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강제징용 사건에서 일본 전범기업을 대리한 법률사무소 김앤장의 변호사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독대해 강제징용 재판 진행상황에 대한 얘기를 여러 차례 나눴다고 증언했다.
김앤장 소속 한모 변호사는 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 박남천) 심리로 열린 양 전 대법원장과 고영한ㆍ박병대 전 대법관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양 전 대법원장과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라며 “대법원장 취임 전후로 사무실을 방문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판사 출신인 한 변호사는 양 전 대법원장과 사법연수원 4년 선후배 사이로, 1994년 법원행정처에서 함께 근무한 인연이 있다. 부부동반 모임에도 함께 참석하는 등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2013년 3월에 만나 강제징용 사건 상고심 주심이었던 김능환 전 대법관의 근황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 받던 중 강제징용 배상 사건이 선례에 어긋나며 한일 관계에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고, 한일 청구권 협정과도 맞지 않는다는 등의 얘기를 나눴다. 이와 관련해 한 변호사는 “양 전 대법원장이 ‘김 전 대법관이 (선고 결과에 대해) 귀띔도 안 해줬다’고 말하며 강제징용 같은 중요한 사안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하지 않고 소부에서 선고한 것에 대해서도 불만스러워했다”고 회고했다.
한 변호사는 또 “4년간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재직한 경험에 비춰 2012년 대법원 판결 과정에서 소부에서만 판단한 것인지, 전원합의체처럼 다른 법관의 의견도 공유된 것인지 궁금했느냐”는 검찰의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며 합의 과정에 의문을 가졌음을 인정했다.
2015년 5월에는 당시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이었던 임종헌 전 차장에게서 “외교부에 의견서 제출을 요청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재상고심을 전원합의체에서 심리하기로 했는데, 여기서 대법관들을 설득하려면 외교부의 의견서가 필요하니 김앤장에서 의견서 제출을 요청해 달라고 한 것이다.
이날 재판에서 검찰은 한 변호사가 양 전 대법원장 등을 통해 알아낸 내용을 의뢰인인 일본 전범기업과 공유하며 논의한 정황에 대해서도 물었으나, 한 변호사는 업무상 기밀이라는 이유로 진술을 거부했다. 한 변호사는 “증인이 생각하기에 직업윤리상 공개할 수 없는 것을 공개된 법정에서 말하게 되면, 결과적으로는 비밀보호에 어긋나게 되는 결과가 초래된다고 생각한다”며 “내 입장을 감안해 달라”고 말했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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