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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산이 떠난 서재… 슬픔 대신 장미로 가득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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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산이 떠난 서재… 슬픔 대신 장미로 가득차다

입력
2019.08.08 17:13
수정
2019.08.08 19:53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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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고 황현산. 스톤 김 제공
문학평론가 고 황현산. 스톤 김 제공

“사실 저는 서재가 어떤 곳이냐 물으면 감옥이라고, 그렇게 말을 합니다. 늘 이 안에 갇혀 살아야 하고 떠났다가도 다시 돌아와야 하고. 늘 나를 가둬두어야 하는 자리죠.”

지난해 8월 8일 세상을 떠난 문학평론가 고 황현산(1945~2018)은 생전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서재를 ‘감옥’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그러나 그가 세상을 떠난 뒤 복원된 서재에서 사람들은 자유롭고 따뜻한 애도의 시간을 가졌다.

문학평론가이자 불문학자, 번역가, 산문가였다. 팔봉비평문학상을 수상했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문학과 학문이라는 벽을 허물고 나와 세상과 소통했던 시대의 지성이기도 했다. 학문적 성취만큼이나 대중적 인기도 누렸다. 지난해 별세 당시 많은 이들이 애도했던 이유다.

황현산 추모의 방. 한소범 기자
황현산 추모의 방. 한소범 기자

출판사 난다는 황현산 1주기를 맞아 그의 서재를 복원한 ‘추모의 방’ 전시를 8일 서울 합정동 북카페 디어라이프에서 열었다. 포천 작업실과 정릉 집의 유품 200여점을 옮겨왔다. 난다는 “지난해 발인을 지인들끼리만 치렀기 때문에, 선생을 존경하고 좋아했던 이들이 따로 추모할 기회가 없었던 것이 아쉬웠다”며 “이번 추모 전시는 많은 분들이 저마다의 추억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마련됐다”고 설명했다.

전시장에는 고인이 생전 즐겨 썼던 안경과 모자, 육필원고와 일기 등 손때가 묻어있는 물건이 가만하게 놓였다. 팔걸이가 해진 가죽의자에는 그가 생전 문장을 썼다 지웠을 시간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전시장 입구에는 방문객들이 국화 대신 헌화할 수 있도록 장미다발이 준비됐다. 시인 박연준, 작가 이슬아, 뮤지션 요조 등 문화예술계 인사를 비롯해 고인을 그리워하는 많은 방문객들이 헌화한 장미로 전시장은 추모의 정원을 이뤘다.

8일 고 황현산 선생 1주기를 맞아 난다에서 출간된 트윗 모음직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왼쪽)와 복간된 두 번째 평론집 '잘 표현된 불행'
8일 고 황현산 선생 1주기를 맞아 난다에서 출간된 트윗 모음직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왼쪽)와 복간된 두 번째 평론집 '잘 표현된 불행'

1주기를 맞아 고인의 생전 트윗을 모은 신간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와 ‘잘 표현된 불행’ 복간본도 함께 출간됐다. 고인이 2014년부터 2018년까지 만 4년간 총 8,554개의 트윗으로 36만명의 팔로어와 세상과 소통했던 편린을 모은 것이다. “나 죽은 후에 미래가 어찌되건 무슨 상관인가. 그러나 그 미래를 말하는 나는 살아 있지 않은가. 좋은 미래가 나 죽은 다음에야 온다고 해도 좋은 미래에 관해 꿈꾸고 말하는 것은 지금 나의 일이다. 그것은 좋은 책을 한 권 쓰고 있는 것과 같다.”(2015년 9월 14일 트윗)

황현산 추모의 방. 한소범 기자
황현산 추모의 방. 한소범 기자
황현산 추모의 방. 한소범 기자
황현산 추모의 방. 한소범 기자
황현산 추모의 방
황현산 추모의 방
황현산 추모의 방. 한소범 기자
황현산 추모의 방. 한소범 기자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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