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만난 윤 총장 “최순실 재산 많이 숨긴 듯… 몰수엔 문제 없어”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의 인연은 한 마디로 ‘악연’이다. 박근혜 정권 때인 2013년 국가정보원의 대선 댓글조작 사건 당시 황 대표는 법무부 장관이었고, 윤 총장은 서울지검의 해당 사건 수사팀장이었다. 사법고시 10기수 차이인 둘은 사건 처리 방향을 두고 맞붙었다. 같은 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윤 총장은 황 대표가 박근혜 정권을 비호하기 위해 수사에 외압을 행사했다는 취지의 폭탄 발언을 했다. 도발적인 항명이었다.
그런 두 사람이 8일 국회에서 다시 만났다. 지난달 임명된 윤 총장이 취임 인사를 위해 황 대표의 국회 대표실을 찾았다. 둘은 큰 소리를 내거나 대놓고 신경전을 벌이진 않았다. 그러나 대권을 꿈꾸는 정치인과 현직 대통령이 신임하는 검찰총장 사이엔 어쩔 수 없이 서늘한 긴장감이 흘렀다. 황 대표는 자신이 ‘검찰 선배’임을 강조하면서 윤 총장이 최근 단행한 검찰 인사에 대한 쓴 소리를 쏟아냈다. 윤 총장은 경청하는 태도를 취하며 충돌을 피했다. 그는 한국당 상징 색인 붉은색 넥타이 차림이었다.
황 대표는 “참 오랜만에 보는데, 검찰총장 취임을 축하한다”며 의례적 인사를 건넨 뒤 곧바로 날을 세웠다. 황 대표는 “이번 검찰 인사가 한쪽으로 치우쳐 편향됐다”면서 “중요한 보직을 특정 영역의 검사들이 맡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는데, 검찰 선배들 우려이기도 하니까 유념해야 될 것 같다”고 꼬집었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 등 문재인 정권을 겨냥한 수사를 주도했던 검사들과 공안ㆍ기획통 검사들을 윤 총장이 좌천시켰다는 논란을 정면으로 거론한 것이다. 황 대표는 공안 검사 출신이다.
황 대표는 또 “당에 들어와 보니 한국당이 고소ㆍ고발한 사건들이 70여건 되는데 그 중 4, 5건만 처리되고 나머지는 유야무야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과연 공정한 수사가 된 것이냐는 우려가 적지 않다”며 검찰의 편파 수사 문제도 건드렸다.
윤 총장은 한 마디도 반박하지 않았다. 그는 “검찰의 대선배이신 황 대표님께서 검찰에 늘 깊은 관심을 가져주시고 좋은 지적을 해주셔서 깊이 감사 드린다”며 “지적해주신 말씀은 신중히 받아들여 잘 반영하겠다”고 했다.
황 대표는 약 20분간 이어진 비공개 면담에서도 ‘선배’로서의 주문을 이어갔다고 한다. 황 대표는 “검찰이 실력을 키워야 한다. 특수 직역에서 승진을 독식해선 안 되고 여러 분야에서 전문성을 가진 후배들이 커 나갈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당부했고, 윤 총장은 “잘 하겠다”고 화답했다. 올해 초 패스트트랙 국회 충돌 이후 여야 고소ㆍ고발건의 ‘칼자루’를 윤 총장이 쥐고 있지만, 관련 대화는 없었다고 한국당은 전했다.
한편 윤 총장은 이날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최순실씨 은닉 재산과 관련한 질문이 나오자 “굉장히 많은 재산이 숨겨져 있는 것 같은 미스터리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국세청과 공조 수사를 하고 있으며, 검찰이 이미 상당 부분 재산 보전 청구를 해놓은 상태라 몰수에는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최씨가 딸 정유라씨에게 거액을 양도하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는 보도가 나온 바 있다.
윤 총장은 이날 주승용 국회부의장과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장인 유기준 한국당 의원도 만났다. 윤 총장은 나 원내대표와 비공개 면담에서 “인사 편향 문제에 대해 일일이 해명하는 건 적절치 않지만 다음 인사에서는 더 공정하게 하도록 하겠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이만희 원내대변인이 전했다.
정승임 기자 choni@hankookilbo.com
김의정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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