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르 드 프랑스 종합 우승을 차지한 에간 베르날(가운데)이 지난달 29일 프랑스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에서 투르 드 프랑스 21스테이지가 종료된 뒤 팀 이네오스 동료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파리=AP 연합뉴스

‘콜롬비아의 신성’ 에간 베르날(22)의 우승으로 끝난 2019년 투르 드 프랑스. 1909년 프랑수아 파버 이후 최연소 우승이자, 남미 선수로는 최초로 포디움 가장 상단에 오른 베르날에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쏠렸다. 하지만 뒤에서 웃은 사람들은 따로 있었다. 바로 5년 연속 투르를 제패한 ‘팀 이네오스’의 총감독 데이브 브레일스포드(55) 경이다.

팀 이네오스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팀 스카이로 불리며, 2010년대 로드 사이클계를 지배한 ‘슈퍼 팀’이다. 2010년 창설된 이 팀은 ‘영국 사이클의 아버지’ 브레일스포드의 주도로 만들어졌다. 브레일스포드는 영국 사이클의 역사를 뒤바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인물이다.

20대 초반 아마추어 사이클리스트로 활동하던 브레일스포드는 체스터대에서 스포츠과학과 심리학을 전공한 평범한 자전거 선수였다. 대학 졸업 후 자전거 수입회사의 판매 사원으로 일하던 그는 1990년대 후반 영국 사이클협회에서 일하게 되며 큰 변화를 맞았다. 당시 협회는 맨체스터에 벨로드롬(자전거 경기장)과 함께 협회 본부를 새롭게 건설하며 영국 사이클 부흥을 천명했는데, 이 때 브레일스포드가 대표팀 훈련 프로그램 디렉터로 임명된 것이다. 이후 브레일스포드의 훈련 프로그램은 사이클의 변방국이었던 영국을 최강의 나라로 끌어올렸다.

브레일스포드 경은 ‘한계이익의 법칙(idea of marginal gains)’을 선수들의 훈련 프로그램에 도입해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한계이익의 법칙이란 수많은 분야에서의 아주 작은 변화들이 모여 결국 승리를 쟁취할 정도의 큰 변화를 불러일으킨다는 의미로, 그는 이 법칙을 경기력에 미칠 수 있는 모든 변수에 도입했다. 경기복이나 사이클 부품 등의 신기술부터 선수들의 잠자리까지 모든 분야에서 변화를 택한 덕분에 영국은 2004년 올림픽에서의 2개의 금메달을 시작으로 사이클 전 분야를 제패하기 시작했다. 영국은 2008년과 2012년 올림픽 사이클 부문에서 각각 8개의 금메달을 휩쓸었고, 이후 로드 사이클, MTB 가릴 것 없이 국제사이클연맹(UCI) 주관 대회 시상대를 자신들의 앞마당 마냥 올랐다. 세세한 과학의 힘이 사이클계의 역사를 바꾸게 된 것이다.

팀 이네오스의 총 감독 데이브 브레일스포드 경. 팀 이네오스 홈페이지

이 공로를 인정받아 기사 작위까지 받은 브레일스포드는 목표를 투르 드 프랑스로 넓혔다. 100년이 넘는 투르의 역사에서 영국인이 우승을 차지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는 영국 위성방송 스카이를 메인 스폰서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브래들리 위긴스(39)를 위시한 프로팀 ‘팀 스카이’를 창설하기 이른다. 멤버도 크리스 프룸(34), 게러인트 토마스(33) 등 당대 올스타에 가까웠다.

애초 팀 창설시 목표가 5년 내 영국인의 투르 드 프랑스 제패였던 팀 스카이는 불과 3년 만인 2012년 브래들리 위긴스가 영국인 최초로 투르를 제패하며 목표를 조기 달성했다. 사이클 전문매체 바이사이클링에 따르면 브레일스포드는 한계이익의 법칙을 팀 스카이에 그대로 적용했다. F1 팀이 사용하는 2층짜리 트럭을 빌려와 팀원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21스테이지에 이르는 투르 기간 동안 선수들 개인에 맞춘 매트리스와 베개를 사용토록 했는데, 어떤 베개에는 아이팟 스피커가 내장돼 개인 취향까지 세세하게 맞췄다. 경기복도 미세한 공기 흐름까지 계산된 프로토타입을 적용했고, 경기 중간 선수들의 영양 보충을 위해 특제 레시피의 떡까지 준비했다. 프랑스의 심장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 영국 국기를 꽂을 수 있던 이유엔 이런 작은 변화들이 숨겨져 있었다.

이후 팀 스카이는 크리스 프룸의 4회 우승, 지난해 게러인트 토마스의 우승으로 2010년대 들어 9번의 투르 드 프랑스에서 6번의 우승을 독식했다. 올해부터 메인스폰서를 석유화학기업 이네오스로 바꾼 팀 이네오스는 콜롬비아 출신의 영 클라이머 에간 베르날이 팀의 7번째 개인종합 우승을 차지하며 최강자 자리를 지켰다. 베르날의 우승에 브레일스포드는 “행운은 용기 있는 자에게 오는 법”이라며 짧은 소감을 남겼다.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에간 베르날이 지난달 29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투르 드 프랑스 21스테이지 경기 중 우승을 확정 지은 뒤 팀카의 동료와 축하주를 마시고 있다. 파리=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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