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지식인에 듣는 한일 갈등]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
“아베 수출규제 어리석은 짓… 한국 똑같은 방식으론 갈등해결 못해”
“많은 일본인 한국과 관계 좋아지길 희망… 文대통령 입장 설명 필요”
무차별적인 수출규제 등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대한(對韓) 적대정책은 일본 사회에서도 강한 비판에 직면해 있다.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 등 사회지도층 78명은 일본 정부가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 제외 방침을 발표하기 직전인 7월 ‘한국이 적인가’라는 성명을 발표하고 “일본 국민과 한국 국민을 대립ㆍ반목하게 하는 행위를 중단하라”며 아베 정부를 규탄한 바 있다. 수천 명의 일본인이 서명으로 화답하면서 성명은 일본 내에서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다.
성명을 주도한 양심은 일본의 저명한 역사학자이자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알려진 와다 하루키(81ㆍ和田春樹) 도쿄대 명예교수. 와다 교수는 일본 내 대표적인 지한파 지식인으로 꼽힌다. 한일합병 조약의 부당성을 주장하고 식민지배에 대한 일본 정부의 사과를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그의 평화 행보는 일본 내에서도 유명하다. 민족운동가 만해(萬海) 한용운 선생을 추모하는 만해축전추진위원회가 와다 교수를 올해 만해대상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와다 교수는 12일 만해대상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11일 방한했다.
한일 갈등의 원인과 해법을 듣기 위해 와다 교수를 9일 도쿄 자택에서 만났다. 다음은 도쿄에서 진행된 와다 교수와의 인터뷰 전문.
-12일 만해대상 수상을 위해 방한하시는데?
“만해 한용운 선생은 3.1 독립선언서 공약 3장을 작성한 매우 훌륭한 분이다. 그런 분의 이름을 딴 상을 받게 돼 영광이다. 특히, 한일갈등이 심각한 상황에서 일본인에게 그런 상을 준 것은 한일관계가 좋은 방향이 되도록 더욱 분발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1953년 구보타 망언으로 한일회담이 결렬됐을 때부터, 일본의 식민지 지배 반성이 한일관계의 전제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노력해 왔지만 충분하지는 않았구나 싶다.”
-일본 정부 수출규제 조치를 철회하라는 성명에 참여하셨다. 이 조치는 왜 부당한가?
“한국의 대표 산업인 반도체 제조에 영향 미치는 조치로 악의를 가지고 한다면 타격이 클 것이다. 일본이 ‘한국은 신용할 수 없다’면서 상처를 주는 것도 문제다. 일본 언론들이 “한국은 믿을 수 없다”는 식의 보도를 내보내고 있어 ‘한국은 적인가’ 성명에 참가하게 됐다. 드러내고 있진 않지만 이건 감정 싸움이다. 적대적 감정을 가라앉혀야 한다.”
-지금 한일관계가 얼마나 심각한가?
“1965년 수교 이래 가장 심각한 상황이다. 아베 총리는 1월 시정연설에서 북한, 중국, 러시아에 대한 관계 개선은 말하면서 한국은 무시했다. “이제 한국은 믿을 수 없으니 더 이상 상관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한국의 민주화 이후 개선되던 한일관계는 2011년 한국 헌법재판소의 위안부 문제 해결 요구와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으로 대립하기 시작했다. 아베 총리는 문재인 대통령이 2015년 체결된 한일 위안부 합의를 부정한 것에 불신감을 가졌고, 북미회담을 이끌어낸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 징용 문제, 레이더 문제도 영향을 미쳤다.”
-2015년 위안부 합의가 애초에 불완전했다는 지적도 있다.
“2011년 (위안부 피해자 청구권에 한국 정부가 나서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 본) 한국 헌법재판소 결정을 하늘이 준 기회라고 생각했고, 고령의 할머니들이 계속 돌아가시던 상황에서 마지막 기회로 보고 위안부 합의를 지지했다. 피해자 입장을 고려하거나 설득하는 조치가 없었기에 피해자들의 반발이 이해된다. 그러나 사죄의 뜻으로 10억엔을 낸 것은 나름의 진전이었다. 아베는 사죄할 마음이 없었는데 버락 오바마에 떠밀려 억지로 합의했다. 이제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일 공통의 새로운 인식을 만들어야 한다.”
-한국은 일본이 식민지 지배 책임을 인정해야만 한다는 입장이고, 일본은 반대다. 화해가 불가능한 것인가?
“한일관계의 근본 문제는 역시 일본의 식민지배다. 일본은 한국에 손해를 입히고 상처를 준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런 역사인식을 일본 국민 모두가 가지지 않으면 정상적인 화해는 어렵다. 일본이 정부 방침으로 한일병합 자체가 부당하다고 인정할 때 반성 및 사죄가 완성된다. 1995년 무라야마 담화는 식민지배를 사죄했지만 불완전했고, 2010년 간 나오토 총리(민주당) 담화는 식민지배의 강제성을 인정했지만 당시 야당이던 자민당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현재 일본의 전후 세대들은 식민지배가 자신과는 직접 관계가 없다고 생각한다. 무라야마 담화, 고노 담화 등을 바탕으로 일본 국민 대다수가 반성하는 인식을 가지도록 한일 양국이 노력해야 한다.”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식민지배 피해 배상이 모두 마무리됐다고 주장한다.
“1965년 한일기본조약 때 일본은 식민지배에 대한 반성 없이 경제협력으로 모든 것을 마무리하려고 했다. 그래서 이후 징용, 위안부, 사할린, 원폭 피해자 등의 문제가 많이 나오게 됐다. 일본 정부는 청구권협정으로 모든 문제가 끝났다고 하지만, 아베 총리가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0억엔을 냈다는 것은 문제가 바로 끝나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위안부 문제에서는 불완전한 청구권협정을 완전하게 만들기 위해 10억엔을 내면서, 징용 문제는 국제법 위반이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개인청구권이 존재한다고 본 한국 대법원 판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개인청구권은 남아있다고 생각한다. 1965년 당시 한국의 힘이 없었기 때문에 일본이 한국의 각종 요구를 거절하면서 한일조약은 불충분한 조약이 됐다. 하지만 조약을 맺어 한일관계가 시작됐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대법원 판결은 일본 기업과 개인간의 문제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이다. 일본 국가와 직접 관련된 것은 아니라, 일본 정부의 개입은 옳지 않다.”
-한국 법원은 일본기업 자산 압류 절차를 진행 중이다.
“원고 3명 중 2명이 돌아가셨는데 이분들 외에도 피해 입은 징용 노동자가 엄청나게 많을 것이기에 단순히 개인과 기업간의 문제로만 볼 수는 없다. 이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는 기업에 대해 배상금을 주지 말라고 압력을 주고 있지만 공개적으로 표명하고 있진 않다. 한국 정부도 어떤 의견을 표명하고 있진 않다. 큰 그림으로서 전체적인 해결이 필요한 것이다. 기업이 전면에 나선다고 해도 한일 국가의 지지와 협조는 필요하다.”
-일본은 한일 분업체제를 종식시켜도 별 문제가 없다고 보고 한국이 굴복할 때까지 계속 가려는 것인가?
“일본은 반도체를 만들지 않는다. 약품이나 부품 등을 수출하면 한국이 거의 다 만든 것을 수입하는 입장이다. 여기에 한국에 수출하는 일본 회사들도 큰일이다. 아베 총리의 행태는 자유무역을 통한 국제이익에 반하는 행동이다. 중미 무역분쟁 상황에서 일본에게도 마이너스다. 아베의 제멋대로 어린이 같은 행동에 대해, 일본에서도 굉장히 어리석은 짓이라는 시각이 있다.”
-불매운동, 여행자제 등 한국 내 반(反)아베 운동을 일본에선 어떻게 받아들이나?
“아베 총리에 대한 비판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일본 제품이나 인적 교류, 여행 등을 보이콧하는 것은 가능하다면 멈췄으면 좋겠다. 양국 국민 간의 교류가 굉장히 중요한데, 정부간의 문제로 인해 나빠지는 것은 좋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 문제를 해결하려면 서로 이해하고 합의해야 길이 열리는 것이지, 일방적으로 한쪽을 굴복시키자는 논리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설득이 필요하다”
-한국 정부는 한일 기업의 1+1 해법을, 일본 정부는 배상 거부, 피해자는 일본 정부의 사죄와 배상을 각각 강조하고 있다.
“일본은 역사적 문제는 청구권협정으로 끝났다고 보는 입장이다. 그래서 정부 대 정부의 대화 보다는 한일 기업간 혹은 민간단체간의 대화가 중요하다. 민간의 대화를 양국 정부가 지원하는 형태로 되어야지 사태 해결이 진전될 수 있지 않겠나. 한가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아베 총리가 퇴진하면 분명 상황이 바뀔 것이다. 후임자는 분명히 한일관계 정상화를 위해 노력할 것이다. 넷우익은 ‘한국은 적이다!”라고 이야기하지만, 아베 총리는 공식적으로 그런 말을 할 순 없으니 관계를 좋게 해야 하는데 곤란한 상황이다. 피해자 단체, 기업 등 민간이 대화와 협력을 통해 문제를 풀어나가고, 한국 정부도 먼저 나서 지원한다면, 일본 정부가 지원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될 것이다.”
-일본의 수출규제에 맞서 한국 정부도 화이트리스트 배제, 지소미아(GSOMIAㆍ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파기 등을 검토 중이다.
“일본이 식민지배를 반성해야만 하고, 북미 평화프로세스를 추진해야 한다는 점은 한국 측의 주장이 옳다. 그러나 일본의 무역제한에 같은 방식으로 대응해선 안 된다. 설득해서 냉정하게 다시 생각하게끔 해야지, 서로 싸움만 한다면 어떤 의미도 없다. 지소미아를 파기하면 한국 쪽으로도 정보가 들어가지 않으니 한국에도 이익이 아니고, 경제적 대항조치로 수출하지 못한다면 한국에도 불이익이라 선택하기 어려운 입장이다. 3.1 독립선언처럼 일본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라고 설득해야지, 같은 방식으로 싸우는 것은 좋지 않다”
-한국 정부는 제대로 대응하고 있나?
“일본 국민들은 문 대통령의 2015년 위안부 합의 파기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또한 징용 문제에 있어 한국 정부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소극적으로 임한다고 보고 있다. 삼권분립을 이유로 사법부의 영역으로 넘기고 있는데, 일본 국민들이 보기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움직임이 없어 보인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대화에 나서야 하는데, 대통령이라면 자국민만 보고 말할 것이 아니라 일본 국민도 생각해서 말해야 한다. 일본이란 나라도 동북아시아의 협력을 위해 필요한 존재 아니겠나? 한국 정부 차원에서 일본 국민들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
-평소 동북아 평화체제 정착을 위해 북일 수교를 제안하셨다. 그러나 일본은 남북한의 접근에 반발만 하고 있다.
=2006년부터 북핵 문제가 계속되면서 일본의 반발이 강해졌고, 그 와중에 납치 문제가 굉장히 강조됐다. 아베 총리는 북한에 매우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어 북일관계의 변화를 바라기는 어렵다. 하지만 북한의 미사일과 핵 실험에 공포를 느끼는 일본 국민들로서는 북미회담이나 남북회담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객관적인 세계 정세로 봐도 남북ㆍ북미ㆍ북중회담이 모두 성사됐고,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지 않은 것은 일본뿐이다. 아베 총리가 그래서 한국에 화풀이하고 있는 것 아닌가? 남북한과의 관계 개선이 필요하지만 현재의 강경 노선이 바뀔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이런 관계에서 올림픽을 연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아베는 궁지에 몰려있다. 외교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한일 갈등이 심화될 경우 전후 샌프란시스코 체제가 흔들릴 것을 우려한 미국이 일본 편에 설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동의할 수 없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위안부 문제로 인한 충돌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지지했다. 인권을 존중하고 여성 폭력 문제에 대한 공감이 강했기 때문이다. 동맹국 간 충돌이 트럼프 정권에 있어선 곤란한 상황이다. 한일 갈등을 해결해야 할 상황이라 서로 타협했으면 하는 바램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분명 있을 것이다. 여러모로 바쁜 트럼프 대통령이 구체적 행동을 보여주고 있진 않으나, 만약 사태가 장기화돼 매우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적극적 반응이 나올 것이다. 북미 대화에 아베 총리 보다는 문 대통령의 지지가 더 필요한 점을 고려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의 편에 서거나 할 것은 아니라고 판단한다.”
-아베 총리가 그대로 있는 한 설득해도 소용 없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양국 시민사회가 어떤 방안을 모색해 볼 수 있을까?
“시민사회 교류는 유지돼야 한다. 징용 문제에선 일본 기업과의 대화를 일본 정부가 막고 있는데, 이를 풀어달라고 요청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미국이 어떻게 개입하는가, 어떻게 힘을 쓰는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베 총리도 상황에 따라선 잘 바뀌는 사람이다. 그리고 일본 기업은 한국과 거래가 안되면 엄청난 불이익을 받는 입장이니, 먼저 움직일 필요가 있다. 일본 기업이 먼저 움직이면서 정부를 설득해 허가를 이끌어 낼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양국 정상에게 한가지씩 당부한다면?
“아베 총리는 한일 국민들의 결합이나 교류 관계를 끊는 행동을 하지 말아달라. 한일 국민을 반목시키는 행위를 멈춰야 한다. 문 대통령은 일본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자신의 입장을 설명해 달라. 한국 국민들께도 말씀 드리고 싶다. 많은 일본 국민들이 과거에 대해 반성하고 있고, 전쟁을 싫어하며, 한국과의 관계가 좋아지길 희망하고 있다는 점을 믿어주길 바란다.”
도쿄=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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