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쓰는 한글 필체와 달라”…. 현지 동포 “일본인 소행 추측” 
인도네시아 중부자바 암바라와에 있는 일본군 위안소 중 가장 보존이 잘 된 오른쪽 다섯 번째 방에 적힌 낙서. 2014년 현지 동포들이 처음 현장을 발견할 당시에도 있었던 사실과 글자체가 보통 한글을 적는 방식과 다르다는 점에 미뤄 일본인이 쓴 것으로 추정된다. 암바라와=고찬유 특파원

‘소녀시대 少女時代 SNSD’ 그리고 다윗의 별.

한국일보 보도로 세상에 처음 알려진 ‘화장실로 변한 인도네시아 일본군 위안소(8일자 1, 2면)’엔 정체를 확인할 수 없는 낙서가 여럿 있다. 정선(58) 한인포스트 대표 등 현지 동포들이 이 위안소를 처음 발견한 5년 전에도 존재했던 것들이다. 조선 소녀들이 끌려와 모진 고초를 당하고, 이어 폐허로 변한 자리에는 어울리지 않는 낙서들이라 보는 이들의 마음이 착잡하다.

이상한 낙서와 흔적들은 지난 1일 기자가 찾아간 인도네시아 중부자바 암바라와의 암바라와 성 북문 7m 지점에 일렬로 늘어선 일본군 위안소 3개 동 중 오른쪽 건물에 남아있다. 그나마 보존이 잘 돼 있는 오른쪽 다섯 번째 칸 왼쪽 벽엔 누군가 ‘소녀시대’라고 써 놓았다. 그 옆과 위엔 한자와 영어 약자(SNSD)로 역시 소녀시대를 적어 놓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보통 우리나라 사람이 한글을 표기하는 방법과는 다르다. ‘ㅅ’을 적을 때 나눠 쓰지 않고 한번에 그린 모습이다.

정선 대표는 “언제적 낙서인지는 알 수 없으나 발견 당시 상태가 선명했다”라며 “그 즈음 일본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한국 걸그룹이 소녀시대였던 걸 감안하면 일본인이 한 게 아닐까 추측만 할 뿐”이라고 말했다. 일본군 위안부 고 정서운(1924~2004) 할머니의 생전 육성 덕분에 한인들이 위안소 위치를 알게 됐지만, 우리보다 훨씬 일찍 인도네시아에 공을 들이고 자신들의 점령지역을 챙겼던 일본은 오래 전부터 위안소의 존재를 알고 있었을 것이란 얘기다. 정 대표는 “(낙서를 발견하고) 소녀들의 울부짖음이 들리는 것 같았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인도네시아 중부자바 암바라와에 있는 일본군 위안소 입구에 새겨진 다윗의 별과 '소녀'라는 글자. 다윗의 별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가 유대인들을 구별 짓고 핍박한 낙인으로 사용했다. 암바라와=고찬유 특파원

그 방의 입구엔 다윗의 별도 그려져 있다. 다윗의 별은 오랜 역사 동안 유대인의 긍지를 드러내는 문양으로 활용됐지만, 2차 세계대전 때 나치 독일이 모든 유대인들로 하여금 노란색 다윗의 별을 가슴에 달고 다니도록 하는 정책을 시행함으로써 선별과 배제의 상징으로 둔갑시켰다. 홀로코스트 대학살 당시 다윗의 별은 핍박과 고통을 불러오는 낙인이었다. 주변에 살며 일제 강점기 적도의 한인들을 연구하는 이태복(59) 시인은 “그 문양이 조선 소녀들의 한이 서린 위안소 현장에 남겨진 건 참담할 노릇”이라고 했다.

인도네시아 중부자바 암바라와에 있는 일본군 위안소 한 벽면에 새겨진 표식. 날짜를 센 것인지 순서를 새긴 것인지 분명치 않다. 암바라와=고찬유 특파원

오른쪽 위안소 건물 외부 벽엔 다른 흔적도 있다. 일자로 줄을 새겨 다섯 개 묶음으로 수를 센 흔적이다. 소녀들이 언제쯤 돌아가려나 날을 헤아린 건지, 일본군들이 소녀들을 유린한 숫자를 기록한 것인지 그 용도를 알 길이 없다. 이태복 시인은 “증언도 기록도 남아있지 않으니 답답하다”고 했다. 당시 암바라와 성 연합군 포로수용소의 일본군 대장은 종전 후 사형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 노예 위안소를 운영했다는 죄목이었다. 그 기록은 부정할 수 없는 역사의 증거로 남아있다.

암바라와(인도네시아)=고찬유 특파원 jutd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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