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의 마음을 기억합니다. 독립운동가들의 얼이 서린 이곳 서대문형무소에서 아베 정부 규탄에 앞장서겠습니다.“
일제강점기 수만 명의 독립운동가들이 수감됐던 서울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앞에 8일 ‘NO아베’ 현수막이 펄럭였다. 서대문지역 시민, 노동, 정당단체가 모인 ‘아베규탄 서대문행동’은 이날 오후 이곳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는 10일부터 ‘NO 아베 현수막 거리’를 조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얼굴과 함께 ‘일본의 경제침략 규탄! 전쟁범죄 사죄배상 촉구!”란 문구가 적힌 현수막 뒤로는 안중근 의사와 유관순 열사의 사진이 함께 나부꼈다.
박희진 민중당서대문지역위원회 위원장은 “민간 중심으로 불매 운동이 확산되고 있으나 일본 정부는 전혀 반성의 기미가 없다”며 “역사적인 공간 서대문에 살고 있는 주민으로서 일본 정부 규탄에 앞장서야 할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지난 6일 서울 중구청이 거리에 ‘NO재팬’ 배너기를 걸었다 항의가 쏟아지자 철거하는 해프닝이 있었지만 서대문행동은 닷새간 1,000여 명의 서대문구 시민들로부터 현수막 설치 동의 서명을 받았다. 이들은 구청의 허가를 받는 대로 가로 90㎝, 세로 120㎝ 크기의 현수막 300개를 준비해 서대문형무소 앞 통일로부터 지하철3호선 홍제역까지 내걸 계획이다.
기자회견에 참가한 시민들은 “서대문구의 ‘NO아베’ 현수막은 논란을 빚었던 중구청의 ‘NO재판 깃발과는 다르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발언에 나선 홍은동 주민 전진희씨는 “어디까지나 주민들의 자발적인 의사 결정에 따라 거는 것이기 때문에 중구청의 깃발과는 비교할 수 없다”고 말했다. 현수막의 문구가 ‘NO재팬’이 아니라 ‘NO아베’인 이유에 대해서는 “일본 국민 전체가 아닌, 오직 아베 정부만을 규탄하겠다는 뜻”이라며 “양심 있는 일본 국민들과도 연대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일본에서 찾아온 이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시즈오카현에서 온 대학생 히루카와 메이(24)씨는 “아베 정권이 정치적인 목적으로 한일관계를 의도적으로 악화시키고 있다”며 “일본 내 젊은이들도 불안감을 느낀다”고 평했다. 어머니와 함께 한국을 찾은 히루카와씨는 졸업논문 주제인 ‘한중일의 2차 세계대전에 대한 역사인식’ 자료 조사차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각자 준비한 현수막에 규탄의 목소리를 적는 퍼포먼스도 벌어졌다. 김옥원(80)씨는 “일제강점기에 일본군이 집으로 쳐들어와 온갖 세간을 빼앗아 갔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며 “일본은 이제라도 그간의 역사적 악행에 대해 사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먼 곳에서 달려온 시민들의 참여도 돋보였다. 충남 아산시에서 왔다는 정재선(39)씨는 눈시울을 붉힌 채 “서대문형무소에 와보니 ‘내가 그 당시에 태어났어도 독립운동을 할 수 있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며 “일본 제품 불매운동을 더욱 열심히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1908년 ‘경성감옥’이란 이름으로 개소한 서대문형무소에는 일제강점기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수감됐다. 유관순 안창호 등 독립열사들은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순국했다.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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