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8ㆍ15 광복절 경축사 메시지를 두고 청와대가 장고(長考) 중이다. 극일(克日) 의지 표명 및 독려가 불가피하지만,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 연장 결정 시한(24일) 등 중요한 일정을 앞둔 상황에서 절제된 입장이 필요하다는 전략적 고려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화의 제스처로 여겨질 수 있는 ‘미래지향적 관계 구축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도 검토 중이다.
11일 청와대는 광복절 경축사 초안에 대해 검토를 진행하고 있다. 대략적인 얼개는 마련했지만, 세부적인 부분에 대한 조정이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이 지난달 4일 수출규제를 강화한 3개 품목 중 하나인 극자외선(EUV) 포토레지스트에 대한 수출을 이달 7일 처음으로 허가하는 식으로 강약 조절을 하고 있는 데다, 미묘한 시기에 내놓는 대일 메시지가 자칫 한일 갈등을 악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최대한 신중을 기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기본적으로는 ‘극일’ 표명이 예상된다. 5일 수석ㆍ보좌관회의를 주재하며 문 대통령이 “(일본 무역보복을) 냉정하게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대한민국을 새롭게 도약시키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한 것처럼,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자는 기조를 이어갈 것이란 분석이다. 문 대통령은 수출규제 품목에 대한 일본의 수출허가 사실이 알려진 8일에도 ‘중요한 건 불확실성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이라며 일희일비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다만 감정을 자극하는 방식은 삼갈 것으로 보인다. 지소미아 연장 결정 시한(24일),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 시행(28일) 등 중요한 시기를 앞두고 일본에 빌미를 줄 수 있는 데다, 자칫 국가 행사의 격을 떨어뜨릴 위험도 있어서다. 문 대통령은 5일 수보회의에서 “경제력만으로 세계의 지도적 위치에 설 수 없다”며 일본의 품격을 꼬집는 듯한 발언을 한 바 있다.
아울러 문 대통령은 미래지향적 한일관계 필요성을 언급할 것으로 보인다. 외교적으로 해법을 마련해보자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2일 긴급 국무회의에서도 ‘대화의 길로 나오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일본의 무역보복이 ‘과거와 미래를 분리ㆍ대응한다’는 문 정부의 ‘투트랙 전략’의 훼손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청와대 내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예상보다 소동이 커졌다”는 일본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한 보도가 최근 나오는 등 일본 기류 변화 기미도 감지되고 있어, 정부는 일본 내 실제 기류를 여러 경로로 살핀 뒤 경축사를 미세 조정할 것으로 보인다.
주초 행사에서 문 대통령이 내놓는 발언은 경축사를 가늠하는 척도가 될 수 있다. 12일엔 수보회의, 다음 날엔 독립유공자 및 유족 초청 오찬 등이 예정돼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공개 발언 하나하나가 계산된 메시지다. 큰 틀에서 보면 메시지를 예측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일 메시지와 함께, 남한과는 대화할 생각이 없다며 미사일을 빈번하게 발사하고 있는 북한을 향해 문 대통령이 어떤 목소리를 낼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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