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며칠 사이 끔찍한 동물학대 사건이 연일 보도됐다. 느껴지는 기시감. 비슷한 보도를 한 달 전에도, 1년 전에도 접했다. 언론을 통해 보도된 게 이 정도이지 온라인이나 직접 전해 듣는 것까지 합하면, 동물학대 사건 소식은 거의 매일 들려온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이 정도로 반복되는 사건이라면 사회가 용인한 폭력 아닌가. 지금 이 시간에도 폭력 앞에 떨고 있는 생명이 세상에 천지다.

잔인한 동물 학대사건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픽사베이.

지난달 말, 경남의 한 마을에서 개를 몽둥이로 때려죽인 남자가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고발됐다. 개 농장을 운영하는 남자가 움막에서 개를 끌고 나와 몽둥이로 때려죽이는 영상이 공개됐는데 수십 명이 사는 마을에서 대낮에 벌어진 일이었다. 개를 때려죽이는 소리가 집이며 학교까지 들릴 정도여서 주민들이 민원을 넣기도 했지만 지자체는 단속을 나오지 않았다. 당연하다. 개식용에 관련된 폭력은 우리 사회에서 용인된 폭력이다. 동물단체도 폭력 자체가 아니라 다른 동물이 보는 앞에서 개를 죽인 행위를 문제 삼아 동물보호법으로 고발했다. 이런 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동물 임의도살 금지법’이 발의되어 있지만 국회에서 1년 넘게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잔인한 폭력은 개 농장 개에게만 일어나지 않는다. 매일 일어나는 잔인한 폭력 중의 하나가 길고양이 학대이다. 지난달 서울 마포구 경의선 숲길에서는 카페에서 돌보는 길고양이가 한 남자에 의해 살해됐다. 평화롭게 잠자던 고양이를 잡아 올린 남자는 바닥과 난간에 내팽개쳐 죽였다. 살해 도구를 갖춘 사전에 계획된 끔찍한 범행이었지만 경찰이 신청한 구속 영장은 법원에 의해 기각되었고, 그간의 사례로 보면 집행유예 정도가 선고될 가능성이 높다. 사건의 심각성 때문에 경찰에서 이례적으로 구속 영장을 청구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번에도 사법부는 반응하지 않았다. 이 정도면 길고양이 학대 또한 사회가 용인한 폭력으로 봐야 한다.

길고양이 학대 또한 사회가 용인한 폭력일지도 모른다. 픽사베이.

그렇다면 반려동물은 안전할까. 불과 10일 전 게임 유튜버가 생방송 도중 반려견을 때리고 내던지는 폭력을 행사했다. 사람들의 신고로 경찰이 찾아갔지만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이 녹화되었는데도 경찰은 별 조치 없이 돌아갔고, 유튜버는 별 문제 없을 거라며 큰소리를 쳤다. 큰소리를 칠만하다. 한국에서 그 정도 폭력으로 징역형을 살거나 의미 있는 정도의 벌금을 낸 사람은 없다. 생명에 대한 연민도 없고, 생명의식이 높아지는 사회 분위기를 따라가지 못하는 사법부가 한심하지만 다행히 남의 일로 여기지 않고 바로 신고한 사람과, 재빠르게 소유권 포기각서를 받아내서 개를 안전하게 보호하고 있는 동물단체가 있어 그나마 희망적이다.

이 지경이면 이 땅에서 인간이 아닌 종은 매일 살아남기 위한 전쟁을 치르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사회가 용인한 폭력이 많을수록 용인되지 않은 폭력이 일어날 확률이 높은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사회가 용인하는 폭력을 줄여나가는 것이 안전한 사회로 가기 위한 중요한 한 걸음이 된다.

요즘 읽고 있는 책 <함락된 도시의 여자 : 1945년 봄의 기록>은 제 2차 세계 대전 막바지, 러시아군이 베를린에 들어왔을 때를 증언한 한 여자의 일기이다. 당시 베를린에 남아 있던 민간인 수는 270만 명이었고 그 중 200만 명이 여자였다. 자신의 몸이 곧 전쟁터였던 여성들. 러시아 병사들이 여성들을 ‘인형인 듯, 물건인 듯이 다루었다’는 묘사가 나온다. 어느 상황에서건 약자가 받는 대우는 똑같았다. 남성들이 끊임없이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지만 글로 증언하며 자기 삶의 주체가 되려는 저자의 모습에, 그 강인함에, 살아남기 위한 고군분투에 마음이 단단해지는 책이다. 홀로코스트와 침략 전쟁을 반성하는 독일 정부는 ‘모두가 유죄는 아니지만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는 태도를 갖고 있다. 동물에게 홀로코스트 같은 지옥을 만들고 있는 우리 사회가 되새겨볼 자세이다. 사회에 만연해 있는 동물 폭력에 대해서 우리 모두가 유죄는 아니지만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동물을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져야 할 책임이 있다.

동물들에 대한 일방적 폭력은 우리 사회가 되새겨봐야 하는 문제다. 픽사베이.

길고양이 학대 사건이 일어난 경의선 숲길은 나도 종종 가는 곳이다. 갈 때마다 길고양이들을 만나면 간식을 건넨다. 언젠가 간식을 주고 있는데 교복을 입은 학생이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나를 부른다. “고양이에게 아무 거나 먹이시면 안 됩니다. 잘못 먹이면 큰일 나요.”라고 말하며 나를 나무라는 얼굴을 한다. 내가 주는 건 고양이 전용 간식이라고 말하니 머쓱해 하며 돌아서는 모습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길고양이를 보호하려는 마음에 용기를 내준 학생이 고마웠다. 경의선 숲길의 길고양이 학대범도 학대 장면을 촬영하고 신고한 학생들 덕분에 잡을 수 있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약자의 편에 서서 행동하고 책임을 다하려는 사람들이 동물에게 전쟁터 같은 이 사회를 바꿀 것이다.

김보경 책공장 더불어 대표

<함락된 도시의 여자 : 1945년 봄의 기록>, 익명의 여성, 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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