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5℃’는 한국일보 중견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2년 전 도쿄 연수 시절, 동네 학원에서 칠순이 훌쩍 넘은 노(老)선생님으로부터 일본어를 배웠다. 선생님은 휴대폰이 없었다. 끊임없이 오는 문자나 전화에 얽매이지 않고, 책이나 신문을 보면서 사유하는 습관을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일본의 신문 중에서는 가장 ‘리버럴’한 편인 도쿄신문을 매일 탐독하시는 선생님의 다이어리에는 강의 사이사이에 집회나 시위 일정이 적혀 있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개헌 움직임에 반대하는 집회와 재일동포 학생들이 다니는 조선학교에 대한 무상화를 촉구하는 시위나 모임이었다.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이나 시민운동가들이 그 동안 위안부 피해자나 강제징용 피해자, 재일동포 등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힘을 쏟아 온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런 분들이 이렇게 주위에서 쉽게 만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줄은 몰랐다.
사람들이 쉽게 ‘일본인은 이렇다’고 말하면서 빠뜨리는 이들의 존재를 생각해 본다. 혐한 시위를 하는 일본인도 있지만, ‘맞불 시위’를 벌이는 ‘카운터스’를 결성한 이도 일본인이다. 일본인 야당 정치인은 우익의 살해협박에 시달리면서도 ‘헤이트 스피치 금지법’이 통과되도록 노력을 기울였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위한 소송을 처음으로 시작한 사람 역시 일본인 변호사 자미아 히데카즈(在間秀和)씨였다. “‘이제 더는 사죄하지 않아도 된다’고 할 때까지 사죄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도 있다. 거슬러 올라가면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변호인 후세 다쓰지(布施辰治)도 일본인이었다. 결은 다르지만 아버지 세대가 한국을 아무리 싫어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BTS와 트와이스, 아이즈원에 열광하며 ‘얼짱 메이크업’(한국식 화장법을 의미)을 따라 하는 수많은 일본인 여학생도 있다.
트위터에서도 아베 정부에 비판적인 일본인을 다수 만날 수 있다.
“지금 TV용 대형 OLED 패널은 한국만 양산할 수 있고 한국이 그 패널을 팔지 않으면 일본 가전회사가 도쿄올림픽 용으로 고가 TV를 판매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는 셈인데, 요즘에도 평소처럼 수입되고 있다는 건 한국 가전회사는 일본만큼 감정적이지 않고 바보도 아니라는 거네, 다행이야.”
자국 기업의 수출을 막는 ‘자해적’ 보복을 한 아베 정부를 풍자하는 이 트윗을 올린 계정의 닉네임은 ‘애국심이 부족한 게으름뱅이(愛国心の足りないなまけ者)’다. 우익은 국민이 일본이라는 국가와 아베 정부를 자신과 동일시하는 것을 애국이라 하고, 비판하는 이에게 ‘비국민’이라는 낙인을 찍는다. 자국이 저지른 반인륜적 전쟁 범죄를 기억하고 반성하는 것은 국가의 수치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에 애국심이 부족한 자들이나 하는 행동이라고 말한다. 이 트위터 계정의 닉네임은 그런 국가주의를 비꼬고 있다.
우리가 ‘극일’을 진심으로 원한다면 우리 역시 국가주의, 또는 국가 주도 민족주의를 넘어서야 한다. 양국 관계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려는 아베 같은 정치인은 비판해야 한다. 상대국을 악마화하고 격한 언어로 분노와 증오를 표출하는 것을 애국이라 부르지도 말아야 한다. 일본 전체를 싸잡아 매도하는 것은 극일이 아니라 일본에 대한 무지를 나타낼 뿐이다. 오히려 일본 우익이 원하는 행위다.
다행히 우리에겐 1,000개가 넘는 ‘노 재팬’ 깃발을 서울 한복판에 걸겠다는 구청장의 행동을 저지한 시민들이 있다. 무조건적인 ‘반일’이나 ‘애국’ 몰이가 통하지 않은 사례다. 지난 주말 시위에선 ‘노 재팬’ 대신 ‘노 아베’를 외치기도 했다. 이제 다시는 전시 위안부나 강제징용 같은 국가폭력에 의한 인권 침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동아시아의 평화와 인권을 위해 양국 시민사회가 ‘노 아베’ 기치 아래 연대한다면, 이야말로 양국 모두의 미래를 위한 가장 애국적인 행동일 것이다.
최진주 정책사회부 기자 pariscom@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