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에서는 리얼돌에 대한 여성들의 반응이 너무 과민하다고 말하지만, 현재 한국 여성들의 공포에는 엄연한 맥락이 있다. 나에게는 대법원의 판결이 ‘남성의 성적 욕구는 존중받아야 하며, 그 욕구는 여성을 통해서 해소할 수 있어야 한다’는 암묵적인 신호처럼 느껴진다. ©게티이미지뱅크

대학에 갓 입학한 신입생일 때, 같은 학부 남학생들이 몰려다니며 마주치는 여학생들을 유심히 살피는 광경을 본 적이 있다. 그들은 팔뚝, 다리, 얼굴, 가슴 등 신체 부위를 나누어 여학생들의 외모에 점수를 매기고 있었다. 그들을 보며 느꼈던 불쾌감에 대해 정확히 설명하지 못했던 나는, 긴 시간이 흐른 후에야 그게 무엇이었는지 알게 됐다. 그것은 여성을 자신들과 동등한 인간이 아닌, 성적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남성의 시선에 대한 불쾌감이자 공포였다.

지난 6월 대법원이 사실상 리얼돌의 수입을 허용하는 판결을 내렸다. 리얼돌은 인간의 얼굴과 신체를 유사하게 재현한 성 기구로, 여성용도 제작되긴 하나 남성용이 더 일반적이며 이번 논란의 핵심 역시 남성용 리얼돌이다. 2017년 5월 인천세관은 “리얼돌은 풍속을 해치는 물품”이라는 이유로 수입통관을 보류했고, 수입업체는 “개인의 성적 결정권에 국가가 간섭해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세관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 재판부는 “사람의 존엄성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하거나 왜곡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라며 인천세관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1심 판결을 뒤집는 결론을 내렸고, 인천세관은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기각했다. 리얼돌이 “사람의 존엄성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하거나 왜곡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셈이다.

리얼돌을 연예인 혹은 지인의 얼굴로 커스텀할 수도 있다는 일부 업체의 광고 때문에 더 큰 논란이 되기는 했지만, 이는 부차적인 문제다. ‘나’의 얼굴과 비슷한 리얼돌이 누군가의 성적 욕구를 해소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는 공포에 앞서, 남성용 성 기구가 현실의 여성과 점점 더 닮아가는 방향으로 만들어진다는 데 대한 공포가 이미 존재한다. 리얼돌의 수입을 반대하는 여성들에게 일부 남성들이 ‘이제 인형까지 질투하냐’고 대응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여성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을 그대로 보여준다. 여성이 성 기구인 인형을 질투한다고 생각할 만큼 여성을 성행위가 가능한 신체를 가진 무엇, 그 이상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리얼돌에 대한 여성들의 반응이 너무 과민하다고 말하지만, 현재 한국 여성들의 공포에는 엄연한 맥락이 있다. 대학에서는 신입 남학생들이 선배 남학생들에게 같은 학번 여학생들을 상품처럼 소개하고, 화장실을 비롯한 공공장소에서는 여성의 신체를 불법 촬영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심지어 그 불법 촬영물은 웹하드를 통해 끊임없이 공유되며, 버닝썬 게이트로 확인했듯 그야말로 여성의 성을 재화로 삼아 자신의 사업을 이어나가는 남성들이 있다. SNS에서는 주변 여성들 혹은 여성 연예인의 얼굴을 신체가 드러난 사진에 합성하는 ‘지인 능욕’ 계정도 운영된다. 여성을 오로지 성적 대상으로 인식하는 분위기는 사회 전반에 깔려 있으며, 이런 상황에서 리얼돌의 수입이 법적으로 허용된다는 것은 여성들에게 심각한 공포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나에게는 대법원의 판결이 ‘남성의 성적 욕구는 존중받아야 하며, 그 욕구는 여성을 통해서 해소할 수 있어야 한다’는 암묵적인 신호처럼 느껴진다. 한 아이스크림 브랜드가 여자 어린이를 성인처럼 꾸미고 심지어 성적인 코드를 넣어 광고를 만들어 놓고도 사람들이 지적하기 전까지 큰 문제점을 느끼지 못한 이 나라에서, 리얼돌에 대한 여성들의 반발이 과한 것일까?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위협받고 있는 구성원들의 불안감보다, 누군가의 성적 욕구가 훨씬 더 존중받고 이해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리얼돌 수입 및 판매를 금지해 달라는 청와대 청원은 26만3,792명의 서명과 함께 종료됐다. 우리도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윤리의 최저선이라도 방어해 달라는 여성들의 간절한 목소리에 국가가 답할 차례다.

황효진 콘텐츠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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