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ㆍ육아 모성보호제 정착 불구… 51% “임신기간 불공정 대우받아”
‘이래서 내가 여자들 많이 뽑는 거 별로 안 좋아하잖아.’
회사원 명수현(가명ㆍ31)씨는 지난해 팀장이 한 말이 아직도 귀에 생생히 들리는 듯하다. 명씨가 임신 사실을 알린 날 점심식사 자리에서 들은 말이다. 팀에는 명씨 외에도 이미 육아휴직 중인 직원이 있었는데 자신까지 임신하자 팀장이 우회적으로 불쾌감을 표시한 것이다. 명씨는 육아휴직을 쓰긴 했지만 팀장의 반 종용에 가까운 권유 탓에 당초 계획했던 1년에서 6개월로 기간을 절반으로 줄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임신기간 중 정시퇴근을 하려 해도 ‘일이 너무 많다’는 동료들의 하소연을 모른채 할 수 없었다. 명씨는 “(임신한 근로자가 하루 2시간씩 일을 덜 할 수 있는) 임신기 단축근로제도도 쓸 수는 있었지만 차마 말을 꺼낼 수 없었다”고 말했다.
모성보호에 대한 인식이 자리잡으면서 다양한 모성보호제도가 속속 도입되고 있다. 2017년 고용노동부의 일ㆍ가정양립 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 1,000개 기업 중 81.1%(811개)가 출산휴가제를 도입했고 배우자출산휴가를 활용한다고 답한 곳도 60.9%(609개)에 달했다. 태아검진시간을 보장하는 기업도 606개(60.6%)였다. 2013년 같은 조사에서 출산휴가제 도입률이 77.2%, 배우자출산휴가 도입률은 19.4%였던 것에 비해 모두 상승했다.
제도적으로야 안착됐지만 모성보호제도를 사용하려는 여성들은 보이지 않는 차별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8일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임신ㆍ출산기 여성근로자의 차별실태와 정책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5년 사이 임신ㆍ출산 경험이 있는 30~49세 여성 1,376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절반에 달하는 51.3%(706명)가 ‘임신기간에 불공정 대우를 받은 적 있다’고 답했다.
불공정 대우 중 가장 많은 사례로 꼽힌 건 ‘임신ㆍ육아를 위한 휴가를 내는 것 때문에 직장상사, 동료로부터 불평을 들은 적이 있다’(27.1%ㆍ중복응답)는 것이었다. ‘임신ㆍ육아를 위해 정시 퇴근하는 것 때문에 불평을 들은 적 있다’(15.7%)거나 ‘임금인상ㆍ승진에서 차별을 받았다’는 응답도 각각 11.2%였다. 임신을 이유로 퇴사를 권유 받은 경우도 5.0%나 됐다. 이는 근로기준법과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이다.
응답자 대다수인 86.9%(1,195명ㆍ중복응답)가 산전후휴가를 사용했지만 그 과정에서 55.3%(661명)가 차별을 경험했다. 차별 유형으로는 ‘휴가기간에 업무관련 문의나 요청 때문에 회사에서 수시로 연락이 왔다’는 경우가 13.3%로 가장 많았다. 이어 ‘원하는 시기보다 빨리 또는 늦게 산전후휴가를 시작하도록 상사ㆍ동료가 권유’(11.0%) 했거나 ‘빨리 복귀하기를 원하는 것 같아 압박감을 느꼈다’(10.6%)는 응답순이었다. 한 설문 참여자는 ‘출산휴가 갈 때도 노트북과 핸드폰을 항상 켜놓으라’며 업무 압박을 받았다고 응답했다. 또 다른 응답자는 ‘출산휴가 기간임에도 산후조리원을 나오자마자 유축기를 들고 회사에 갔다’며 ‘안 가면 복귀에 악영향을 미칠 것 같았다’고 털어놨다.
모성보호제도가 정착기에 들어간 만큼, 이제는 임신한 여성노동자들이 자유롭게 권리행사를 할 수 있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보고서를 작성한 전기택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ㆍ캐나다는 임신기간 상사나 동료의 심리적 압박도 ‘직장내 괴롭힘’으로 규정하고 있다”며 “정부가 임신여성근로자 등록제 등을 도입해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근로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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