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운명, 한중일 세력균형에 좌우
아베의 ‘강한 일본’은 제국주의 그림자
정파이익 몰두하면 국가이익에 치명상
아베 규탄 서대문행동 회원들이 8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앞에서 'NO아베 현수막 거리 조성 선포 기자회견'을 마치고 현수막에 서명을 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정치가 경제를 망친다’고 했다. 아베 신조의 일본 정부나 문재인 정부나 양국간 과거사를 국가이익보다 정권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려는 의도 때문에 외교 문제를 키웠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국가 이익에 앞서 정파적 이익에 몰두하는 퇴행적 정치 행태로는 국제사회에 몰려오는 자국 우선주의의 파고를 넘을 수 없다. 국가 이익을 훼손하고 경제, 즉 국민 이익에 치명상을 입히게 된다. 국내 벤처업계의 산 증인이던 고(故) 이민화씨가 “반일 감정을 앞세워 국가 이익보다 당파 이익을 우선하는 국내 정치를 경계해야 한다”고 했던 말을 깊이 새겨들으라는 것을 먼저 강조하고 싶다.

한반도와 중국, 일본 관계에는 과거사가 복잡하게 뒤엉켜 있다. 세력균형 이론으로 유명한 국제정치학의 태두 고(故) 한스 모겐소가 오래 전 “지난 2000년간 한반도의 운명은 일본 중국 중 한 국가에 의한 지배 또는 양국 사이 힘의 균형에 의해 작용한 것”이라고 말한 데 대해 다소 거부감이 들지만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중국과의 사드 배치 갈등이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앉나 싶더니 다시 일본이 과거사 판결을 문제 삼아 공격한다. 일본 우익 세력을 배경으로 하는 아베 총리의 ‘강한 일본’에 대한 집착에는 제국주의와 군국주의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지금 아베 총리의 정책은 두 갈래로 진행되고 있다. 경제적 차원에서 ‘아베노믹스’, 정치외교적 차원에서 ‘아베 독트린’이다. 과다한 국가부채 등에 대해 일본 내에서 부정적 평가가 없는 것은 아니나, 아베노믹스는 어느 정도 성공적이라는 평가다. 일자리가 늘어나고 경제가 살아나면서 ‘잃어버린 20년’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나온다. 이런 분위기에서 아베 총리는 ‘아베 독트린’을 실현하기 위한 정치적 야망을 키우고 있다. 이 야망이 지금 우리 정부와 격렬하게 부딪히는 충돌지점이다.

일본의 외교노선은 3단계로 진화했다. 첫 번째가 2차 대전 이후 연합군총사령부 점령 아래 일본의 요시다 시게루 총리가 선언했던 ‘요시다 독트린’이다. 안보는 미국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국방예산은 최소한 사용하는 대신 경제발전에 국가 역량을 집중시키는 방식이다. 1977년 8월에는 후쿠다 독트린이 나왔다. 후쿠다 다케오 총리는 ‘군사대국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하에 동남아 국가들과 협력을 추진해 상호신뢰 관계를 구축한다는 것이다.

아베 총리가 2014년 5월 발표한 아베 독트린은 공격적이다. 중국의 힘에 의한 일방적 현상 변경시도를 용납하지 않는 동시에 미국과 함께 군사적 역할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 용인에 대한 의지도 표명했다. 한국에 대한 경제 제재도 이런 기조의 연결선상에 있어 보인다. 일단 한국과의 과거사를 불가역적으로 정리하고, 아베노믹스와 아베독트린을 통해 세계의 리더로 재부상하겠다는 큰 그림이 과거사 벽에 부딪힌 것이다.

지금 지구촌에서 전면전은 없다. 과거에는 전쟁이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이었다면 지금은 경제 제재가 전쟁을 대신한다. 군사력은 효과적이지만 효율적이지 못하다. 자칫 큰 손실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쿠바 미사일 위기 때처럼 군사력이 절제되는 이유다. 조지프 나이는 저서 ‘권력의 미래’에서 “흔히 전투가 군사력의 핵심으로 여겨지는 것처럼 제재는 경제력의 가장 명확한 수단으로 여겨지고 장려나 응징의 수단으로 정의된다. 미국은 주도적으로 제재를 활용했고 일부 독설가들은 미국이 인류의 절반을 상대로 제재를 실행한다고 비난한다”고 했다. 지금 미국이 중국을 상대로, 혹은 일본이 우리를 상대로 제재 조치를 취하는 것도 힘있는 국가의 횡포다.

이처럼 제재는 전쟁의 또 다른 형태다. 그래서 일본의 도발을 경제전쟁이라고 한다. 전쟁을 먼저 일으키려면 상대국보다 몇 배의 국력이 있어야 하고, 경제 제재도 힘이 있어야 가능하다. 결국은 국력의 문제다. 나폴레옹은 “신은 더 많은 병력을 보유한 군대의 편”이라고 했다. 국력이 약하면 신의 도움도 받을 수 없다는 것이 국제질서의 냉혹성이다.

조재우 논설위원 josus62@hankookilbo.com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