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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형은 나보다 여유가 있잖아, 돈 좀 빌려주면 안 돼? 하나 밖에 없는 동생한테 너무한 거 아니야?”

직장인 김모(47)씨는 최근 고등학교 동창모임서 술을 마시고 새벽 1시경 형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평소 가족들에게 자신이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말을 꺼낸 적이 없던 김씨가 밤늦게 친형에게 전화를 한 건 술 때문이었다. 하지만 김씨는 자신이 새벽에 친형에게 전화를 했다는 것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다음날 오후 “아무리 가족이지만 술 마시고 늦은 밤 전화를 걸어 막말을 해 상처를 받았다”는 형의 전화에 김씨는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술을 과도하게 마시고 가족이나 친구 등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하소연을 하는 것은 물론 폭언까지 일삼는 이들이 적지 않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이런 행위가 반복적으로 발생하면 알코올중독을 의심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이계성 인천참사랑병원 중독치료재활센터장은 “사람은 남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 놓고 싶은 본성이 있는데 술을 빌어 이런 행위를 반복적으로 저지른다면 알코올중독을 의심해야 한다”며 “술로 뇌가 감정을 조절하는 기능을 상실해 뒷일을 생각하지 않고 일을 저지르기 때문에 상대방이 받는 상처나 당혹감이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평소에 자기감정을 억제하고, 스트레스에 민감한 사람일수록 과도하게 술을 마시면 이런 행위를 저지를 위험이 크다고 말한다. 이해국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평소에 직장이나 가족에게 할 말을 하지 못하고 생활하는 사람들이 알코올을 과도하게 섭취하면 뇌에서 충동조절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전두엽이 마비돼 그동안 숨겨온 감정을 여과 없이 표출하는 것”이라며 “대부분 이른바 ‘필름이 끊기는 현상’인 블랙아웃 상황에서 일이 벌어지기 때문에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알지 못해 문제가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이런 행위가 반복적으로 발생한다면 ‘알코올 사용 장애’와 관련 상담과 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최준호 한양대구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이런 일이 반복되면 일을 저지른 사람은 죄책감과 우울감에 빠져 더욱 술에 의존하게 되는 악영향이 초래될 수 있다”며 “알코올 사용 장애가 발생했다면 개인적 조절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정신과를 찾아 상담과 치료를 받는 것이 필요하다”고 권했다.

김치중 기자 cj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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