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을 가질 수 없는 이들이 더 많기에 한국에는 집 아닌 집들이 호황이다. ‘원룸’ ‘투룸’ ‘오피스텔’등의 안내가 창 위에 붙은 한 부동산중개업소 앞을 한 청년이 스쳐 지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초등학생들이 쓰는 말 중 ‘빌거’ ‘임거’ ‘주거’라는 못된 단어가 있다. ‘빌라 거지’ ‘임대아파트 거지’ ‘주공아파트 거지’라는 뜻이다. 철부지들의 말장난으로 치부하기 어렵다. 사는 곳으로 존재를 호명하고, 이를 통해 구별 짓기를 시도하는 한국 사회의 비뚤어진 심리를 반영한다. 주거에 대한 그릇된 인식이 자리 잡은 한국 사회에서 모두가 집을 소망하며, 평생을 내집 마련의 꿈을 위해 헌신한다.

배지영의 소설집 ‘근린생활자’의 표제작 ‘근린생활자’의 주인공 상욱도 마찬가지다. 반지하에서 3년, 옥탑에서 2년간 살았던 상욱은 월세나 다름없는 은행 대출 이자를 매달 갚아가며 드디어 ‘자가’ 소유자가 된다. 그러나 상욱의 집은 일반 주택이 아닌 근린생활시설, 이른바 ‘근생’이다. 미용실이나 잡화점 같은 생활시설로 허가를 받은 뒤 주거 목적의 주택으로 불법 용도 변경을 한 시설을 일컫는다.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집처럼 보이지만, 근생은 ‘진짜 집’이 될 수 없다. 주차를 할 수도 없고, 전세자금대출도 받을 수 없다. 불법이기 때문에 누가 신고라도 할까 늘 전전긍긍하며 지내야 하고 낯선 이의 초인종에는 혹시 단속이 뜬 건 아닌지 마음 졸인다. 진짜 집이 될 수 없는 근생은, 승강기 수리회사에서 일하지만 정직원은 아닌 상욱의 비정규직 삶과도 무관하지 않다.

배지영 작가. 한겨레출판ㆍ장량재 제공

집이되 집이 아닌 곳에 목매야 하고, ‘비정규직’ 혹은 ‘임시’같은 수많은 단서나 조항이 달린 일자리에 충성해야 하는 비정규 인생들. ‘근린생활자’에는 이처럼 무수한 ‘정규가 아닌’ 상태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하청업체에서 폐기물이 저장된 드럼을 묻고 관리하는 그(‘그것’), 수력발전소의 도수관 벽면에 붙은 삿갓조개를 긁어내는 노동자(‘삿갓조개’), 마트 행사장에서 물건을 훔치고 등산로에서 몸을 파는 노인 여성(‘사마리아 여인들’). 똑 같은 구내식당을 이용하고 비슷한 작업복을 입지만, 연봉은 형편없는 수준에 퇴근 시간은 불규칙하며 법정휴가조차 마음대로 쓸 수 없는. 일을 하다가 병에 걸리거나 사고로 죽은 사람도 적지 않지만, 그럼에도 회사의 존재가 외부로 알려진 바는 거의 없는. 그러다가 끝내 시체로 떠오르지만, 역사에는 기록되지 않는. 분명 존재하지만 쉬이 가시화되지 않는 삶들의 한가운데로 작가는 깊숙이 파고든다.

작가는 책의 말미 인터뷰에서 이렇게 덧붙였다. “사실 이것은 ‘직업’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해요. 직업에 대한 자부심도 있고 전문성도 가지고 있음에도 야박한 대가와 고된 환경을 견뎌야 하는 사람들. 그러면서도 그저 운이 없었을 뿐이라고 혹은 조금 더 노력하지 않은 자신을 탓하기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 먹고 살아야 하니까, 그래야 해서가 아니라 그래야 하는 줄 알고 살아왔던 이들. 그렇게 살아왔고 또 살아가고 있는 이들을 위로하고 싶었습니다.” 여섯 편의 소설은 작가가 세상의 모든 비정규 인생들에 전하는 위로다.

 근린생활자 
 배지영 지음 
 한겨레출판 발행ㆍ290쪽ㆍ1만 3,500원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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