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코(KIKO)’ 사태의 분쟁조정을 진행 중인 금융감독원이 조사대상 피해기업 중 최소 절반 이상에서 불완전판매 소지가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 수출기업의 외화 수입보다 환율변동 위험을 피하기 위해 상품에 투자한 금액이 더 크다면 은행이 이런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을 막을 의무가 있는데,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은행들이 금감원의 이런 판단을 수용할지 미지수여서, 금감원은 수용 가능성을 높일 물밑 조율에 주력하고 있다.

11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감원은 이달 안에 열 키코 사태 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에 앞서 피해기업 4곳(일성하이스코ㆍ남화통상ㆍ원글로벌미디어ㆍ재영솔루텍) 중 최소 절반 이상이, 수출로 버는 외화수입보다 상품 가입금액이 더 큰 ‘오버 헤지(Over Hedge)’ 상태였던 것으로 결론 지었다.

이는 A기업의 연간 외화 수입은 100억달러인데 키코 상품에 150억달러 규모로 가입해 필요 이상의 위험회피(헤지) 비용을 지불했다는 뜻이다. 키코는 2008년 전후로 환율 변동 위험을 피하기 위해 고안된 파생금융상품으로, 은행이 정한 범위 안에서 환율이 움직이면 기업이 약정한 환율(행사가격)에 달러를 팔 수 있는 구조다. 만약 환율이 상한선을 넘길 경우 기업이 행사가격과 실제 환율 간 차액의 2배를 은행에 물어줘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

이런 구조에서 오버 헤지를 하면 손해액이 더 커질 수 있다. 따라서 은행은 상품 판매 단계에서 기업의 실제 수출규모에 맞게 가입금액을 권해야 하는데, 과도한 금액으로 가입시켰다면 은행이 고객의 상황에 맞지 않은 상품을 판매한 셈이다. 금감원은 이런 정황이 ‘적합성 원칙’에 위배돼 불완전판매 소지가 있다고 보고 있다.

금감원은 지난달 비공개 회의를 열고 이런 결론을 분조위원들에게 설명했다. 당초 분조위는 지난달 개최 예정이었지만 은행권의 조정안 수용 가능성이 불투명하자 개최시기를 미뤄 의견 조율에 나선 상태다. 분조위 조정안은 당사자가 반드시 받아들여야 할 강제 효력은 없다.

현재 분조위 절차를 밟고 있는 피해기업 4곳의 피해액은 1,500억원 수준인데, 은행의 배상 비율이 10%만 나와도 적지 않은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 과거 판례에 따르면 유사한 불완전판매에 따른 배상금 비율은 피해액의 20~30% 수준으로 정해졌다.

이번 분조위 조정안은 다른 피해기업들에도 보상기준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키코에 가입해 피해를 입은 수출 기업은 모두 700여곳으로, 피해 규모만 3조원대로 알려져 있다. 은행들로선 막대한 추가 배상 가능성도 있는 셈이다.

분조위 개최에 앞서 금감원은 피해기업 측과 은행권에 조정 방향성을 설명하며 수용 의사를 확인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분조위에서 결론이 나버리면 수용 여부에 따라 소송을 가는 것 외엔 방도가 없어 최대한 양 당사자가 조정안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분위기 조성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재진 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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