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특보, 인사검증 통과했지만.... 반미 발언ㆍ한국당 반발 영향 미친 듯
정통 외교관 출신 이수혁, 美 국무부 네트워크 촘촘… 한미 관계 안정 기대↑
주미대사 내정자가 문정인(68) 대통령 외교안보특별보좌관에서 이수혁(70) 더불어민주당 의원으로 전격 교체된 것은 문 특보에 대한 미국 정부의 강한 비토 기류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 특보는 한미 동맹 유지에 적극적이지 않은 점 등 때문에 ‘아그레망(주재국 동의) 관문’ 통과가 순탄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없지 않았다. 자유한국당 등 보수 진영에선 문 특보의 미국 행을 강하게 반대해 왔다.
인사 발표 하루 전인 8일 오전까지만 해도 문 특보의 주미대사 행은 ‘기정사실’이었다. 문 특보는 까다로운 국내 인사 검증을 모두 통과한 터였다. 이날 오후 들어 청와대 안팎의 분위기가 급변했다. ‘문 특보가 주미대사직을 고사했다’는 얘기가 흘러 나오기 시작했다. 외교 소식통은 9일 “문 특보가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주미대사로 가지 않겠다는 뜻을 전달했고, 문 대통령이 고심 끝에 수용했다”고 전했다.
이에 앞서 외교안보 라인은 문 특보에 대한 미국 부정적 반응을 최종 확인해 문 대통령에 보고하고, 문 특보에게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청와대는 문 특보 카드를 고수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문 특보가 고령 등을 이유로 고사하는 모양새를 취한 것은 청와대가 그의 명예로운 후퇴를 배려한 것일 수 있다.
올해 초까지는 정의용(73)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주미대사 후임자로 옮기는 방안이 유력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성과 없이 끝나고 한일 관계까지 꼬이면서 청와대는 정 실장 교체 타이밍을 놓쳤다. 이에 문 특보가 대안으로 급부상했다.
문 대통령은 문 특보에게 큰 기대를 걸었다고 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문 특보는 학자로서 실력을 인정받은 것은 물론이고, 미국 학계, 싱크탱크, 의회까지 미치는 인맥이 두텁다”며 “다소 틀에 박힌 대사 외교를 뛰어넘어 한국의 이익을 적극적으로 관철시킬 수 있는 적임자라고 봤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 특보가 학자로서 했던 소신 발언들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문 특보는 지난해 4월 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어페어스’에 기고한 글에서 한반도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주한미군을 정당화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주장을 펴 청와대로부터 경고를 받기도 했다. 대통령 특보 이름을 걸고 쓴 글이라 파장이 상당했다.
문 대통령은 ‘안전한 카드’로 이수혁 의원을 골랐다. 이 의원은 내년 총선 차출이 유력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후임 0순위로 거론돼 왔다. 정통외교관 출신인 이 내정자가 미 국무부 등에 안정적인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는 만큼, 한미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인선 배경으로 꼽힌다. 미국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한미 동맹을 비롯한 동북아 이슈의 돌발 악재가 등장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청와대가 이런 기류를 적극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내정자 인선이 결과적으로 외교안보 라인의 다양성을 약화시킨 측면도 있다. 이 내정자가 가세하면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서훈 국가정보원장까지 외교안보 주요 요직을 ‘서울고 라인’이 독식하게 됐다. 문 특보가 주미대사 고사 이유 중 하나로 자신의 고령 문제를 언급한 것을 놓고 ‘외교안보 라인을 쇄신하라’는 메시지를 문 대통령에게 우회 전달한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이동현 기자 nani@hankookilbo.com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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