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젊은 정치] <7> 마크롱 이펙트를 보다
36세 여당 초선 의원 라팡 인터뷰
[저작권 한국일보]피에르 알랭 라팡 프랑스 의원(전진하는 공화국)은 젊은 정치인과 정치신인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당신을 믿고 꿈을 꾸며 사세요! (Ayez confiance en vous et vivez vos reves!) 박지연 기자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당선된 뒤 의회가 열다섯 살이나 젊어졌다. 61세였던 하원의원 평균 연령은 46세로 낮아졌다.”

피에르 알랭 라팡(Pierre Alain Raphanㆍ36) 의원은 고령화한 프랑스 의회의 평균 연령을 낮추는 데 기여한 당사자다. 2년 전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창설한 ‘전진하는 공화국(La République En Marche. LaREM)’에 합류했을 때 그의 나이는 34세였다. 정치 경력은 전무한 ‘정치 초짜’였지만 그는 회계사이자 인공지능(AI) 전문가, 비즈니스 컨설턴트 등 다양한 경력을 갖춘 인재였다.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회사 3곳의 설립자 및 최고경영자(CEO)이기도 했다. 이런 정치 신인의 당선은 프랑스 현대 정치사에 나타난 새로운 흐름을 보여준다. 바로 ‘마크롱 효과(Macron Effect)’다. 라팡 의원을 지난 6월 25일 프랑스 파리 의원회관 집무실에서 만났다.

라팡 의원은 “마크롱 대통령을 만나지 못했다면 결코 정치 진입장벽을 넘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기업을 경영하면서 AI와 민주주의의 상관관계를 연구, 박사학위 논문까지 썼다. 이 논문을 들고 평소 비슷한 정치관을 가졌다고 여겼던 유력 정치인 3명을 무작정 찾아가 ‘함께 일하고 싶다’고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를 영입하려 하지 않았다. 이때 그의 손을 뿌리치지 않고 잡아준 이가 바로 마크롱 당시 경제산업부 장관이다. 다양한 배경의 정치 신인을 불러모으던 마크롱은 때마침 찾아온 이 정치 초보를 망설임 없이 받아들였다. 청년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다.

마크롱 대통령의 공천은 파격이었다. 태권도 검은띠 보유자, 전투기 조종사, 수학천재 등 정치와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색 경력자로 후보자 명단을 채웠다. 선출직 경험이 전혀 없는 후보가 절반을 넘었고, 현직 의원은 단 5%뿐이었다. 엘리트주의가 뿌리 깊이 박힌 프랑스 정치권에서 기성 정치인에게 명함조차 내밀기 어려운 ‘정치 비주류’의 집합이었다. 그 때까지 프랑스에선 ‘정치 엘리트코스’로 불리는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과 국립행정학교(ENA)를 졸업했거나 ‘정치 명문가’ 출신, 그도 아니면 변호사나 성공한 기업가, 적어도 정치권에 넓은 인맥을 가진 유명인사라야 선거에서 상대가 될까 말까였다.

2017년 6월 18일 프랑스 총선 결과는 ‘전진하는 공화국‘의 압승이었다. 현지 언론은 이를 ‘선거혁명’이라고도 표현했다. 겨우 3년 된 신생 정당은 대통령을 배출했을 뿐 아니라 민주운동당(Modem)과 연합해 전체 하원의원 577석 중 여유 있게 과반 의석(350석ㆍ60.7%)을 차지했다. 철옹성 같은 기성 정치질서를 비집고 들어가 성공적으로 안착한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70년 가까이 프랑스 현대 정치를 지배해온 공화당과 사회당의 양당 구도는 신생정당의 활약으로 맥없이 무너졌다. 대한민국 국회 평균연령(55.5세)보다 높았던 의회 평균연령을 15세나 낮추고, 기성 정치인의 자리를 신인에게 대거 내주었을 뿐 아니라 거대 양당체제까지 무너뜨렸다. 프랑스 역사상 최연소, 그리고 비주류 정당 출신 첫 대통령이 불러일으킨 효과였다.

라팡 의원은 이토록 큰 변화가 기실 “마땅히 그래야 하는 당위”라고 역설했다. “의회는 ‘작은 프랑스’여야 한다고 믿는다. 의회는 각기 다른 국민을 대표하기 위해 의회가 존재한다. 비단 연령뿐 아니라 여성, 청년, 장애인, 노동자 등이 의회에 고루 분포해서 수많은 국민 개개인의 정체성을 대변해야 한다. 물론 완벽할 수는 없지만 오늘의 프랑스를 구성하는 현실에 가장 근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정치적 결정은 이런 구성에 기초해 내려져야 한다. 그렇지 않을 때 문제가 생긴다.” 마크롱 대통령이 모은 ‘정치 비주류’ 집합은 사실 기득권 정치에서 소외됐던 국민을 대변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낮아진 의회 평균 연령은 하루아침에 얻은 수확이 아니었다. 오랜 기간, 더디지만 조금씩 진일보한 결과였다. “100년 전만 하더라도 국회는 100%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여성이 의회로 들어오는 데에 수십 년이 걸렸다. 의원들은 대부분 60세 이상이다. 지난 선거에서 의회가 15세나 젊어졌지만 여전히 완벽하진 않다. 이제 구직 청년과 노동자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올 차례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매우 중요한 문제다.”

‘전진하는 공화국’은 남녀 성비가 50대 50에 가깝다. 일부의 독식을 막기 위해 지역위원회나 전국위원회에 중복 참여하지 못하게 했다. ‘전진하는 공화국‘은 최근 총선에서 다른 정당들에 비해 젊은 의원을 훨씬 많이 냈지만 여전히 당의 첫 번째 미션은 청년들을 당으로 불러모으는 것이다. 전진하는 공화국을 넘어 정치권 전체로 놓고 볼 때는 정치에 등을 돌린 20~40대가 아직 더 많다는 게 당의 분석이다.

그렇다면 마크롱 효과를 가능하게 한 배경은 무엇일까. 라팡 의원은 기성정치에 대한 깊어진 불신과 새로운 정치에 대한 기대감을 꼽았다. “과거엔 정치를 하려면 정치 엘리트코스가 필수였다. 정당에서도 하나의 의무처럼 여겼다.” 하지만 정치인의 화려한 이력서는 오히려 국민과의 거리감만 키웠다. ENA 폐지 논란이 대표적인 예다. 지난 4월 25일 마크롱 대통령은 국민대토론에서 엘리트주의에 기반한 고위공무원 개혁 방안으로 자신의 모교인 ENA 폐지라는 강력한 조치를 내놨다. 국가공무원을 양성하는 본래의 순기능보다 폐쇄적인 엘리트조직만 더욱 공고히 하는 역기능이 크다는 국민들의 지적이 높기 때문이다.

[저작권 한국일보]그래픽=신동준 기자/2019-08-11(한국일보)

프랑스 국민은 이제 자신을 대변할 수 있는 정치인에게 기대를 걸게 됐다. “국회의원에게 중요한 것은 국민을 대표하는 것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국민을 더욱 잘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청년과 원로, 각 분야 전문가 등 다양한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국회에 어우러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총선에서) 그런 정치철학이 실현된 것이다. 더 나은 정책을 만들고 정치를 통해 국민을 통합하기 위해 정치인이 흐름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는 정치에서 연륜이 갖는 영향력을 부인하진 않았다. 그러면서도 젊은 정치인만이 해낼 수 있는 특기가 분명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연륜을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누구나 자기 분량의 경험을 갖고 있다. 단지 나이가 어리거나 정치 경력이 짧다는 이유로 그 사람의 경험도 그만큼 적을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오랜 기간 정치에 전념한 분들이 잘 해낼 수 있는 영역이 있듯, 젊은 정치인들은 50ㆍ60대가 이해하기 어려운 AI 관련 분야 등에 대한 지식이 있다. 급변하는 이 시기에 필요한 정책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는 배경지식을 갖고 있는 셈이다.”

라팡 의원은 꼭 정치경력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여러 분야에서 쌓은 경험이 의원직을 수행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태권도협회를 운영하며 터득한 인적관리와 기업을 설립해 이끌며 익힌 다양한 각도에서 의사결정을 내리는 법이 그런 예다. 나이가 지긋한 의원들은 급변하는 인터넷 환경을 쓸모 없다고 생각하고 정책에 있어서도 그렇게 치부하기 십상이다. 그토록 중요한 주제를 인식조차 못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점을 포착할 수 있는 젊은 의원들의 참여가 중요하다는 걸 점차 많은 사람들이 절감하고 있다.”

‘마크롱 효과’는 기성정치를 성공적으로 바꿀 수 있을까. “나이는 젊지만 시스템에선 큰 변화를 만들지 못 하고 있다”는 냉랭한 평가도 있지만, 역대 최연소 대통령과 정치신인들의 대거 진입이 프랑스 정치 흐름을 확연히 바꿨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장기화했던 노란조끼 시위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유럽의회 선거에서 선전하면서 그의 국정운영은 긍정적 평을 얻고 있다.

잠재적 정치 신인을 양성하기 위해 “학생들을 위한 정치교육과 유권자 시민교육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하는 라팡 의원은 인터뷰를 마친 뒤 한국의 젊은 정치인과 정치 신인들에게 응원 메시지를 보냈다. “자신을 믿고 꿈을 향해 미소 지으세요!”(Ayez confiance en vous et rirez ros reves!)

파리=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저작권 한국일보] 피에르 알랭 라팡 프랑스 의원은 자신의 아내가 태권도 사진 콘테스트에서 우승한 사진을 보이며 한국에 대한 애정을 과시했다. 부부 모두 태권도 4단 보유자다. 박지연 기자.

◆피에르 알랭 라팡(Pierre-Alain Raphan)

1983년 프랑스 발드마른(Val-de-Marne)주 출생.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창설한 ‘전진하는 공화국(La République En Marche. LaREM)’ 의원(여당)으로 프랑스 의회에서 문화교육위원회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2017년 34세 젊은 나이로 의원 배지를 달았다. 의회 내 모임인 한국우호그룹에서 활동하고 있다. 태권도 4단으로, 국제태권도연맹이 인증한 감독 자격을 갖고 있다. 아내도 태권도 4단 보유자다. 오는 12월 쌍둥이의 아빠가 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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