가 병사였다. 게다가 준비된 명장이 있었다. 쩐꾸욱두언(陳國峻, 1232~1300), 우리의 이순신 장군에 비견되는 인물이다. 왕이 그에게 직접 내려준 이름이 흥다오브엉(興道王)이다.

그의 임종이 다가오자 임금이 직접 문병을 갔다. 왕이 물었다. “북쪽 나라에서 또다시 침략해 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적이 불과 바람처럼 포효하며 몰려온다면 이를 막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적이 서둘러 승리하려 하지 않거나 백성을 약탈하지 않고 누에가 뽕잎을 갉아먹듯 참을성을 보인다면, 우리는 뛰어난 장군을 보내 장기를 두듯 정교한 전술을 구사하며 싸워야 합니다.” 쩐꾸욱뚜언의 말은 베트남식 병법이라고 부를 만하다. 만약 미국이 이런 역사를 공부했다면 프랑스의 요구에 응해서 베트남에 개입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프랑스 식민지에서 벗어난 독립전쟁, 미국과의 대결에는 보응우옌지압(武元甲, 1911~2013) 장군이 있었다. 호치민(1890~1969)의 독립 이상을 현실로 만든 사람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압 장군은 어렸을 때부터 ‘손자병법’과 ‘전쟁론’을 읽고 영향을 받았다. 그에게는 3원칙과 3불(不) 원칙이 있었다. 그중 3불 원칙이 유명하다. “적이 원하는 시간에 싸우지 않는다. 적이 좋아하는 장소에서 싸우지 않는다. 적이 생각하는 방법으로 싸우지 않는다.”

월남전 당시, 미국에서 회자되는 이야기가 있다. 1969년 미국의 닉슨 행정부는 당시 월맹(지금의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과 미국의 인구, GNP, 군수보급 능력, 병력, 무기 등을 국방부 컴퓨터에 넣고 물었다. 미국이 언제 승리할 수 있겠는가. 그때 컴퓨터에서 나온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미국이 1964년에 승리했다.’

미국은 1964년에 참전했고 1973년 빈손으로 철군했다. 유일한 수확이라면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가 노벨평화상을 받은 것이다. 1975년 미국이 지원했던 월남은 망했다. 컴퓨터의 정답, 아니 오답은 사실상 미국식 계량주의, 물질만능 사고를 대변한 셈이다.

이렇듯 미국의 대병력과 충분한 보급, 첨단 무기는 베트남에서 승리를 주지 못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 소련도 소득 없이 철수했다. 첨단 무기와 병력의 우세가 만능이 아니라는 증명이다. 그것들은 물론 중요한 조건이지만 유일한 조건은 아니다.

미국은 월남전의 쓰라린 경험을 곱씹었던 모양이다. 국내의 신문기사에서도 관련 기사를 실은 적이 있다.

“미사일과 고성능 무기가 총동원되고 있는 걸프전쟁에서도 다국적군과 이라크군 모두가 2,500여 년 전의 ‘손자병법’을 전략모델로 삼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흥미를 끈다. 지금까지 한 달여 동안의 전쟁에서는 물론 앞으로 남겨둔 지상전에서 역시 ‘손자병법’의 묘책에 따라 전개될 것이라고 미국의 전ㆍ현직 장성은 이구동성으로 얘기하고 있다. 특히 미국 측은 베트남 전쟁에서 호치민(胡志明)이 구사한 이 손자병법 전략 때문에 패배한 교훈을 되살려 80년대에는 모든 군사학교에서 이를 집중적으로 가르친 것으로 드러났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이번 걸프 전쟁에서 지상전에 참여할 해병대 장병들에게 90쪽짜리 영역(英譯) ‘손자병법’을 지금, 더블백 속에 상비하면서 읽도록 했다고 미 해병 사령관 알프레드 그레이 대장이 밝히고 있다. 그레이 대장은 ‘미 육군과 해병대에게 필독서로 손자병법을 지정하고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번 걸프 지상전에서는 손자의 비책들이 가장 많이 원용될 것’이라고 덧붙였다.”(경향신문 1991년 2월 20일)

역사나 고전을 꼼꼼히 봐야하는 이유는, 오늘을 사는 우리가 직면한 문제에 답을 줄 수 있기 때문이리라. 새로운 문제처럼 보이는 것들은 알고 보면 예부터 늘 문제였다.

박성진 서울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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