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자유’가치 훼손에 분노한 日 국민
아베와 日 국민 분리해 대응하는 韓 국민,
함께 민주적 가치 공감 넓혀 과거사 해결을
일본 시민들은 평화의 소녀상 미니어처(가로 세로 각 13㎝)와 촬영 사진을 SNS에서 공유하는 '작은 평화의 소녀상을 확산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사진은 캠페인에 활용되고 있는 김운성-김서경 작가의 미니어처 소녀상. 도쿄=연합뉴스

일본 아이치현의 ‘평화의 소녀상’ 전시 강제 중단 사태가 일본 사회에서 공분을 산 이유는 극우세력이 물리적 위해(危害) 협박으로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인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했기 때문이다. 아이치현 지사가 전시 중단 결정 하루 만에 “전시 중단은 검열이자 위헌”이라고 입장을 180도 바꾼 것은 일본 내 비판 여론의 심각성을 보여 준다.

일본 국민은 1946년 공포된 헌법을 일본 평화의 마지막 보루로 여긴다. 군 보유 금지, 국가 교전권 불인정을 통해 ‘국제평화를 희구’(9조)하는 헌법정신 때문이다. 여론조사 때마다 개헌 반대 의견이 절반을 넘는다. ‘혼네(본심ᆞ本心)’를 감추는 다수를 더하면 우익세력을 제외한 상당수 일본 국민은 전쟁 가능 국가를 향한 아베의 개헌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 그토록 헌법 가치를 중시하기에 ‘표현의 자유’(21조)가 극우세력에 유린된 것을 국가적 부끄러움으로 여기는 일본 국민이 많을 것이다. “또 하나의 ‘표현의 부자유전(展)’이 생겨버린 결과는 중대하다. 소리를 낮추고 숨 죽이며 지켜보던 사람들은 ‘표현의 자유’에 대해 생각했을 것”이라는 아사히신문 보도에서 일본 국민의 당혹감, 충격, 분노가 느껴진다. 소녀상 사태에 대한 일본 사회의 이 같은 공분은 반일 감정이 고조된 우리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본 불매 운동은 과거와 전혀 다른 양상이다. 국민들은 쪽집게처럼 국산과 일제를 구분하고, 제조ᆞ판매사가 정말 일본 기업인지, 일본계라도 세금을 어디에 내는지 살핀다. 일본 관광을 가거나 일제 차를 타는 것을 비난하는 이들에겐 우리 여행사를 생각하고, 타인 행동에 개입하지 말며, 각자 생각과 선택을 존중하고 배려하라고 일침을 가한다. 민족 감정에 과몰입했다간 낭패볼 분위기다.

과거사ᆞ영토 문제로 일본과 부딪쳤던 과거 어느 때보다 더 성숙해진 우리 국민에 가슴이 뿌듯하다. 동시에 이토록 현명한 국민이면, 전향적인 인식과 태도로 양국 과거사 문제 해결과 미래 관계 구축에 나설 수 있지 않을까, 기대와 희망을 갖게 된다. 양국 국민이 공감ᆞ공유할 수 있는 공통의 가치를 찾아 함께 실현해 간다면 불가능하진 않을 것이다.

소녀상 전시 강제 중단 사태는 양국 국민이 통할 수 있는 접점을 제시했다. 그것은 인간은 누구나 존엄하며,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는 민주주의 기본 이념이다. 인간이 존엄하려면 누구나 자유롭게 자기 뜻대로 말하고 행동하고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또 진정한 자유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말아야 하고,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것은 인류가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다. 일본 국민은 소녀상 사태를 한일 과거사 문제가 아닌 ‘표현의 자유’라는 민주주의 가치 훼손 차원으로 바라본다. 우리도 위안부ᆞ강제징용 문제 등에서 민족주의나 국가주의를 앞세우기보다 인간 존엄성의 심각한 훼손이라는 관점을 더 비중있게 다루며 접근하면 어떨까. 아마 일본 국민으로부터 이 문제에 대한 더 넓고 깊은 공감과 공유를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상적인 이야기로 들릴 수 있으나 가장 현실적 이야기일 수 있다.

일본 국민 사이에 인간 존엄성 훼손에 대한 공감이 퍼질수록 일본 우익 정치인들에겐 심각한 타격이 될 것이다. 극우세력과 우익 정치인들이 소녀상 전시를 강제 중단시킨 것도 그런 울림의 확산을 차단하려는 불안감의 발로다. 민주주의 기본 이념과 가치에 대한 공감 아래 일본 국민과 진정으로 통한다면, 그것은 우익 정치인에 압박이 되고 사과가 따라올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다. 반일ᆞ극일 움직임 속에서도 일본 국민을 아베 정권과 구분해 배려하는, “‘노 재팬’ 아닌 ‘노 아베’”구호는 그래서 나온 우리 국민의 지혜로움의 소산이다. 그러나 한국이나 일본의 문제는 공히 상대국에 대한 감정을 부추기고 자극하는데만 뛰어난 정치인들이다. 그들이 국민 수준을 따라오려면 한참 멀었다. 그게 양국이 처한 비극적 현실이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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