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레지스트 日기업의 벨기에 자회사 통해 우회 획득한 듯
6~10개월치 물량 확보한 듯… 공급 안정화에 속도
삼성전자가 일본의 수출 규제로 공급에 차질을 빚던 반도체 핵심 소재 일부를 제3국을 통해 우회 조달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 강화 조치 이후 소재 공급처 다변화에 전력을 쏟은 결과가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특히 기술력을 이유로 일본에 전량 의존하고 있는 품목은 일본 기업의 제3국 자회사를 통해 들여오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 소재 국산화를 위한 투자도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공급 안정화에 속도가 붙고 있다는 분석이다.
11일 일본 경제 전문 매체 ‘닛케이 아시안 리뷰’는 “삼성전자가 벨기에 소재 한 업체에서 포토레지스트(감광액)를 조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포토레지스트는 고순도 불화수소(에칭가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와 함께 일본 정부가 지난달 4일부터 시행 중인 수출 규제 강화 대상 3대 품목 중 하나다. 보도에 따르면 삼성은 벨기에 업체를 통한 소재 공급으로 6~10개월치 포토레지스트 물량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기사에 언급된 한국 전문가는 일본 언론과의 접촉 사실을 부인했지만, 삼성전자는 관련 보도 내용을 부인하지는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일본 포토레지스트 생산 기업 JSR이 2016년 벨기에 연구센터 IMEC와 설립한 합작법인 EUV레지스트를 우회 공급처로 추정하고 있다. JSR은 벨기에 JSR마이크로를 자회사로 두고 있고, JSR마이크로가 EUV레지스트 최대 주주다.
제3국 자회사를 통한 우회 수급은 첨단 공정에 맞출 수 있는 생산능력을 고려한 선택으로 보인다. 일본이 규제를 강화한 포토레지스트는 반도체 회로를 선폭 10나노미터(1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하로 미세하게 그려낼 수 있는 극자외선(EUV)용 레지스트다. 삼성은 이를 JSR, TOK(도쿄오카공업) 등 일본에서 전량 들여왔다. 같은 품질의 소재를 공급받기 위해 제3국에 구축돼 있는 일본 자회사 생산라인에서 한국으로 들여오는 방법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가 수출 규제 조치 36일 만에 EUV 포토레지스트에 첫 수출 허가를 내준 것도 삼성의 대체 공급원 확보를 의식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제3국 우회 통로를 활용하려는 움직임은 일본 기업 쪽에서도 감지되고 있다. TOK는 한국에 공장을 갖고 있는데, 한국 공장 생산량 증산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불화수소를 생산하는 모리타화학공업은 양국 갈등이 지속된다면 올해 말 우회 공급망으로 중국 공장을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국내와 미국, 유럽 기업 등 대체 공급처를 적극적으로 찾아 나선 것도 일본 기업들이 자구책을 내놓는데 불을 지폈다는 분석이다. SK머티리얼즈는 불화수소 국산화를 선언하고 연내 시제품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폴리이미드는 SKC코오롱PI, 코오롱인더스트리, SKC 등이 생산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SKC는 최근 삼성전자 폴더블 스마트폰용 폴리이미드를 제공하기 위한 협력에 들어갔다고 알려졌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원료를 가공하는 핵심 기술을 일본 밖으로 이전시키거나 해외 생산라인을 추가 구축하는 등의 움직임은 일본 정부의 감시를 받을 수도 있겠지만 기존에 있던 제3국 생산라인을 활용해 한국으로 전달하는 방식은, 당장 공급해야 하는 일본 기업이나 수급해야 하는 우리 기업 모두에게 가장 현실적인 대응”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일본 외 제3국, 국내 기업 등 소재 다변화 노력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맹하경 기자 hkm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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