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의료계 ‘미운 오리 새끼’ 한약사들 

※‘메디 스토리’는 의사, 간호사 등 의료계 종사자들이 겪는 애환과 사연, 의료계 이면의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한국일보>의 김치중 의학전문기자가 격주 월요일 의료계 종사자들의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2018년 12월오후 정부세종청사 보건복지부 앞에서 전국 한약학과 학생협의회가 집회를 열고 즉각적인 한약분업 시행을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일반의약품 팔려고 한약학과 나와서 한약사 된 것이 아닌데 자괴감만 듭니다.”

서울의 한 약대에서 한약학과를 졸업하고 한약사 자격을 취득한 A(24)씨는 올 봄부터 주말마다 한약사 선배가 운영하고 있는 서울 강북 지역의 소형 약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A씨가 일하는 곳은 겉보기에는 다른 약국들과 비슷하다. 하지만 이곳에서 팔 수 있는 약품은 한정돼 있다. 이곳은 한약사가 운영하는 일명 한약국(韓藥局)으로, 한의사 처방 없이 한약사가 조제할 수 있는 일부 한약과 한방 관련 일반의약품을 판매한다. 이런 약을 찾는 이는 극소수이고,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감기약, 소화제 등 일반의약품을 주로 팔아 약국을 유지한다. A씨는 “한약사가 약국을 운영할 뿐 편의점과 다를 바 없다”며 “한약사는 비전이 없다며 다시 공부해 약대, 의대, 한의대에 들어간 동기들의 말을 들었어야 했다”고 자조했다. 한의사와 약사의 한약조제권을 둘러싼 분쟁으로 생겨난 직역인 한약사들이 존립 위기에 놓여있다. 정부가 약속했던 ‘한약분업’ 시행은 기약이 없고, 한약조제권 확대도 미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 “한약사지만 살기 위해 일반의약품 판다” 

한약사는 1990년대초 한의사와 약사 사이에 벌어진 한약조제권 다툼의 산물이다. 의약분업 실시 전인 당시에는 한의사와 약사 모두 한약을 조제ㆍ판매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시에 ‘한약분업’시행은 시간문제로 여겨졌고, 향후 한약조제권의 주도권을 놓고 양쪽이 양보 없는 신경전을 벌였다. 결국 정부는 양측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중재를 맡았던 경제정의실천연합의 중재안을 밀어붙였다. 3년 이내 한약분업 실시를 조건으로 1994년 일부 한약의 조제권을 주는 ‘한약사’제도를 만들었고, 기존 약사들의 기득권을 인정해 ‘한약조제자격시험’을 통과한 약사들에게도 일부 한약조제권을 부여했다.

이에따라 1996년 경희대, 원광대, 1998년 전주 우석대 약대에 한약학과가 신설되면서 2000년부터 한약사가 배출됐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8년 12월 기준으로 한약사 면허자는 2,549명. 하지만 한약분업 실시는 기약이 없는 상황이다. 한약조제권을 뺏기지 않으려는 한의사들과 한약분업이 이뤄질 경우 주도권을 차지하려는 약사들의 갈등 때문이다. 두 직역 모두 세가 약한 한약사들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있다.

한약사들은 “한의사, 약사들은 한약사를 자기들 밥그릇을 뺏는 존재라고 생각할 뿐”이라며 “이렇게 10년이 지나면 한약사들은 자연스럽게 시장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또한 한의사 처방 없이 한약사들이 조제할 수 있는 한약 종류를 100가지로 한정한 ‘한약처방의 종류 및 조제방법에 관한 규정(한약조제지침서ㆍ100처방ㆍ1995년부터 시행)’이 시대변화에도 불구하고 확대되지 않는 점도 사정을 악화시킨다고 한약사들은 하소연한다.

지난 6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아파트 단지에 있는 30.25㎡(약 10평) 규모의 한약국을 찾아가보니 사정은 예상보다 심각했다. 유동인구가 적은 아파트 단지이긴 하지만 이날 오후 1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이곳을 찾은 손님은 다리와 얼굴에 붓기가 있다고 해 찾은 40대 여성 한 명뿐이었다. 그나마 이 여성은 오래전부터 한약을 복용해 온 ‘한약 마니아’였다. 11년째 이곳에서 한약국을 하고 있다는 한약사 B(46)씨는 “일반의약품 구입하는 손님을 포함해도 하루 5명 정도가 찾아오는데 한 달 1,500만원 정도 번다”며 “직원(한약사 1명) 월급, 임대료를 내면 집에 겨우 생활비 갖다 주는 수준”이라고 털어놓았다. B씨는 “일반인들은 한약국이 어떤 약을 취급하는지도 잘 모른다”면서 “그래도 이 정도면 매출이 괜찮은 편에 속한다”고 씁쓸해 했다.

서울 강남에서 약국을 운영 중인 한약사 C씨는 자신이 직접 조제한 ‘월비탕(越婢湯)다이어트’ 제품으로 근근이 가게를 유지한다. 한의사의 처방 없이 직접 조제가 가능한 100처방 중 월비탕은 다이어트에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10년 넘게 약국을 운영했지만 100처방 중에 월비탕 말고는 내걸만한 것이 없다”며 “후배들이 다이어트 약 팔려고 한약사 됐냐고 비난도 하지만 먹고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저작권 한국일보]주요 시도별한약국 수/ 강준구 기자/2019-08-11(한국일보)
 
 ◇한의사들 “한약사 우리 파트너 아니다” 

한약사들은 즉각적 한약분업 시행과 100처방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한의사와 약사 모두 이들의 주장을 외면하고 있다. 복수의 한의사들은 “한약사는 정치적으로 만들어진 산물”이라며 “솔직히 한의사들은 한약사를 파트너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한의사는 “아무리 수요가 떨어졌다고 해도 한의원 수익의 원천은 한약인데 한약조제권을 한약사에게 넘기면 처방료나 진찰료만으로는 한의원을 운영할 수 없다”며 “한의사들은 현상 유지가 상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한약분업의 또 다른 이해당사자인 약사들의 불만도 만만치 않다. 약사들은 한약사들의 일반의약품 판매가 부적절하다고 문제를 제기한다. 현행 약사법에 따르면 약사와 한약사만이 약국을 개설해 일반의약품을 판매할 수 있다. 하지만 약사들은 약사법 2조에 ‘한약사는 한약과 한약제제에 관한 약사업무를 담당하는 자’로 업무가 분장돼 있다며 한약사들이 일반의약품을 판매하는 것은 면허범위를 초과한 행위라고 지적한다. 좌석훈 대한약사회 부회장은 “법이 모호해 한약사들이 버젓이 일반의약품을 판매하고 있다”며 “한약사의 일반의약품 판매를 허가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반면 김종진 대한한약사회 부회장은 “약사법에 따라 약국개설자는 일반의약품을 판매할 수 있기 때문에 한약사의 일반의약품 판매는 정당하다”고 반박했다. 약사법 50조는 ‘약국개설자는 의사 또는 치과의사의 처방전이 없이 일반의약품을 판매할 수 있다’고 돼 있어 약국 개설이 가능한 자신들의 일반의약품 판매는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다.

한약사들은 “한의사와 약사들 사이에서 한약사는 그야말로 미운 오리 새끼 신세”라면서도, 한약분업은 자신들뿐 아니라 한방 전체를 위해 반드시 실시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종진 부회장은 “한약사는 한약분업을 전제로 만들어진 직역”이라며 “한약분업이 이뤄지면 한약시장의 규모가 확대돼 국민들이 다양한 한약을 통해 질환을 치료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약의 안전성을 한의사와 함께 한약사가 모두 검증할 수 있게 돼 궁극적으로 한약에 대한 국민적 신뢰와 안전성 확보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준현 건강세상네트워크 대표는 “정부에서 한약사 제도를 만들어 전문 인력을 양성했는데 현장에서 자기 역할을 하지 못하는 현실은 개선돼야 한다”며 “의사와 약사가 상호견제를 하듯 한의사와 한약사도 상호견제를 하면서 한약시장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치중 기자 cj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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